정부가 「2016~2025년 국가물류기본계획」을 공개했다. 국가물류기본계획은 국가 물류정책의 기본방향을 담은 10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으로, 물류정책기본법 제11조에 따라 10년 단위의 계획을 매 5년 마다 수립하고 있다. 이번 기본계획에선 도로, 항공, 철도, 해운 등 각 분야별 주요과제가 제시됐다. 본지는 10월호부터 총 4회에 걸쳐 각 분야의 핵심과제를 특집기획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도로’ 분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화물 운송시장 제도 개선을 조명했다.
국토교통부는 서비스경제 발전전략의 후속조치에 따라 지난 8월 말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물류산업 육성을 위해 시장발전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혁신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정부는 업계·차주단체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시장 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포럼 개최, 별도 위원회 운영, 간담회 등 50여 차례 이상의 협의를 거쳤다. 이번 합의문은 6개 업종 및 차주단체 대표와 정부가 공동으로 서명했다. 국토부는 조만간 최종안을 확정하고,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전망이다. 화물연대 측은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구조개악이라 주장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특히 화물연대가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법개정 요구안을 주장하는 상황이라,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류업계에서 “몸통을 지키기 위해 팔 한쪽을 내줬다”고 묘사할 만큼, 이번 발전방안이 마련되기까지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가 상충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회의 과정에서 수차례의 고성도 오고갔다는 후문이다. 화물연대는 이번 발표에 대해 “화물운송시장의 근본적 구조개혁을 외면한 처사이다”며 “화물노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기존 물류기업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특혜다”고 비판했다. 화물연대는 조만간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어떤 내용 담겼나
국토부가 발표한 발전방안의 주요 내용(위 그림 참고)은 업종 전면개편, 진입규제 완화, 지입차주 권리보호 강화, 영세 차주·사업자 지원 등으로 나뉜다. 운송업 업종구분을 현행 용달/개별/일반→개인/일반으로 개편한다. 개인 업종은 취급 화물, 영업 특성 등을 고려해 1.5t 기준으로 소형과 중대형으로 나뉜다. 일반 업종은 업체 규모화·전문화 유도를 위해 허가기준의 차량 최소 보유대수 기준을 기존 1대에서 20대로 상향했다. 변경된 허가기준에 미달하는 기존 사업자는 적용을 제외하되, 사업의 일부 양도·양수는 불허한다. 주선업은 현행 일반/이사 주선업을 1개의 주선업으로 통합한다. 가맹업은 IT 기반 스타트업 등의 시장진입을 통한 서비스 향상과 신산업 육성을 유도하기 위해 ‘(가칭)물류네트워크사업’으로 개편한다.
진입규제 완화도 예고했다. 운송업은 최근 차량수요가 증가하는 소형화물차(1.5t 미만)에 대한 진입규제를 완화한다. 개인(소형) 업종의 택배용 화물차(‘배’ 번호판)에 대해 수급조절제를 폐지하고 신규 허가를 허용한다. 택배용으로 허가받은 차량은 종사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등 관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일반 업종의 소형화물에 대한 수급조절제도 폐지돼 자유로운 증차 및 신규 허가를 허용했다. 다만 신규허가 차량에 대해 직영(20대 이상), 양도 금지, 톤급 상향 금지 등 강력한 허가조건을 부과해 무분별한 차량 급증 등 부작용을 차단할 예정이다. 특히 주기적 신고 기간을 단축하고, 4대보험, 갑근세 납입, 고정자산명세서 등을 확인해 위반시 사업자 및 차주를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가맹사업을 개편한 물류네트워크사업은 자본금을 폐지하고, 차량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등 허가기준 완화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기반 스타트업의 신규 진입을 유도한다. 또한 가맹점 차량에 대한 중복가입 금지 및 가맹사업자 상호로의 변경 의무 등 규제는 폐지된다.
지입차주 권리보호도 강화될 전망이다. 운송업체의 직영을 유도하기위해 직영차량이 50% 이상인 경우 일정기간 최소·직접운송 및 실적신고 의무 면제 등 인센티브를 부여할 예정이다. 지입차주 의사와 무관한 운송사업자의 영업 근거지 변경 최소화 등을 통한 지입차주 재산권 침해 방지를 위해 관할시청이 변경되는 주사무소 이전 신고시 지입차주 동의서 첨부를 의무화 한다. 일부 양도·양수, 대폐차, 주사무소 이전시 제출되는 지입차주 동의서는 신고일 기준 1개월 이내에 작성된 경우만 인정된다. 운송사업자의 번호판 교체 거부시 처벌을 강화하고, 관할관청 직권으로 지입차주에 번호판을 교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아울러 운송업체의 일방적 지입계약 해지를 방지해 지입차주의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법상 보장되는 계약기간 6년 도과시 운송사업자의 일방적 계약해지 방지를 위해 상호 합의시에 계약해지를 허용하며, 지입계약 해지로 인한 대폐차시 지입차주 동의 여부 확인을 강화하고 미동의시에는 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 또한 지입전문회사 시장 퇴출을 위해 운송사업자의 최소운송의무 준수기준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영세 차주·사업자 지원도 동반된다. 원가 산정 능력이 없는 영세 차주들의 수입 하락을 방지하고 화주에 대한 운임협상력 증대를 위한 ‘참고원가제’ 도입을 추진한다. 정부, 연구기관, 업계, 차주단체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참고원가를 산정·발표할 계획이다. 또 택배업계는 용달업계와 상생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기존 택배차량의 퇴출 방지대책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기금은 초기 10억원 적립 이후, 1년에 약 5억원씩 3년간 추가 적립할 예정이다. 택배업체 소유차량은 양도가 제한된다. 나아가 영세 사업자들의 보험료 부담 완화를 위해 개인 업종의 별도 공제조합을 설립해 지원할 전망이다. 일반 손보사 대비 70~80% 수준의 보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협동조합에 대한 공영차고지 위탁운영 자격 부여 등 영세사업자의 공동사업을 지원하고, 공동구매, 후방카메라 설치 등 화물복지재단을 통한 복지사업을 적극 발굴·시행할 예정이다. 끝으로 자가용 유상운송, 불법증차 근절 등을 통해 시장질서를 확립해 합법적 사업자들을 적극 보호할 계획이다. 자가용 유상운송 신고 포상금 상한(현 10만원)을 폐지하고, 지자체·경찰·사업자단체 합동으로 주기적 특별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불법증차 근절을 위해 적발 업체는 즉시 허가를 취소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 불법증차 적발 차량에 대한 주사무소 이전과 양도·양수를 금지하는 한편, 선의의 피해를 입은 지입차주 구제를 위해 6개월간 임시허가를 부여한다.
