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로 이란이 세계 경제의 유망시장으로 부상했다. 세계 각국들이 이란 진출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이란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5월초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사절단을 꾸려 이란을 방문했다. 사상최대 규모로 이뤄진 경제사절단을 통해 물류 및 수출업체들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해양수산부를 필두로 한국선주협회가 해양산업 진출의 길을 트고 이어 인천공항공사가 하늘길을 한국무역협회와 코트라가 화주들의 이란 진출 지원에 나섰다.
해수부는 5월2일 이란과 해운협정, 항만개발협력 및 해양수산협력 양해각서를 연달아 체결했다. 지난 1996년 협의를 시작한 해운협정은 국제 사회의 이란 제재로 장기간 중단됐으나 20년만에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협정을 통해 우리나라 해운기업의 자유로운 항만 입항, 지사 설립, 해외송금이 보장되고 선박·선원 관련 문서가 상호 인정돼 이란에 기항하는 우리 기업의 안정적인 영업과 수익 확대가 기대된다. 또 항만개발협력 양해각서(MOU) 서명으로 우리 기업의 이란 항만시장 진출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란은 경제제재 이후 인프라 건설, 교역확대 등으로 항만물동량 증가가 기대된다.
늘어나는 항만개발 수요 ‘투자 기회’
이란 전체 항만의 연간 처리 물동량은 2013년 기준 약 1억4000만톤을 기록했다. 주요 원양선사들이 기항하는 이란의 최대 무역항인 샤히드 라자항(반다르아바스항)은 지난해 4277톤의 수출입물동량을 처리했다. 이어 이맘호메이니항이 3347만톤, 부셰르항이 304만톤, 아미르 아바드항이 277만톤을 처리했다.
컨테이너 처리량으로는 반다르아바스항이 작년 170만TEU를 처리해 1위를 기록했으며, 그 뒤로 부셰르항이 21만8095TEU, 이맘호메이니항 12만7870TEU, 코람쉐이항이 6만4343TEU를 처리했다.
이란의 컨테이너 처리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반다르아바스항의 연간 화물처리능력은 약 7천만t으로 2개의 컨 터미널에서 연간 330만TEU의 화물처리가 가능하다. 기존 제재 대상자 운영터미널로 이용이 불가했던 제1컨테이너 터미널도 현재 이용 가능하다. 반다르아바스항은 작년 기준 이란 전체 수출입 물동량의 47.7%, 컨테이너물동량 78.1%를 처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셰르항은 반다르아바스항에 이어 두 번째로 컨 처리량이 높은 항으로 제재로 반다르아바스항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대안으로 활용된 바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항만시설 및 운영시스템은 우리나라의 1980∼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 항만개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1만2천TEU급 컨테이너선이 기항할 수 있는 반다르아바스항은 항만개발이 진행 중이다. 1단계 부두개발은 마무리됐으며 현재 2단계는 토목공사를 마치고 하역장비를 구매중으로 3단계 개발 종료시 연간 800만TEU를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란측의 인프라 투자 및 교역 확대 의지로 인해 개발 수요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란 항만의 개발타당성 조사, 이란 공무원 초청연수 등을 통해 이란과의 협력을 강화해 우리 기업의 진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항만 타당성조사 추진시 단기간 내 도로망 등 물류네트워크, 산업단지 등 이란 경제 전반에 대한 정보 확보가 가능해져 향후 우리기업 진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2단계 컨테이너부두 크레인 12기(1.4억달러) 수주를 추진 중이며, 민자사업(BOT)으로 계획 중인 3단계 ‘컨’부두 개발사업(약 2.6억달러)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MOU 체결 이후 타당성조사 발주 및 초기부터 우리나라 관심기업(건설, 운영, 금융 등) 참여를 통해 이란 항만인프라 시장 진출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란 정부는 양국 수산분야 협력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어 양해각서 서명 이후 양식 기술 이전 등 수산·양식 협력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며 이는 향후 대이란 수산식품 수출 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중동항로 얼라이언스 구성
민간에서도 이란 협력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한국과 이란 선주협회는 상호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과 이란 선사 간 아시아-중동항로 얼라이언스도 구성할 예정이다. 또한 아시아-중동항로 서비스를 구축하는 방안을 집중 토의하기 위해 양국 선주협회 간 공동 TF(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선급과 이란선급은 육·해양플랜트 설비 인증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 사업 진출을 위해 합작회사 설립 협정을 체결,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합작회사는 양측 투자비율 50:50으로 시작해 이후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며 2017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이번 MOU로 원유 증산을 위해 대규모 개·보수가 예상되는 이란 해양플랜트 설비에 대한 제3자 검사·인증산업 시장진출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이란 플랜트 시장은 총 223기(고정식 플랫폼 140기, 공급선 등 지원선박 83척) 규모로 향후 5년간 1850억달러의 프로젝트를 발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에서의 사업수행실적(Track record)을 바탕으로 외국 선진선급 등에 의해 선점된 세계 해양플랜트 설비 검사·인증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경철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은 “이란은 원유, 천연가스 등 자원부국이자 인구 8000만 명 규모의 중동 최대 시장으로, 제재 해제 이후 교역 및 이란 내 프로젝트 증가로 인해 해운, 선박검사, 항만개발 진출 등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번에 체결한 해운협정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이란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천공항, 중동 하늘길 확대 교두보 마련
