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5 17:00

기획/ 새해 기상도 ‘정기선 웃고 벌크선 울고’

벌크선시장 공급과잉에 운임약세 이어져
‘컨’선사 “정초 운임회복 성공적”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10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한다. 해운업계도 용의 기운을 받아 안아 지난해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길 바라고 있다. 해운업계의 두 축인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은 어떤 모습으로 새해를 맞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컨테이너선업계는 연초 계획한 운임회복이 성공리에 진행돼 고무적인 반면 벌크선업계는 여전히 부진의 늪을 헤메는 모습이다.

새해 들어 BDI 대폭 하락

지난해 건화물선운임지수(BDI) 평균치는 1549를 기록했다. 2010년의 2758에 비해 44%가량 하락한 수준이자 해운업계의 슈퍼사이클이 시작되기 직전인 2002년(1137p) 이후 9년만에 최저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해운산업이 곤두박질쳤던 2008~2009년보다도 지난해가 더 심각한 부진을 보인 것이다. 시황 침체는 선복공급과잉이 가장 큰 이유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신조 벌크선 인도량은 사상 최초로 1천척을 넘어섰다. 재화중량톤(DWT)으로 따져 9500만t가량의 선박이 시장에 풀린 것으로 파악된다. 2010년에 비해 19%나 늘어났다.

자연재해들도 잇따라 시장을 강타하면서 벌크선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세계 1위의 철광석·석탄 수출국인 호주 동북부지역 사이클론을 시작으로 철광석 수입대국 일본의 대지진,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태국의 대홍수까지 지난해 벌크선업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노르웨이 선박중개사인 RS플라토(Platou)에 따르면 지난해 케이프사이즈 단기수송계약(스폿) 평균 일일 용선료는 1만6200달러였다. 2010년의 3만2800달러에 비해 반토막났다. 파나막스와 수프라막스도 각각 1만4600달러 1만4400달러로 2010년의 2만5800달러 2만2400달러에 비해 43% 36% 하락했다.

케이프사이즈 중고선 가격은 현재 3700만달러대를 기록 중이다. 지난 2008년 7월 1억5500만달러에서 무려 76.1% 폭락했다. 이를 두고 염정호 해운거래정보센터장은 “아파트는 10% 정도 하락하면 폭락했다고 하는데, 선가는 4분의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해운업계의 급격한 부침을 꼬집었다.

다만 케이프사이즈 용선료는 4분기 이후 상승조짐을 보였다. 이 선형 일일 용선료는 11월 2만5800달러 12월 2만9100달러로 오름세를 탔다. 중국의 철광석 수요가 늘면서 케이프사이즈 시황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바이어들이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자 저가매수를 위해 수입을 늘린 까닭이다. 지난해 11월까지 중국의 철광석 수입량은 6억2201만t을 기록, 1년 전에 비해 11% 늘어났다. 반면 파나막스와 수프라막스 평균 용선료는 11월 1만5300달러 1만4800달러 12월 1만4600달러 1만3000달러로 약세가 이어져 선형별로 체감하는 시황의 정도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케이프사이즈만의 상승곡선은 국내 벌크선사에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STX팬오션이나 대한해운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벌크선사들이 중소형선박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정관리 중인 대한해운의 경우 운영선박 70여척 중 70% 이상이 수프라막스 또는 파나막스 선박이다. 용선 선박 중엔 90%를 차지한다.

중견 벌크선사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선사들은 소형선의 비중이 매우 높아 현재의 시황이 더 안좋게 느껴질 것”이라며 “현재의 운임으로는 금융비를 제하고 나면 선원비나 보험료 충당도 힘든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케이프 위주 시황호전 국내선사 ‘안반가워’

이와 비교해 창명해운이나 폴라리스쉬핑 등의 경우 사선에서 케이프사이즈 이상 선박의 비중이 높아 비교적 지난해 연말 대형선 시장의 상승세를 반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창명해운은 32척의 사선대 중 무려 17척이 케이프사이즈다. 폴라리스쉬핑은 15척의 사선대 중 초대형광탄선(VLOC)이 11척이고 케이프사이즈가 3척이다. 그 이하 선형은 선박 명단에 아예 없다.

3일 새해 들어 처음 발표된 BDI는 지난해 마지막 발표치보다 1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지난해 12월23일 1738이었던 BDI는 이날 1624를 기록했다. 연휴동안의 운임하락세를 반영한 결과라 하지만 하락폭이 꽤 크다. BDI 흐름을 주도하는 케이프사이즈운임지수(BCI)가 3287에서 2955로 332포인트나 떨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파나막스운임지수(BPI)는 1645에서 1619로 26포인트, 수프라막스운임지수(BSI)는 1176에서 1158로 18포인트 하락했다. 케이프사이즈에 비해 낙폭이 작은 편이다. 이날 케이프사이즈 평균 용선료는 2만3991달러로, 전 영업일에 비해 -3521달러 하락했다. 파나막스와 수프라막스는 각각 185달러 93달러 떨어진 1만2927달러 1만2111달러였다.