“발전방안 기조는 1.5t 택배 차량 수급조절제 폐지”
본지는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이 발표된 뒤, 각 학계를 비롯해 협회 및 업·단체 관계자를 직접 만나 입장을 들어봤다. 대체적으로 발전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도, 최종확정안이 나오기까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일반 업종에서 신규사업자가 20대 이상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입제가 만연한 국내 화물운송시장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은 비용적인 손실이 클 것이란 것. 위장 직영에 대한 우려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정부에서 직영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즉 쿠팡의 ‘로켓배송’은 이례적인 경우고, 신규사업자가 직영체제를 도입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각에서 정부안을 ‘쿠팡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20대 이상을 직영으로 하는 것은 굉장히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며 “이번 발전방안의 기조는 택배시장에 진입하려는 개인에게 배 번호판을 지급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택배업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단위 택배물량을 확보한 유통기업이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에선 택배를 직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구가 밀집되고, 택배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수도권에선 물류를 직접 운영하고, 규모의 경제가 어려운 그 외 지역은 택배기업에 위탁을 맡길 것이란 의견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11월 기준,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는 전체의 49.5%인 2527만명으로 2011년보다 0.3% 상승, 꾸준히 수도권으로 인구 이동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쿠팡도 수도권 및 주요 도시를 제외한 일부지역에 대해선 한진, KG로지스 등 택배기업에 화물을 위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제조·유통기업를 대상으로 수급조절제 폐지에 따른 직영제 가능성을 취재했으나, 대부분 “계획이 없다”는 대답을 내놨다.
개인 업종의 1.5t 미만 택배용 화물차 ‘배’ 번호판 수급조절제 폐지에 대해선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이에 따른 택배단가 하락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영업소장 A씨는 “매년 택배물량이 두 자릿수로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급조절제 폐지는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발전방안은 양면성이 있을 것 같다. 인력구하기가 한결 수월해지겠지만, 업체 간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또 본사방침에 따른 택배단가 하락의 가능성도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택배기업 관계자는 “수급조절제 폐지는 전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합물류협회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평균 택배단가는 2308원으로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택배 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85% 증가, 매출액도 9.83% 늘었다. 택배기사 1인당 배송해야 할 물량은 더 늘고, 그에 따른 수수료(수익)는 정체 혹은 하락하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여기다 택배시장 진입 문턱이 허물어질 경우, 택배기사의 근무환경이나 수익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우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는 “현장에 가보면 택배기사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 많다. 일을 하려는 사람이 증가하면 택배기업 입장에선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청 자동차물류팀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국내 운송시장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정부가 내세우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맥을 달리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5시간, 물건 하나당 주어진 배송시간은 약 3분 정도다. 평균 택배단가는 700~900원 선으로 파악된다. 택배 상하차 분류작업과 반품택배 회수 업무까지 고려하면 실제 노동환경은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직접고용을 통한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물류현장의 인력유입이 없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문제다.
화물연대도 ‘수급조절제 폐지’에 따른 과당경쟁을 우려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수급조절제 폐지로 인해) 차량 대비 상대적 물동량 감소와 내부 경쟁 심화가 우려된다”며 “법인의 증차 허용으로 인한 화물차 대수 증가로 물량 대비 화물차량의 상대적 공급과잉과 내부 경쟁이 심화되고, 운임이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발전방안으로 인해 물류현장의 개선이 이뤄질지는 모르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기존에 ‘배’ 번호판을 취득해 일반화물을 취급한 사례가 있었고, 이에 대한 지자체의 단속이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 서울시청 관계자는 “단속을 할 수 있는 인력도 없고, 단속을 하더라도 화물에 대한 소유주를 밝혀내는 일이 간단하지 않다”며 “국토부가 이번 발전방안을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지자체는 중앙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에 대한 필요성 느끼지도, 단속을 할 의지도 없는 듯 보였다. 일단 서울시청 내에서 여객에 비해 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적고, 이 때문에 대다수 공무원이 이 자리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네트워크사업과 관련해서도 근심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화물운송주선업계 관계자는 물류네트워크사업이라는 용어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가맹업도 주선사업의 일종인데, 결국 특혜를 부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물류네트워크 사업은 기존의 허가규제 자체를 대폭 낮추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편법적인 방법으로 시장에 진입할 것을 걱정했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경쟁이 더 과열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에 100% 동의한 것은 아니다”며 “향후 진행상황을 지켜볼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하대학교 아태물류학과 권오경 교수는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일단 오랜 기간 각 업·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만큼, 발전방안을 시행을 해보고 문제를 보완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다만 ‘공정거래’를 강화해서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