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3 16:22

판례/ 선박 수리 중 화물이 소손되면 선주는 배상책임을 지는지?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인천지방법원 제12민사부 판결
<6.13자에 이어>
【사          건】 2011가합19740 판결 손해배상(기)
【원          고】 한화손해보험 주식회사 외 5 (소송대리인 변호사 김◑경)
【피          고】 에버그린 글로리 인터내셔널 디벨로프먼트 리미티드 (소송대리인 변호사 문□명)
【변 론 종 결】 2012년 7월 4일
【판 결 선 고】 2012년 8월 8일
【주         문】 1.피고는 원고 한화손해보험 주식회사에게 400,654,144원, 원고 흥국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177,386,313원, 원고 동부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93,020,978원, 원고 삼성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에게 218,707,196원, 원고 현대해상화재보험 주식회사에게 215,100,520원, 원고 그린손해보험 주식회사에게 162,978,109원 및 위 각 돈에 대하여 2011년 10월21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각 지급하라.
2.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3.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이          유】 

(b) 헤이그-비스비 규칙이 적용되는 거래

‘선하증권에 관한 약간의 규칙을 통일하기 위한 국제협약의 개정을 위한 1968년 의정서’(이하 ‘헤이그-비스비 규칙’이라 한다)가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거래에서는, 그 해당의 각 조항이 적용된다.

다. 이와 같이 위 선하증권의 이면약관에 포함된 일반지상약관은 선적지국에서 입법화한 헤이그 규칙(선적지국에서 위와 같이 입법화된 법률이 없는 경우에는 도착지국에서 입법화한 헤이그 규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하되, 헤이그-비스비 규칙이 적용되는 거래에서는 위 규칙의 조항이 적용된다고 규정했을 뿐, 달리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준거법을 정하지않고 있는바, 이에 따르면 결국 운송인의 화재 면책에 관해서는 헤이그 규칙이나 헤이그-비스비 규칙 또는 그 규칙의 내용을 입법화한 선적지국 또는 도착지국의 법률이 적용돼야할 것이다(이 사건 사고와 관련한 선적지국이나 도착지국이 운송인의 화재 면책에 관한 헤이그 규칙이나 헤이그-비스비 규칙을 입법화했다면, 결국 그 내용은 헤이그 규칙 또는 헤이그-비스비 규칙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라. 따라서 이하에서는 헤이그 규칙의 내용에 따라 피고가 수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수입자들의 채권을 대위하는 원고들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3.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선하증권상 피고를 대표하는 선장의 대리인인 케이월드라인이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건 화물을 운송하던 중 화물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바, 이 사건 선박의 선주이자 운송인의 지위에 있는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입자들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수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원고들은 수입자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취득했다고 할 것이다.

