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3 15:49

기획/ 해외프로젝트 수주부진 포워더에 직격탄

수주물량 급감으로 화주·포워더 냉기류
글로벌포워더·대기업에 치이는 국내 토종포워더 ‘위기’

저유가 악재에 국내 건설사와 물류기업이 휘청거리고 있다. 프로젝트 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오일 메이저들의 발주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해외 수주량이 곤두박질치자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 또한 깊은 시름에 빠졌다. 특히 화주들의 저가 운임 요구와 배상금 부과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오일메이저 발주급감에 화주·포워더 줄줄이 ‘울상’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사업 수주액이 매년 30% 이상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수주액은 ▲2014년 660억993만달러 ▲2015년 461억4435만달러 ▲2016년 상반기(1~6월) 152억1809억달러 등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가 높을 당시 해외 프로젝트 일감 따내기에 적극적이던 국내 건설사들은 무리하게 저가 수주를 펼친 탓에 현재 적자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주택시장 호황으로 내수 물량 수주에 집중하며, 해외 수주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포워더들도 덩달아 역풍을 맞고 있다. 회사 내에서 프로젝트사업팀을 꾸려 영업을 펼쳐온 포워더에게 ‘해외 프로젝트 황금기’는 어느새 옛말이 돼버렸다.

건설사와 포워더가 주목한 ‘이란 제재해제 특수’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중동에서 세 번째로 큰 건설시장인 이란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미래먹거리 시장’이다. 원유 증산으로 석유화학 플랜트 발주와 장기간에 걸친 고립으로 사회기초시설 재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주 침체를 해갈할 단비로 여겨진 이란 시장이 아직 되살아나지 않아 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석유에 의존하던 중동 국가들이 저유가로 재정이 흔들리자 오일 메이저들의 발주 성향 또한 바뀌었다. 파트너를 단독으로 정했던 과거와 달리 컨소시엄을 이룬 입찰 참여가 늘고 있는 추세다. 프로젝트 손실 위험과 물류비를 줄이기 위한 발주처의 입찰 방식이 바뀌며, 한 프로젝트에 여러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일감을 쪼개 가져가는 구조다 보니 수익도 나뉠 수밖에 없다. 포워더들이 먹을 파이도 줄었다. 포워더 관계자는 “과거에는 15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가 나오면 이 중 한국이 100억달러를 따왔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기업이 참여하다 보니 20억~30억달러도 채 안 된다”라며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포워더에 불리한 ‘독소조항’ 폐기돼야

“물류기업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만들어 달라. 화주와 계약시 불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화주인 건설사의 물류 업무를 맡고 있는 포워더들은 위험 부담이 크다. 통상 일반 화주와 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달리 프로젝트 화물을 취급하는 포워더들은 연 단위 계약을 체결한다.

프로젝트 소요기간이 약 2~3년 이상 걸리는 특성상 계약기간이 긴 편이다. 포워더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화주에게 유리한 운송 계약서다. 계약서에 명시된 운송지연에 대한 배상금 부과 조항이 포워더의 발목을 잡고 있는 리스크라고 지적한다.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보다 화물이 늦게 현장에 도착할 경우 화주는 포워더에 배상금를 청구할 수 있다. 포워더들은 해상 운송기간이 항공과 육송에 비해 길다는 점과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 등에 대한 부분이 계약서에 전혀 고려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러 항만을 경유해야 하는 해상운송 특성상 운송 지연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해상운송은 실질적으로 선사가 맡지만 비용 부담은 결국 포워더가 하는 셈이다. 포워더들은 ‘갑’ 지위를 내세우는 독소조항이 제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젝트 시장이 휘청하자 화주들은 더욱 깐깐해졌다. 과거에는 협상을 통해 초과 운임을 네고할 수 있었지만, 현재 약속기한을 넘긴 계약 건에 대해 초과운임을 부과하고 있다.

