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9 10:42

“해운위기에 금융논리만 작동, 해운전문가 키워야”

화물선 현대화 등 연안해운 활성화 지원책 강화
소통강화ㆍ청렴옴부즈맨 도입 등 조합 문화 쇄신

한국해운조합 이기범 이사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임기 중에 한국해운을 대표하는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기범 이사장은 “해운에 위기가 닥쳤음에도 금융의 시각으로만 돌아가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해운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우리나라에서 나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Q. 이사장 취임 소감은?

67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해운조합의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조합과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 일하게 된 걸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해운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해운이 우리나라 해양영토를 수호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요한 연안해운이 경쟁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제 경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하게 됐다. 대한민국 해운 역사의 산실인 조합이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아오지 않았나? 앞으로 해운산업과 조합에 활력을 불어 넣어 조합원과 임직원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Q. 조직운영 기본 방향 및 경영방침은?

<세월>호 사고 이후 저하된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침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어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나가겠다. 또 지속적인 성장의 토양이 될 수 있는 인재 육성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대외 신뢰회복을 위해 조합은 올해부터 청렴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제3자 입장에서 전문성과 투명성이 필요한 주요사업과 부패 취약분야를 감시 평가하고 이 과정을 통해 제도 개선을 제안하는 등 부패를 통제해 나갈 계획이다. 별도로 반부패 청렴 추진조직을 운영하고 청렴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해 임직원의 의식을 바꿔 나가겠다.

Q. 조합의 당면 현안은? 

지난 5월29일 일부개정 공포된 한국해운조합법이 11월30일에 시행된다. 이에 맞춰 사외이사제도 및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등의 정관 및 내부규정 등을 조속히 정비해 시행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또 조합이 선원퇴직연금사업자로 잠정 지정됐다. 선원퇴직연금제도 도입 이후 힘든 근무환경에서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묵묵히 생활해온 선원들이 안정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

Q.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해운이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사장에 취임했다.

해운이 차지하는 역할이나 지위에 비해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기간산업인 해운에서 큰 일이 벌어졌는데 해운이 아닌 금융의 논리로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철도나 육상에서 일이 벌어지면 세상에서 난리를 치는데 바다에서 생긴 문제는 피부로 안 와 닿아서 그런지 금융의 주장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 보니 피해가 더 큰 거 같다.

한진해운 사태를 보면서 과연 해운전문가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해운이 수십년 됐는데 전문가가 왜 없겠나? 하지만 이들의 의견이 나올 수 있는 통로가 적은 것 같다. 앞으로 해운에서 큰 일이 생겼을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조합 직원 중에도 우수한 인재가 많은데, 이들을 해운을 대표하는 전문가로 키우고 싶다. 임기 내에 전문가를 배출하는 게 어렵겠지만 기초를 닦고 싶다. 이들이 한국해운의 발전을 위해서 일익을 담당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Q. 조합의 핵심기능인 공제사업 확대 방안이 궁금하다.

조합의 공제사업 사업수익은 867억원이었다. 해운경기 침체에 따른 해상보험시장 축소와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기존선박 이탈을 최소화하고 신규선박 유치를 통해 5% 늘어난 실적을 달성했다. 2005년 352억원에 비해 2.5배 성장을 일궜다. 올해 해운업계가 당면한 어려움을 고려해 선종 및 손해율 실적 등에 따라 평균 6%의 선박 공제 요율을 인하했다. 경쟁하고 있는 해상보험 국제그룹(IG P&I클럽)은 평균 2%의 요율을 인상했다. 또 1월에 신성장동력 확보와 조합사업 다변화를 위한 선박건조공제를 출시했다. 선박건조공제는 선박의 건조에서부터 진수 시운전 인도에 이르기까지 공제목적물의 제반 위험을 담보해 건조자의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는 상품이다.

Q. 연안여객선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여객선 안전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다뤄져야 한다. <세월>호 이후 여객선 안전관리 혁신대책의 일환으로 해사안전감독관 및 안전관리책임자 등 많은 신규 안전제도가 신설됐다. 하지만 제도가 단기간에 수립되다 보니 현장 적용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여객선 운항에 차질이 생기는 등 정책과 현실 간에 괴리가 발생해 업계에서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설된 제도가 본래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고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여객선 조합원사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적으로 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제도적 측면 외에도 여객선 안전 UCC(손수제작물) 공모전을 통해 국민들이 여객선 안전에 관심을 가지는 기회를 마련하고 섬 여행 후기 공모전을 주관해 많은 관심을 이끌어 냈다. 또 조합에서 위탁 운영 중인 여객선 터미널마다 비상사태 매뉴얼을 제작해 터미널 안전사고 시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수립할 예정이다.

Q. 불황으로 연안화물선업계의 어려움이 크다. 대책은?

전 세계적인 해운 불황 여파가 내항해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운조선 호황기였던 2011년까지 선박 블록과 철강, 기자재 등의 수송량이 연평균 6% 증가했지만 이후 연평균 4% 감소세로 돌아섰다. 해상화물운송사업이 1999년 등록제로 변경되면서 그전까지 400여개 업체에 불과했던 내항화물선사가 2014년엔 707곳으로 늘어났다.

업체수 증가로 1개 업체당 운송할 수 있는 물량은 20년 전에 비해  44% 감소했다. 중소형 연안해운업계의 영세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일한 내항화물선 현대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인 이차보전사업은 금융권에서 해운조선 불황을 이유로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해주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조합에선 RG 발급이 원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권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다.

해운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타 교통수단에 비해 월등히 적은 친환경 수송수단이다. 도로교통이 연안해운으로 전환하면 여의도 면적의 30배에 달하는 산림을 가꾸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된다. 2010년 시작한 전환교통 보조금 지원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112만7000t의 이산화탄소 감축 실적을 이뤘다. 다만 사업에 참여하려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지원금액은 제한돼 있어 연안해운 수송분담 향상에 한계가 있다. 더 많은 사업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Q. 세월호 사건 여객 보상 처리 방향과 향후 추진계획은?

먼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맘을 전한다. 조합은 <세월>호 사고 책임을 다하고자 보상여부와 관계 없이 구조자 치료와 안정을 위해 전국 88개 지정병원에 치료비를 지급 보증했으며 총 158명의 재해자에 대해 16억원의 치료비를 지급했다. <세월>호 사고는 거액의 보험금이 수반되지만 조합은 한 사고당 최고 3억달러까지 담보할 수 있는 재보험에 가입돼 있어 보험금 재원 마련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보험금 지급에 재보험자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재보험자와 수차례 현지 설명회를 여는 등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Q. 끝으로 해운업계 및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연안해운은 전국 480여개 유인도서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유류와 철강제품 등 주요 기간산업물자를 대량 수송하는 대동맥 역할도 수행한다. 특히 중요한 기간산업이자 해양중심시대 물류선진화의 기본 토대이며 물류중심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천혜의 바닷길을 이용하고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 없어 환경 문제가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없이 도로나 철도에 비해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연안해운 활성화를 위해선 정책적으로 기획 입안 집행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반드시 필요하다. 선박금융, 세제 선진화, 항만 인프라 구축 등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제반 정책이 조속히 현실화돼야 한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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