나. 화재 면책 항변

1) 쌍방의 주장 요지
피고는, 이 사건 화물의 손상은 화재로 인해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로서 헤이그 규칙 제4조 제2항 (b)호 본문에 따라 면책된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원고들은 이 사건 사고는 화재 사고가 아니므로 피고에게 화재 면책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다툰다.
2) 인정 사실
갑 제3, 6호증, 을 제5내지 8, 11호증의 각 기재 내지 영상, 증인 소외 2, 소외 1의 각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이 사건 사고일인 2011년 7월30일자 항해일지에는 “이 사건 화물 상단부분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산화됐으며, 이에 선장은 선원들에게 즉시 경보를 울려 2번 화물창의 화물이 자체 발열 및 산화하고 있다고 알렸고, 연소를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기재돼 있다.
나) 이 사건 사고 발견 직후 선원들은 소화장치로 이산화탄소 약 45㎏을 살포하고 화물창 안의 공기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해치커버와 통풍구 및 개폐구를 닫아 가능한 모든 틈새를 봉인하고 통풍을 차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치했다.
다) 이 사건 화물은 자연발화(spontaneous combustion)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사건 선박의 선원들이 2번 화물창 뒷부분에서 나는 연기로 이 사건 사고를 최초로 인지할 당시 위화물창 내 화물의 일부가 서서히 타고(slow burning) 있는 것이 발견됐다.
라) 이 사건 선박이 인천항에 도착한 후 원고들이 모든 해상손해사정 주식회사에 의뢰해 2011년 8월29일, 같은 해 9월15일, 같은 달 30일 세 차례에 걸쳐 이 사건 사고에 관한 조사보고서(작성시기 순으로 을 제6, 7호증,갑 제3호증이 이에 해당한다. 이하 순서대로 ‘초기, 중간, 최종 보고서’라 한다)가 작성됐는데, 초기보고서에는 “이 사건 선박 2번 화물창의 선미 쪽에 적재된 화물이 불에 타 탄화된 상태였고, 2번 화물창에 적재된 전체 화물량의 약 2/3정도는 발화로 인해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1/3의 경우도 연기 혹은 냄새로 인해 영향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재됐다가 이 사건 소 제기 시점에 근접해 작성된 최종보고서에는 이 사건 화물의 연소 내지 탄화에 관한 언급보다는 피고의 감항능력주의의무 위반 내지 화물 관리상의 과실이 이 사건 손해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취지로 기재됐다.
마) 이 사건 화물의 하역작업 시 하역용 장비인 그랩(grab)으로 상단부 화물의 곳곳을 파헤쳐 화물 손상의 정도를 확인했는데, 그 결과 선미 부분은 상단부 뿐 아니라 바닥 부분까지 손상됐고 선수 쪽 화물도 깊숙한 곳까지 손상된 것으로 밝혀졌고, 이 사건 사고 후인 2011년 8월6일부터 같은 달 27일까지 2번 화물창의 내부 온도가 대략 55℃ 정도인 것으로측정됐다.
바) 이 사건 사고에 관해 협성검정회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말미에는 손상 원인과 관련해 “자연발화를 방지하기 위해 전체 항해기간 동안 행해진 주의의 정도를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와 자료가 없으므로, 화재의 원인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결론이 기재됐다.
3) 판단
가) 위 인정 사실에다가 이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 특히 ① 대한민국 상법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해상법에서 해상운송인의 화재 면책을 인정하는 취지는, 선박을 이용한 해상운송 자체가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업무로서, 선상 화재라는 상황적 특수성으로 인해 인명, 선체 내지 화물에 대한 손해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또한 이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손해가 막대해 선박의 화재가 운송인의 파산으로 직결될 위험이 적지 않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운송인이 충분하게 보호되지 않는다면 해상운송이라는 물류제도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인 점, ② 원고들 주장대로라면 이 사건 사고발생시 피고 측이 연기를 늦게 발견하거나 이산화탄소 살포 등의 조치를 지연해 실제로 불꽃이나 화염까지 일었다면 피고가 화재 면책을 주장할 수 있을 텐데, 그 전에 조치를 취해 화물이 까맣게 그을리고 연기가 나는 정도에 그쳤다는 이유로 화재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여러 모로 균형에 맞지 않고, 해상운송인의 화재 면책을 규정한 취지를 몰각하게 되는 점, ③ 이 사건 사고시 이 사건 화물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는 원·피고 사이에 다툼이 없는데 위와 같은 현상이 바로 연소가 일어나는 초기 과정인 점, ④ 곡물이나 사료의 경우 화물창 하부에 있는 스팀파이프나 열기로 인해 화물이 탄화되거나 변색되는 사고가 간혹 발생하는 점, ⑤ 선원들은 전형적인 소화 방법을 사용해 이 사건 사고에 대처했고, 원고들 주장과 같이 이 사건 화물에 물을 투입하면 화물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수침 손해(wet damage)를 입게 될 뿐 아니라 자체발열로 고열 상태에 있는 화물이 증기 폭발할 위험도 있는 점, ⑥ 이 사건 화물과 같이 5면이 밀폐된 화물창 내에 적재된 산적 화물의 경우 갑판 천장 쪽 표면을 제외하고는 선박 구조물에 갇혀 있고 화물이 깊이 선적돼 단열효과가 있기 때문에 표면층 화물을 제외하고 화물 내의 연기가 공기 중으로 빠지지 못하고 축적돼 중심부의 경우 갑판 천장 쪽보다 훨씬 높은 열기와 온도를 가질 수밖에 없어 자연발화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점, ⑦ 이 사건 화물이 자연발화될 때 연소의 3가지 요소인 발화물질, 발화점 이상의 온도, 일정량 이상의 산소가 모두 충족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보태어 보면, 이 사건 사고는 헤이그 규칙 제4조 제2항 (b)호의 해상운송인의 화재면책 규정상의 ‘화재’라 봄이 상당하고,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 즉 이 사건 사고 발생시 이 사건 화물이 까맣게 타고 2번 화물창에서 연기가 났을 뿐 불꽃이나 화염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선원들은 이 사건 화물에 물을 뿌리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했다는 점만으로는 위와 같은 인정을 뒤집기에 부족하다.
나) 따라서 이 사건 사고는 ‘운송 중의 화재로 인한 사고’로서 일응 피고는 면책된다고 할 것이다.

다. 감항능력주의의무 위반 여부

1) 쌍방의 주장 요지
원고들은, 설령 이 사건 사고를 운송 중의 화재로 인한 사고로 본다 하더라도 선박의 운항 중 주기관 감속기가 고장난 이상 피고가 이 사건 선박에 관해 감항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헤이그 규칙 제4조 제1항, 제3조 제1항에 의해 면책될 수 없다고 재항변하고, 이에 대해 피고는 감항능력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했고, 설령 이를 위반했다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와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다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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