기업들의 잇따른 프로젝트시장 진출에 운임 덤핑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포워딩업계가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수주물량이 없는 탓에 기업들의 ‘제살깎이’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 글로벌포워더와 대형물류기업에 비해 재무구조가 약한 국내 토종포워더는 과당경쟁으로 인한 저가 운임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사들이 진행하는 입찰도 운임 하락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물류업무를 대행할 포워더를 선정하기 위해 공개 입찰을 진행한다.

포워더들은 시스템 입찰을 통해 해상운송과 통관, 내륙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합친 견적을 화주에게 제출한다. 건설사들은 입찰 참여 건수, 물류기업의 업무 수행도, 해상운임 등 수십여개의 항목을 토대로 자체 평가를 실시해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A건설사는 A~E까지 5등급을 나눠 업체를 선정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건설사가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영역이 넓어진다. 일부 건설사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기준치에 크게 미달한 기업들을 수행능력평가를 통해 등록업체에서 제외시킨다. 경쟁이 심한 탓에 입찰을 따내는 것도 어려운 데다 참여할 권리를 얻지 못한 포워더도 수두룩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포워더들은 입찰에서 이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최저가를 내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최저가로 내놓은 입찰가가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화주는 포워더와 몇 차례의 협상을 걸쳐 계약단가를 한 두 차례 더 떨어뜨린다.

저단가로 체결한 운송계약이 변경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포워더들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운임 변동 폭이 큰 해운시장 특성상 운임 조정 불가능은 곧 포워더들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포워더 관계자는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는 물류기업과 화주가 운임인상에 대해 몇 차례 협상을 가져 조정을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운임이 낮아지면 결국 화주들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경쟁력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포워더들은 제 운임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배상금까지 물고 있어 선사 수배와 현지 운송루트 변경 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현재 시장에 만연한 저가 운임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주들은 해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는 비용절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구매비와 물류비를 절감해 한푼이라도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에 참여해야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韓 토종포워더 ‘설자리 없다’

‘저유가 참사’는 프로젝트 사업에서 이익을 일궜던 국내 건설기업의 수익성 개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후폭풍은 프로젝트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토종 포워더에게까지 번졌다. 특히 국내 중소포워더들은 대형물류기업과 글로벌포워더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사 물량을 전담하고 있는 대형물류기업과 한국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글로벌포워더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물량은 현대글로비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물산은 삼성SDS, 한화건설은 한익스프레스, 대림은 대림코퍼레이션 등이 선점하며 기존에 이들의 물량을 취급했던 포워더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건설사의 물량을 처리했었던 어느 한 포워더는 대형 화주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매출이 크게 꺾였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DB쉥커, 어질리티, 도이그로 등의 글로벌포워더도 프로젝트 물량 유치를 위해 국내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프로젝트 시장에 진출한 탓에 국내 토종 포워더들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영세한 기업이 대부분이라 포워딩업계에서는 국내 중소포워더들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포워더 관계자는 “프로젝트 시장에서 오랜 물류 노하우를 쌓아왔던 국내 토종 포워더들이 위기에 봉착했다”며 “국내 기업들이 무너지면 국가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물류기업이 사라질 수 있다”며 현 상황에 대해 개탄했다.

인력구조조정 단행 등 초강수

포워더들의 더 큰 걱정은 앞으로 수행할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올해 수주한 프로젝트의 물류업무를 수행할 포워더를 내년에 입찰을 통해 선정한다. 다음해인 2018년에는 화물 운송이 진행된다.

통상 건설사보다 약 2~3년 후행하는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수주물량 급감은 향후 포워더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건조물량을 수주하고 몇 년 후 완성된 선박을 고객에게 인도하는 조선소와 같은 꼴이다. 최근 국내 조선소는 수주물량 급감으로 독(Dock)을  변경하거나 없애며 ‘회사 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프로젝트 시장에서만 오랜 노하우를 쌓아온 몇몇 포워더들은 시황 침체로 인력 구조조정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사들의 프로젝트 물량을 따오며 회사 외형을 키웠지만, 이제는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프로젝트 물류를 서비스 중인 포워더의 인원 감축과 이동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포워더 관계자는 “현재 늘어나고 있는 건 물량이 아닌 인건비”라며 “인력 감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주를 따내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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