바닷길에 이어 인천국제공항도 하늘 수출길을 열기 위해 이란의 관문 이맘호메이니공항과 협력강화 MOU를 체결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은 이전부터 인천공항의 안정적인 공항 운영 및 건설, 첨단 기술, 서비스 노하우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양 공항은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향후 정기적 인력교류를 통해 공항운영과 여객 관리, 주변지역 개발, 양국 항공정책 방향 등과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고 공항개발을 위한 공동 마케팅 활동 추진, 업무 성과 공유를 통한 발전방안 모색 등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협력활동을 지속해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내달 초에는 이맘호메이니공항의 마흐무드 나비디총재가 인천공항을 답방해 인천공항에 대한 벤치마킹을 비롯하여 양 공항 간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란은 현재 8개의 국제공항과 54개의 국내 공항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은 대대적인 시설 확충계획과 함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공항으로 꼽힌다. 2004년 개항한 이맘호메이니공항은 증가하는 여객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초기 사업비 10억달러를 투자해 2000만명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는 제2여객터미널 건설을 추진 중이며 사업비 5600만달러, 여객은 320만명 규모의 순례자 터미널도 건설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여객처리용량을 3400만명으로 확대하고 2030년에는 여객 9000만명 규모의 중동지역 대표공항으로 도약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동지역은 인천공항이 첫 번째 해외사업을 수주한 지역이기도 해, 이번 MOU 체결은 인천공항공사가 중동지역 진출의 불씨를 다시금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 기회 모색…양국 교역규모 회복
수출입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관련기관들의 적극적인 행보도 이어졌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란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한 기간 동안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는 1:1 상담회를 열고 투자·수출 기회를 모색했다.
우리나라는 이란 전체 수입의 9.5%를 차지하는 3대 수입국으로 수출업체들에게는 기회의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이란 수출입은 60억9800만달러로 주요 수출품목은 승용차, 자동차부품, LCD였다. 주요 수입품목은 원유로 전체 수입의 93%를 차지했고 상위 10개 수입 품목 모두 원자재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이란의 관문으로 주로 반다르아바스항을 이용하고 있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국적선사와 에버그린, UASC, OOCL. MSC, PIL 등 외국계 선사들이 반다르아바스항까지 운송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선사별로 기항지와 운항기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부산항에서 이란 반다르아바스항까지 23~28일이 소요된다. 현대상선의 경우 4700~5700TEU급 컨테이너선 7대를 투입해 이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UASC는 5000~7000TEU급 컨테이너선 7척을 투입해 부산-이란 간 해상 컨테이너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란 수출시 바이어가 밀집돼 있는 테헤란까지 소용되는 물류비는 내륙운송을 포함해 총 2천달러 수준이다. 한국의 수출화주는 항만까지만 운송하고 내륙운송은 이란의 수입자가 처리한다. 이란 내륙운송은 당국에서 허가받은 업체만 이용 가능하므로 운송거리 대비 운임이 비싼 편이며 할인 가능성이 거의 없다. 때문에 한국에서 이란 항구까지의 해상운송비와 이란 항구에서 테헤란까지의 내륙운송비가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6개 항구(Bandar Iman Khomeini항, Bandar Anzali항, Khorramshahr항, Assaluyeh항, Aprin항, Amir항)는 여전히 제재 대상자 운영 항구로 이용이 불가능하지만 향후 모든 항구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고 항만 개발이 본격화될 때를 대비해 이란의 항구별 현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장기적인 수출입 운송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화주-물류기업 동반진출로 효율성 높여야
무역협회는 “우리기업의 안정적인 현지 진출을 위해 화주-물류기업의 동반 진출로 진출 효율성을 높이고 정부는 이란 당국과의 조속한 분야별 양해각서(MOU) 체결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이란 내륙 물류시장 진출 지원 등을 다방면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17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수출기업의 물량이 물류기업의 이란 진출에 필요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현지화에 성공한 물류기업이 수출기업의 공급망 효율화와 가격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내륙운송 시장 개방시 트럭킹 비용 하락으로 우리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향상 및 수출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입뿐만 아니라 국내기업의 이런 현지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도 움직였다. 코트라는 2일 이란 투자청(OIETAI)과 양국 간 투자협력 및 촉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투자촉진을 위한 경제, 투자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해 이란 투자진출의 기회를 확보하겠다는 셈이다. 이어 코트라는 3일 이란 테헤란에 플랜트수주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 센터는 입찰 지원, 기자재 벤더 등록 등 플랜트 수주와 기자재 수출에 필요한 전 과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플랜트수주지원센터는 2006년 두바이를 시작으로 상파울루, 모스크바, 하노이, 요하네스버그에 설치됐다. 이란 테헤란 센터는 여섯 번째로 마련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제사절단의 방문 이후 우리나라가 이란과 경제 협력을 확대할 경우 올해부터 2025년까지 10년간 수출액은 845억달러에 달하고 일자리는 68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잠재력이 큰 이란 시장을 잡기 위한 이번 경제협력은 이란 진출의 첫 단추를 꿴데 불과하다. 현지 창고 운영, 트럭킹 등 각 업종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용여부 기초정보 제공과 활발한 현지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조달 능력을 높이기 위한 한·이란 금융협력도 필요하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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