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2 17:49

KSG에세이/ 바다의 날에 즈음, 해양문학 산책 - (8)

서대남 편집위원
“바다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삶의 무대”
원양어선 船長 천금성(千金成) 海洋소설가 (하 - 3)

대개의 경우 배를 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기대한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선원수첩이란 것을 가져야 한다. 세상이 모두 그러는 판이지만 거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원조회를 돌리자면 필요한 서류를 떼는데 돈이 드는 건 뻔한 일.

조회를 온 자에게도 돈을 쥐어 주고 석 달 넉 달이나 걸려서 겨우 해운 관청에 가 수첩을 발부 받으려면 또 얼토당토 않게 손을 내밀었다고 그 당시의 실정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공정가란 게 있어 안 건네 줄 수가 없다는 것.

배를 타는 누구나가 다 입을 모아 그 내막을 말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도 수첩을 발부 받았다면 그나마 또 괜찮은 편이다. 몽땅 떼이는 수도 있다고 했다. 이상의 얘기들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어선뿐 아니라 외항상선쪽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필자도 기억한다.

▲ 승선알선 비리등 작품 곳곳서 선원들의 삶과 애환 담아내

부산 중앙동 일대를 중심으로 소위 매닝브로커라 해서 사채업자나 암달러상 비슷하게 좁은 사무실을 차려놓고 해상 인력을 조달하던 브로커 업종이 성행했었다. 어떻게든 수첩을 가졌으니 이젠 배를 타야 한다. 하지만 타는 길을 모르고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는다. 돈이 든다. 요구하는 돈을 준다. 그 협잡꾼은 선장과 그 돈을 알게 모르게 나누어 먹고 일단은 승선을 시킨다. 그 선원은 지금까지 돈이 얼마큼 들었건 배를 탔으니까 이제부터 벌면 된다 하고 희망에 부풀게 된다. 대망의 출어를 한다. 어장에 도착한다. 조업이 시작되면 이건 바로 지옥의 문턱이다. 밤과 낮의 구별이 없다.

하지만 이런 고난도 귀국하게 되는 날 얼마큼의 돈이 쥐어질 수 있다는 희망, 단지 그 기대만으로 견뎌낼 수가 있다. 그리고 2년이나 3년 후 귀국한다. 손에 쥐어지는 돈이 한 푼도 없다. 고향으로 돌아 갈 귀가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귀선은 적자입니다.”하고 회사에서는 계약이나 약조의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간 두서없이 4회에 걸쳐 기술했듯이 천금성 작가는 중편으로 <허무의 바다>, <은빛 갈매기>, <아르고선> 등을 비롯하여 장편으로는 <표류도>, <지금은 항해중>, <남지나해의 끝>, <시지프스의 바다> 등을 썼고 단편 소설로선 <야간항해>, <출항연습>, <식민지의 항구로부터>, <좌초선 부근>, <살아 남은 바다>, <함대령의 분노>, <이 선장의 바다> 등이 있으며 또 다른 창작집으로는 <바다의 끝>, <이상한 바다>, <외로운 코파맨>, <바다로 간 농부> 등 실로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 여느 작품과 달리 차별화시킨 듯한 제목의 1993년 발표작 <인간의 욕망>은 10년이 넘게 항해와 어로 등 해상생활을 하며 주로 바다를 배경으로 작품을 썼던 천 작가가 여성을 주제로 한 첫(?) 장편소설 같다. 미모의 여주인공 장하령을 둘러싼 사랑과 배신과 음모 속에서 변질된 인간의 본능을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인도양 漁勞체험 연재작품 묶어 단행본 ‘불타는 오대양’ 펴내

근년 2010년의 작품 <불타는 오대양>은 몇 년에 걸쳐 ‘월간 현대해양’에 연재한 항해 얘기 가운데 가장 격동적인 참치잡이만을 압축하고 있다. 작가가 처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 된 동기에서부터 난생 처음 마주한 인도양에서의 온갖 험로와 그 뒤 선장이 되어 세계의 바다를 두루 항해하면서 체험한 온갖 이야기 중에서 참치잡이에 대한 사건 사고만 집약해 담은 내용들을 집대성하여 항해일지처럼 기록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첫 머리로 해서 <바다로 간 농부>, <남태평양 사모아>, <아! 인도양>, <조난선과 구조선>, <지옥의바다>, <적자 항해>, <무정한 시뇨레따여!>, <다시 인도양으로>, <여의도에 좌초하다>, <빈손 항해>, <살아 숨쉬는 바다 - 태평양>, <나의 항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로 연재를 끝내며 늘 “육지여 나를 부르지 마라! 나는 바다가 미치도록 좋다!”던 천 작가의 삶과 바다와 문학과 작품을 잘 담아냈다.

