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4 14:13

판례/ 선박 수리 중 화물이 소손되면 선주는 배상책임을 지는지?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인천지방법원 제12민사부 판결
<7.25자에 이어>
【사          건】 2011가합19740 판결 손해배상(기)
【원          고】 한화손해보험 주식회사 외 5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경)
【피          고】 에버그린 글로리 인터내셔널 디벨로프먼트 리미티드 (소송대리인 변호사 문□명)
【변 론 종 결】 2012년 7월 4일
【판 결 선 고】 2012년 8월 8일
【주          문】 1. 피고는 원고 한화손해보험 주식회사에게 400,654,144원, 원고 흥국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177,386,313원, 원고 동부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93,020,978원, 원고 삼성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218,707,196원, 원고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회사에게 215,100,520원, 원고 그린손해보험 주식회사에게 162,978,109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11년 10월21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          유】 


1. 평석을 시작하며

이번 호 평석 대상 판례는 인도에서 한국으로 수입하는 축산사료가 항해 도중에 화재로 소손되자, 이 화물의 적하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하고 운송인에게 구상청구한 건이다.
먼저 사실관계 및 법원의 판시 요지를 살핀다.

2. 사실관계 및 법원 판결의 요지

가. 사실관계
(1) 수입자(국내사료회사들)는 수출자인 인도 곡물회사와 2011년 3월 무렵 가축사료(이하 “이 사건 화물”) 수입계약을 체결하고, 이 운송을 2011년 4월26일 해상운송인 피고(골든 138호(이하 “이 사건 선박”)의 선주)에게 맡긴다. 아울러 이 무렵 이 사건 화물에 관해 원고 보험회사들과 적하보험을 체결한다.

(2) 이 사건 선박은 4월16일 이 사건 화물을 싣고 인도를 출항해 인천항으로 항해하던 중 수일후 감속기 고장으로 항해하지 못하고 5월2일 인도네시아 소재 수리조선소에서 수리에 들어간다. 위 수리에는 약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바 이 사건 선박이 수리를 거의 마칠 무렵인 7월30일경 이 사건 화물이 적재된 선창에서 연기가 나는 사고가 발견돼 선원 등이 소화작업을 행한다. 선박은 8월5일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화물을 확인해 보니 위 선창에 적재된 이 사건 화물의 절반 이상이 탄화됐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이 발견됐다 (이하 “이 사건 사고”).

(3) 원고들은 같은 해 10월 수입자들에게 약 15억원의 전손 보험금을 지불하고, 동 보험금에서 잔존물 가치 상당액을 공제한 액수인 약 3억원을 제외한 액수인 약 12억원을 피고에게 구상청구한다.

나. 법원 판결
(1) 피고는 이 사건 사고는 화재로 인한 것이므로 화재 면책(제4조 제2항 (b)호 본문 (우리 상법 795조 2항 유사)에 의해 면책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가) 사건 사고시 이 사건 화물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없는데 위와 같은 현상이 바로 연소가 일어나는 초기 과정인 점, 나) 곡물이나 사료의 경우 화물창 하부에 있는 스팀파이프나 열기로 인해 화물이 탄화되거나 변색되는 사고가 간혹 발생하는 점, 다) 선원들은 전형적인 소화 방법을 사용해 이 사건 사고에 대처했고, 원고들 주장과 같이 이 사건 화물에 물을 투입하면 화물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수침 손해(wet damage)를 입게 될 뿐 아니라 자체 발열로 고열 상태에 있는 화물이 증기 폭발할 위험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화재 면책이 된다는 피고의 주장을 일응 수용했다.

(2) 원고는 이에, 이 사건 선박이 출항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장 난 점 등에 비춰 볼 때 이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므로 화재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헤이그 규칙 제3조 제1항). 이에 대해 법원은, “운송인은 화재로 인해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하지만, 그 전제로 자기 또는 선원이나 그 밖의 선박사용인이 발항 당시 감항능력(선박이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게 할 것,필요한 선원의 승선, 선박의장과 필요품의 보급, 화물창. 냉장실, 그 밖에 운송물을 적재할 선박의 부분을 운송물의 수령·운송과 보존을 위해서 적합한 상태에 두는 등 선박이 항해에 적합하거나 항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주의의무를 해태하지 아니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운송물의 멸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전제한 후, 가) 이 사건 선박은 발항 이전이나 출항 당시 주기관에 어떠한 문제나 특이사항이 있다는 별도의 보고가 없었으나 출항 후 10일이 지나서야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유로 감속기에 문제가 발생한 사실, 나) 이 사건 선박에 화물 선적작업을 하기 전인 2011년 4월14일 송하인이 지정한 검정인이 선박에 승선해 화물창의 적합성을 점검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사실 등을 토대로 원고의 위 감항성 결여 주장을 배척한다.

