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지급기준 높아 현실성 없어”
●●● 현 정부의 녹색물류정책과 함께 주목을 받아왔던 철도물류가 경제불황 여파와 항만시스템 변화의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만 물동량이 사상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철도컨테이너 물동량은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한참 밑돌고 있다. 올해 들어 철도물동량은 지난해에 비해 신장됐다고 하나 금융위기 이전에 견줘 70%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전환교통보조금제도를 도입키로 해 철도물류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물류협회에 따르면 4월까지 철도화물수송실적은 1245만4천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98만5천t에 견줘 3.9% 늘어나는데 그쳤다. 2008년의 1478만7천t 2007년의 1413만t에 비해선 두 자릿수 낮은 실적이다. 경기회복세로 다른 물류분야 성적표가 높은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컨테이너 부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예년 수준에 비해선 한참 뒤처진다. 1~4월 철도컨테이너물동량은 20피트 컨테이너(TEU) 29만5028개를 기록했다. 기저효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3만1098개에 비해 27.7% 늘어났다.
철도물동량 금융위기 이전의 70% 수준
하지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선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철도 물동량이 정점을 찍었던 2008의 40만3295TEU에 비해 10만TEU 이상 낮다. 2006년의 33만7219TEU 2007년의 36만7328TEU에 비해서도 각각 12.5% 19.7% 뒷걸음질친 실적이다. 29만4579TEU를 기록했던 2005년 수준으로 후퇴한 것으로 블록트레인(전세형 화물열차)을 물류업계에 도입하기 이전 실적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블록트레인은 요 몇년간 철도물류활성화에 크게 기여해왔다. 코레일은 유럽의 선진 철도물류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지난 2004년 운송사와 연간 수송계약을 맺고 원하는 시간대에 목적지까지 직통으로 연결하는 블록트레인을 처음 국내에 선보였다. 당시 코레일은 물류자회사인 코레일로지스를 설립하고 25량 연결의 블록트레인 1개 열차를 경부노선에 시범적으로 올렸다. 코레일은 블록트레인의 잠재성을 인식해 특허청에 상표등록까지 했다.
2년간의 시범운영 이후 블록트레인이 철도물류 활성화에 크게 보탬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된 코레일은 2006년 8월 일반 물류기업으로 이를 확대했다. 블록트레인은 열차운임이 일반화물열차보다 20~30% 가량이 싼데다 운송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물류기업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블록트레인 도입으로 이틀 걸리던 철도물류 수송시간이 반나절로 단축됐다.
블록트레인의 도입 이후 철도 컨테이너 수송은 승승장구해왔다.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지난 2005년 두 자릿수 성장세(14.5%)를 보인데 이어 2006년엔 철도가 컨테이너 수송을 시작한 지난 1972년 9월 이후 34년만에 연간 수송량 100만TEU 고지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 뒤 2007년 112만7천TEU 2008년 118만5천TEU 등 150만TEU 고지를 향해 한해한해 착실히 발걸음을 떼 왔다. 블록트레인은 전체 철도 컨테이너 물량의 4분의 1 수준인 30만TEU 가량을 수송했던 터였다.
블록트레인은 매년 꾸준히 늘면서 현재 총 9개 노선 18개 열차가 운행 중이다. 올해 3월엔 벌크양회 부문에서도 수도권 4개 열차 대전권 1개 열차를 개설하기도 했다.
철도물류 활성화에 기여해왔던 블록트레인이었지만 지난해 불어닥친 경기한파의 피해를 비켜갈 순 없었다. 지난해 들어서자마자 반토막에 가까운 물동량 감소로 주력노선인 경부구간을 중심으로 운행 중단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오봉-부산 구간의 경우 주간 1~2차례의 운휴가 이어졌으며 군산 GM대우 물동량을 타깃으로 도입됐던 군산-광양간 블록트레인은 개설한지 7개월 만에 철수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블록트레인 운행중단은 크게 잦아든 모습이다. 열차 전체를 임대하는 블록트레인의 속성상 열차를 놀릴수록 물류회사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탓이다. 물류회사들은 일반 컨테이너열차에 실릴 화물을 옮겨 싣는 방법으로 블록트레인 이용률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블록트레인 운영사 관계자는 “올해 들어선 휴일에도 가동할 만큼 블록트레인 운행률이 좋아졌다”면서도 “하지만 절대 물동량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코레일이 철도수송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 지원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도로에서 철도나 연안해운으로 화물운송을 전환하거나 신규 화물을 수송하는 화주 또는 운송업체에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전환교통보조금제도를 다음달부터 실시할 방침이다.
지난 3월 관련 고시인 ‘전환교통협약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으며 첫 해 사업비로 국고 17억5천만원과 코레일 예산 7억5천만원 등 25억원이 책정됐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대상자를 선정해 다음달 초 협약을 체결한 뒤 분기별로 물량을 정산해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환수송보조금 지급으로 연간 70만t 가량의 도로화물을 철도로 전환해 현재 6.8%대인 철도의 화물 수송분담률을 2012년까지 12%대로 끌어올린다는 계산이다.