한편 필자는 활자매체로 독자를 만나는 소설가로서만 알고 있던 천 작가가 전파매체인 방송에서도 상당기간 활동했었단 사실을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첨 알았다. 경향신문 <표류도> 연재와는 별도로 문화방송(MBC)에 들어가 세계 70개국을 돌며 ‘의지와 도전의 현장, 오대양을 가다’란 해양 다큐멘터리 3부작을 완성하여 방영했고 작가도 이를 보람있는 일로 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모룡교수의 해양문학과 천금성 소설가 얘기를 인용한 부경대학 교수는 ‘평생을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며 살아온 천금성, 그의 얼굴엔 고독함이 묻어나온다.’ 제하의 글에서 작가를 만난 인상과 분위기를 비교적 소상히 기술했다. 짙은 감청색 베레모를 쓰고 나온 그는 만나자마자 악수를 청하며 이야기 장소를 정했단다.

▲ 한때 MBC 편집위원장, 70개국 돌며 3부작 다큐 제작도

“호프 한잔 하러 가세. 한 두시간 가지고 될 것도 아니고…” 원양어선을 탔던 사람이라고 하기보다는 대학 교수님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썼다. 생존을 위한 어부로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와 결심으로 한 평생 바다와 함께 한 까닭일까? 원양어선 교육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단다.

“그때 영도 남항동에 내려왔었지. 해양대, 수산대 출신 애들 다 제치고 내가 수료할 때 전과목 100점 맞고 일등 했어. 교수 제의도 들어왔는데 내가 거절했어. 배 타러 가야 된다고…” 교수직을 버리고 힘든 배타러 간댔으니 알 만 했겠다.

그리고 <황강에서 북악까지>로 좌초하게 된 경위를 “고등어 같이 싱싱한 이 천 선장을 말이야… 내가 원양을 12년간 탔지,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지, 글 재주도 있지, 그 사람들은 내가 딱 적임자라고 생각했을거야. 난 그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그 일을 수락했어. 참 순진했지…”

전두환 전기, 12.12 광주사태 다큐멘터리 제작을 포함 5권의 책을 삼년 동안 쓰게 되었다고 한다. 특전 사령부 사람들 보는 앞에서 광주 12.12사태 전투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보면서 메모하여 책을 쓴 그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지 않았단다. 그는 아직도 머릿속에 그 내용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런 그에게 MBC 방송국에 한 자리를 주며 바다로 가고 싶어 하는 천금성 작가를 붙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MBC 편집위원장 시절 천 작가는 천금성다운 도전을 했었다고 말했단다. 그것은 바로 해양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그 때 수사반장 한참 잘 나갈 시절이었는데 출연진이 저 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아! 오늘 수사반장 촬영날이구나.’하면서 ‘야! 인제 지겹다 수사반장 고만 해!’하면 주인공은 울상이 되어 나를 쳐다보곤 했어” 하면서 MBC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상당했음을 자랑도 했다는 것.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온 낙하산 인사였던 그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70개국을 돌며 찍는 해양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한다. 투자비용도 만만치 않고 기간도 6개월 이상 소요되는 대규모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기획서를 MBC 고위층과 청와대에 보낸 결과 ‘의지와 도전의 현장 오대양을 가다’라는 3부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게 된다. 경계없이 온갖 장르를 넘나든 달인(?)

30분짜리 테이프로 500개 분량을 찍어 왔고, 찍어 온 화면들은 아직도 자료화면으로 나오곤 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사해에 떠있는 장면 나올 땐 항상 내가 나와. 거기 떠있는 사람이 나야.” 다큐멘터리는 1부 ‘내일을 향한 생과 사의 24시’ 2부 ‘해양전쟁시대’, 3부 ‘인류미래의 종착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MBC 자료실에 보관 중이라는 것.

▲ “난 육지에선 죽은몸” 傳記집필 惡夢씻고 재승선후 작품계속

다큐멘터리 제작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알았다. 정권이 바뀌면 바로 그만둬야 할 신세였기에 천 작가는 사표를 제출하고 MBC를 나왔다. 그는 다시 바다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배를 타지 못했다. 배를 타지 못한 기간이 1979년부터 90년까지였다. 천금성 작가는 그때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다.

안주도 없는 술상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기억, 글을 써서 가져가도 전두환 전기를 쓴 사람이란 것이 알려지자 어느 출판사에도 그의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고, 생활이 점점 악화되었다. 너무 힘든 나날이었다고 했다. 바다로 떠나지도 못했고 육지에서도 살 수 없었다. 그렇게 십여년 정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악몽 같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동안 선장 자격증은 휴지가 되어버렸지만, 어떻게 해서든 바다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했단다. “나는 육지에서는 죽은 몸이야. 바다에 나가야 살아있어.” 우여곡절 끝에 그래서 다시 말단 항해사로 원양어선을 타게 됐던 것. 꿈꾸던 바다 한가운데 도착하여 그는 “나 다시 돌아왔다 !”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어느 누가 미쳤다고 해도 그는 바다가 너무 좋았다. 바다를 사랑했다. 이 인터뷰 시점에 작가는 일흔의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시 바다에 나갈 궁리중이었다. 바다로 다시 나가고 싶다는 얘기가 한국해대 총장 귀에 들어가 실습선 견학 승선이 이뤄지길 희망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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