(3) 나아가,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선박의 수리기간이 3개월 이상 소요됐음에도 그 기간 중 화물을 다른 곳에 양하해 적절히 관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이는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것이어서 헤이그 규칙 제4조 제2항 (b)호 단서 (상법 제2795조 2항 단서 유사)에 의해 면책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바, 법원은 “운송계약이 성립한 때 운송인은 일정한 장소에서 운송물을 수령해 이를 목적지로 운송한 다음 약정한 시기에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할 의무를 지는데, 운송인은 그 운송을 위한 화물의 적부(積付)에 있어 선장·선원 내지 하역업자로 하여금 화물이 서로 부딪치거나 혼합되지 않도록 그리고 선박의 동요 등으로부터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조치와 함께 운송물을 적당하게 화물창 내에 배치해야 하고, 가사 적부가 독립된 하역업자나 송하인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운송인은 그러한 적부가 운송에 적합한지의 여부를 살펴보고, 운송을 위해 인도받은 화물의 성질을 알고 그 화물의 성격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적부를 해야 하는 등의 방법으로 손해를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예방조치를 강구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대법원 2003년 1월10일 선고 2000다70064판결 참조).”고 전제한 후, 이 사건 선박은 흡입구와 배기구가 모터로 돼 있어 강제식 통풍을 하는데 흡입구 쪽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통풍팬을 돌리더라도 통풍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었던 사실,이 사건 선박의 선원들은 3개월 간의 수리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의 고온다습한 환경을 고려해 화물을 다른 곳에 양하해 보관하는 등의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사실, 나) 이 사건 선박의 수리는 전적으로 선주가 담당하는 것이므로 수리로 인해 항해기간이 지연되는 동안의 화물 관리 역시 피고의 책임하에 이뤄져야 하는 점, 다) 이 사건 선박의 주기관 감속기 고장으로 인한 정박 이후 피고가 공동해손을 선포했다면 화물 관리에 드는 비용 역시 공동해손 정산 결과에 따라 화주로부터 회수할 수 있으므로 선주인 피고로서는 수리기간 동안 선박에 대한 조치와 함께 이 사건 화물을 양하해 놓았다가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싣는 등 화물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함이 마땅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 들였다. 결국 법원은 피고의 화재 면책을 배척하고 원고 전부 승소의 판결을 한다.

(4) 이 판결에 대해 피고는 항소 및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돼 사건은 위 1심 법원 판결대로 확정됐다 (2015년 9월10일 확정).

3. 해설

이 사건은 외국에서 화재사고가 일어난 후 국내항에 도착한 화물에 관한 법원 판단의 전형적인 예로 보인다. 화재사고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면책으로 하되, 법원은 실제 소송에 있어 화재사고가 있다고 해 해상운송인을 바로 면책하지는 않으며 사고 즈음의 제반 정황을 토대로 과실 유무를 살핀다. (이 건은 헤이그 규칙 제4조 2항 (b)호를 적용했으나 상법 795조 2항을 적용했다고 해도 결론에서 상이점은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수리 기간이 3개월이란 적잖은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아울러, 수리 작업이 더운 곳인 인도네시아에 있었다는 점, 화물이 자체의 특성상 부패 내지 발화 등이 있을 수 있는 사료 즉 곡물이란 점 등을 고려하면 화물을 선창에 계속 보관하는 경우 그 관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 화주 측과 긴밀히 협의해 운송 중인 화물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본 건의 해상운송인은 비록 화재 발견 직후 소화작업 등에는 충실히 한 듯하나, 수리 기간 중에 화물에 대한 양하 등의 조치를 결했다는 이유로 전부 패소했고, 해상운송인은 제1~3심 진행되는 동안 소송을 위한 노력 및 변호사 비용도 상당한 수준으로 지출했을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경향을 고려할 때 선박 장기 수리 등 해상운송 도중에 특이 사정이 생긴 경우 해상운송인으로서는 적재된 화물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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