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9 10:28

칼럼/당연한 것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물류안전'

한국물류연구원 / 김인호 원장

아직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꺼번에 속수무책으로 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의 원인과 구조 활동, 사고 수습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어찌보면 법과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부정과 비리, 잘못 된 관행에 대해 너그러웠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번 사고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이 먼저 지킬 것을 지키고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물류부문도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안전’은 뒷전으로 밀어 놓고 비용절감과 가격경쟁력만을 앞세우며 빠른 성장을 추구해 왔다. 물류현장엔 이번 참사의 주요원인인 과적뿐만 아니라 안전 사각지대가 수없이 많다. 작업 중 착용하게 되어 있는 안전모는 한 곳에 전시품처럼 모셔놓고 지게차와 차량, 컨베어와 작업원이 뒤엉켜 일하고 있다. 또한 안전수칙에 따라 화재등 재난 대피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물류현장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거리엔 일당을 벌기 위한 택배차량과 퀵오토바이가 질주하고 있고 고속도로엔 도착시간을 맞추기 위해 화물차량들이 밤을 새워 달리고 있다. 대형 냉동창고의 화재사고는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모두 안전과는 거리가 먼 물류현장들이다.  

안전에 관한한 이웃 일본에게 배울 것이 많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물류현장을 가보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지게차 기사는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고 일한다, 물류센터를 견학하는 사람도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하도록 하고 안내하는 직원은 수없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평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화물차량 바퀴에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장치( 輸止め)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보면서 당시엔 너무 고지식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안전에 대해서 융통성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물류의 안전관리는 기본적인 간단한 안전수칙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지키는가에 달려 있고 실제로 당연한 것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안전의 기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엔 안전행정부가 있고 안전과 관련된 법률와 규칙이 있으며 그것이 잘 시행되도록 하는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공단, 안전보건공단, 한국시설안전관리공단, 선박안전관리공단등이 있다. 교통안전공단에서는 교통안전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자에게 교통안전관리자라는 자격을 부여해 운수업체에서 교통안전업무를 전담하게 하고 있다. 교통안전관리자의 임무는 교통안전관리규정의 시행 및 그 기록의 작성·보존, 교통수단의 운행·운항 또는 항행과 관련된 안전점검의 지도 및 감독, 도로조건, 선로조건, 항로조건 및 기상조건에 따른 안전 운행에 필요한 조치, 차량을 운전하는 자 등의 운행 중 근무상태 파악 및 교통안전 교육·훈련의 실시, 교통사고원인조사·분석 및 기록 유지, 교통수단의 운행상황 또는 교통사고상황이 기록된 운행기록지 또는 기억장치 등의 점검 및 관리 등을 그 업무로 한다.

참으로 잘 되어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지입제로 운영되고 있는 화물운송업계에서 교통안전관리자 제도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교통안전관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되어있는 기업엔 규정대로 제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마 교통안전관리자가 규정대로 근무시간 중에 교육을 하고 훈련을 하고 점검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자리를 제대로 지키기 힘들 것이다. 법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무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곳은 별로 없을 것이고 약간의 직무수당을 받는 댓가로 형식적인 보고서와 안전교육일지를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화물자동차의 과적과 과속문제를 깊숙이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낮은 운임으로 화물을 운송하려는 화주의 욕심과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운전자(대부분 차주이며 개인사업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안이란 주장이 있지만 차량 공급과잉과 구조적인 모순을 갖고 있는 운수사업법아래서는 근본적으로 개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퀵서비스는 관련 법규나 제도 조차 없으며 종사자들에 대한 관리나 사회보장제도도 물론 없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비현실적인 법률과 제도는 모두 역사성을 갖고 있을 것이나 그래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류는 그 자체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의 안전망을 유지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물류는 의약품과 식품, 위험물등의 안전보관과 운송을 책임지고 있으며 재난 발생시 구호품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이후 자국으로 들어오는 화물에 대한 보안 검색을 강화해 2007년에 물류보안경영시스템( ISO 28000) 인증제도를 만들었고 일본도 쓰나미 이후 재난물류시스템을 재구축하고 있다. 우리도 첨단 ICT를 융합해 안전에 대한 기술을 개발하고 국제안전기술표준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물류는 안전을 유지하는 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안전을 고객에게 보증하고 신뢰할 수 있게 해 마음 편하게 생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통 중 발생할 수 있는 안전과 보안에 대해 이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 발생 시 즉시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과 번영하는 기업, 믿을 수 있는 국가는 안전이 기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습관처럼 지켜야 한다. 안전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 되어야 하고 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번 참사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분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안전 불감증이다. 바로잡아야 할 비정상적인 관행과 제도가 너무 많다. 그러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서슬퍼런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댄다면 그렇지 않아도 많은 규제를 더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보다는 있는 법규를 제대로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있는 법규나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찾아내어 그것을 보완하고 개선해 지킬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 모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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