3년간 평균물량 기준 현실성 공방
보조금 단가는 당초 알려졌던 t·km당 10원보다 낮은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단가가 너무 높게 책정되면 지원할 수 있는 물동량 규모가 적어지게 되고 반대로 단가가 너무 낮으면 화물전환에 대한 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와 관련 전환교통보조금단가심의위원회는 지난 8일 단가 결정을 위한 회의를 가진 바 있다. 보조금 단가를 7원으로 가정할 경우 경부구간에서 철도물류 전환으로 받게 되는 보조금은 컨테이너 1개당 7만원을 조금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의욕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보조금 지급기준이 너무 높게 정해졌다는 점은 향후 사업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보조금 지급 기준을 정하면서 기준물량과 실적물량 목표물량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기준물량은 ‘지난 3년간 연간 평균 물량’과 ‘직전 연도 물량’ 중 큰 수치를 일컫는다. 지난해 물동량이 바닥이었다는 점에 미뤄 기준물량은 ‘지난 3년간 연간 평균물량’으로 굳어지는 셈이다. 실적물량이란 협약을 체결한 기간 동안 철도나 연안해운으로 실제 수송한 물량을 가리킨다. 목표물량은 기업이 협약기간동안 전환수송의 목표치로 제시한 물량이다.
정부는 실적물량이 목표물량의 50% 이상 도달했을 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목표물량을 10% 이상 초과했을 경우 일괄적으로 10%의 가중치가 부여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물량을 써낼 수 있도록 이 같은 규정을 정했다”며 “일부 기업들이 터무니없는 목표치를 써내서 협약을 체결한 뒤 달성하지 못할 경우 (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다른 기업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기업들은 기준물량을 ‘지난 3년치 평균물량’으로 정한 것을 두고 사실상 보조금을 안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철도 물동량이 지난해에 비해 늘고는 있다지만 고점을 기록했던 2007년이나 2008년보다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 간 연간 철도물동량 평균치는 103만7천TEU로, 업계는 올해 이 수준을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부산 신항 활성화와 이에 따른 북항 물동량 감소, 지방항만 개발 등의 이유로 향후 철도 물류 전망은 밝지 못하다. 철도물동량 회복에 최대 걸림돌은 신항 활성화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자체 부두를 개장하면서 신항으로 건너간 것을 비롯해 올해 들어선 싱가포르 APL이 신항 PSA·한진 부두로 둥지를 옮겼다. 최근엔 일본 MOL도 신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 결과 지난 4월 신항 물동량은 48만TEU를 기록, 전체 부산항 물동량의 40%를 차지했다. 지난해 20%대에 불과했던 신항 점유율이 1년 새 2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앞으로도 신항으로의 선사 이동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어서 점유율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신항에 아직까지 철도 노선이 개설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신항 기점 화물을 철도로 수송하기 위해선 신항과 부산진역 구간을 화물차로 셔틀운송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이때 들어가는 육송 비용은 최대 10만원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철도화물운임까지 감안할 때 처음부터 육상수송을 이용하는 편이 더 저렴하다고 물류기업들은 말한다.
물류기업 A사 관계자는 “부산항 물동량이 신항으로 옮겨가면서 신항에 노선을 확보하지 못한 철도물류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신항 철도망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예년 수준의 물동량 회복은 힘들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물류업계는 신항에 철도노선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협소한 컨테이너장치장(CY) 여건으로 북항만큼의 철도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산진역 CY는 9만6천㎡(2만9천평) 규모에다 리치스태커나 야드트랙터 등 하역장비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 하루 1천량의 화물열차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신항은 직상하차 방식으로 철도노선이 조성돼 CY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철도노선이 문을 연다 하더라도 혼잡상황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 많은 이유다.
평택항이나 인천항 등 경부축에서 벗어난 항만들의 성장도 장거리 물량에 강한 철도물류에 위협이 되고 있다. 두 항만 모두 올해 들어 역대 최고실적을 기록하는 등 금융위기 여파를 깨끗이 털어낸 모습이다. 특히 평택항의 경우 지난 2008년 한진해운의 북미노선을 유치하며 원양항로 항만으로 발돋움해 부산항 물동량을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철도 물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지난 3년간 물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동안 철도물류에 이바지 해왔던 업체가 역차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올해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어 고시 개정은 사실상 어렵다”며 “신규물량만으로 따지면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도로에서 철도로 전환하는 물량을 기준한다는 측면에선 높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운송사들간 물량의 수평이동을 막는다는 취지로 보조금 지원대상에 참가할 때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한 것도 물류업계로부터 쓴소리를 듣고 있다. 컨소시엄 참여사간 불화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시범사업이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물류업계의 참여는 저조할 것이란 관측이 많은 이유다.
업계는 정부가 녹색물류 가치 실현에 힘쓰는 한편으로 물류기업들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는 정책 마련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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