올 한해도 벌크선 시장의 전망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게 시장의 가장 큰 고민이다. 올해에도 신조선들의 시장 공습은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발주잔량은 2억t(재화중량톤)가량인 것으로 파악된다. 거기다 지난해 인도 연기된 2600만t까지 추가할 경우 2억2천만t이 넘는 선박들이 조선소에서 새롭게 지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케이프사이즈 선박은 전체 선대의 15%인 3500만t이 올해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나막스선박은 15% 늘어난 2400만t, 수프라막스선박은 12% 늘어난 1600만t, 핸디사이즈선박은 9% 늘어난 800만t의 신조 선박량이 시장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기다 브라질 광산회사인 발레가 짓고 있는 40만t급 초대형 벌크선인 차이나막스도 27척 40만t이 시장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최근 늘고 있는 선박폐선이 올해에도 어떻게 진행될지가 공급량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벌크선 해체량은 사상 최고치인 2100만t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선대의 3.5%에 달하는 양이다. 28년 된 케이프사이즈 선박의 중고선 가격과 해체 가격이 1500만달러대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면서 노후선 해체가 크게 늘고 있다.

선복은 모두 두 자릿수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물동량 성장 폭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해운관련 리서치 기관들은 올해 물동량 성장률을 3~6% 정도로 예상했다. 영국 클락슨과 우리나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이 3%로 가장 낮게 예상했으며, RS플라토는 5~6%로 점쳤다. 심슨스펜스앤드영(SSY)은 6.6%로 가장 높게 내다봤다.

‘컨’선 시장 합종연횡 성공했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새해 들어 다소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는 평가다. 혹독한 불황에 떨었던 정기선사들이 연말에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체질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한진해운 코스코 케이라인 양밍의 CKYH얼라이언스는 에버그린과 유럽항로에서 손을 잡았다고 밝히며 정기선 시장 구조조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정기선 시장 합종연횡의 서막은 MSC와 CMA CGM이었다. 세계 1,2위 선사인 이들은 지난 11월 말 제휴를 발표해 해운업계를 떠들썩케 하며 머스크라인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뒤이어 지난달 20일 뉴월드얼라이언스와 그랜드얼라이언스가 현대상선을 비롯해 하파그로이드 APL MOL NYK OOCL의 G6로 뭉친다고 발표한 뒤 CKYH마저 세계 7위 선사인 에버그린을 영입함으로써 유럽항로에서 이른바 ‘빅4’ 체제를 완성했다.

CKYH-에버그린 제휴는 예견된 일이었다. 기존 선사들의 얼라이언스 결성으로 CKYH는 졸지에 선박량 순위에서 뒤처졌으며 에버그린은 세계 3위 선사였다가 보수적인 경영으로 7위까지 추락했기에 새로운 파트너 영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CKYH가 유일하게 아시아권 선사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대만선사인 에버그린의 합류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정기선 시장의 새로운 흐름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체제의 유럽항로 서비스가 본격적인 출항에 나서려면 3달 정도를 기다려야 함에도 정초 선사들이 실시한 운임회복이 모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얼라이언스 변화와 무관한 북미항로마저 운임회복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선사들을 웃음 짓게 했다.

유럽항로 취항선사들은 1월1일부터 TEU당 200~250달러의 운임회복을 실시했다. 운임 회복은 기본운임인상(GRI) 성수기할증료(PS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재 시점에서 평가했을 때 운임회복은 성공적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피트컨테이너(TEU)당 200달러를 올렸으며 MSC와 CMA CGM 연합, 중국 코스코 등은 225달러를 인상했다. 선사들은 단기수송계약(스폿) 운임의 경우 대부분 당초 목표했던 인상폭을 모두 운임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북미항로도 운임회복 성공의 단맛을 보고 있다. 선사들은 1월1일부터 40피트컨테이너(FEU)기준 400달러를 전액 인상했다. 이 항로에서도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국적선사 뿐 아니라 외국선사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로써 한국-유럽항로 운임은 TEU당 900달러 안팎, 한국-북미서안항로 운임은 FEU당 2100달러대까지 치고 올라갔다. 특히 유럽항로는 실을수록 적자를 내던 상황에서 수익성이 다소 개선될 것으로 선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항로 운임은 유가할증료(BAF) 750달러만 받고 화물을 수송하는 형편이었다.

운임회복의 성공은 중국시장의 강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중국 시장에선 현재 소석률이 만적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상하이발 해상운임도 모두 큰 폭으로 인상됐다.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따르면 12월30일 기준 상하이발 북유럽행 운임은 TEU당 701달러를 기록, 전주 대비 165달러 상승했다. 상하이-북미서안 운임은 FEU당 1692달러로 전주에 비해 268달러, 상하이-북미동안 운임은 2892달러로 363달러나 회복했다.

외국선사 한 관계자는 “한국시장의 물동량은 강보합세 수준이라면 중국발 화물은 매우 강한 편”이라며 “구정을 앞두고 밀어내기 물량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현재 운임수준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사들은 3월부터 새로운 제휴 체제에 따른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큼 시장 상황을 호의적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강구하고 있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개편된 얼라이언스의 서비스는 항만 기항 등을 과감히 줄여 운송기간을 단축하게 된다”며 “새로운 파트너체제와 높아지는 서비스 품질을 무기로 시장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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