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9 10:34
<창간35주년 특집> 한국포워더 30년을 조명한다(下)
90년대 이후 업체수 급증, 신운송상품 선봬
콘솔·씨앤에어, 오지 개척 등 국제물류시장 발전 견인
90년대로 들어서면서 복합운송업계는 제도적인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가장 먼저 일어난 제도적 변화는 교통부의 복합운송주선업 도입. 교통부(現 건설교통부)는 1992년 10월 화물유통촉진법(화촉법)을 개정해, 복합운송주선업이란 업종을 제도화했다. 이 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복합운송주선업자가 해상과 항공등 2가지 이상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화물을 일괄운송주선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복합운송업이 국내에 들어온지 20여년만에 해상과 항공의 분리로 반쪽짜리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국내 포워딩업은 일관운송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됐다. 당시 등록기준은 ▲자본금 5억원 이상 ▲컨테이너장치장 혹은 국제공항 인접 지역에 165㎠ 이상의 화물집화창고 소유 ▲1억원이상 보증보험에 가입 등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교통부가 관할하고 있던 기존 항공포워딩을 대체하는데 그쳤을 뿐 해운항만청에 등록돼 있던 해상포워딩은 규합하지 못해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교통부는 복운주선업 도입과 함께 93년 12월 항공법을 손질, 주선업과 대리점업을 삭제해 복운주선업으로 일원화했기 때문이다.
복운주선업의 법제화와 함께 92년 12월3일 31개사를 회원사로 한국복합운송주선업협회가 정식 발족하고 이듬해인 93년 1월8일 교통부의 인가를 받았다. 이후 교통부가 항공법의 항공화물운송주선업 규정을 폐지하면서 복합운송주선업협회와 항공화물운송주선업협회는 93년 10월30일 합병하기에 이른다. 양측의 합병으로 1994년 2월, 94개사를 회원사로 한 한국복합운송주선업협회가 첫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정식 출범했다.
96년 해상·항공 하나돼
복합운송주선업은 해상운송주선업을 통합하지 못함으로써 명칭만 바뀐 항공운송주선업이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양 업종은 95년까지 별도 체제로 운영돼 왔고 복합운송주선업은 항공중심의 포워딩을, 해상운송주선업은 해상중심의 포워딩 업무를 각각 벌였다. 이렇게 되자 포워딩업계 내에서 두 업종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정한 복합운송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해상과 항공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해운법의 해상운송주선업을 없애고 이를 복합운송주선업으로 일원화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개정 화촉법에 담아 국회에 상정한다. 양 업종을 통합한다는 내용을 담은 화촉법 개정법률안이 95년 11월30일 국회에서 통과되고 96년 6월 발효됨으로써 해운법상의 해상화물운송주선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복합운송주선업으로 완전 일원화됐다. 또 복합운송주선업 단체인 한국복합운송주선업협회(KMTA)와 해상운송주선업 단체인 한국국제복합운송업협회(KIFFA)는 한국복합운송주선업협회로 단일화됐고 초대회장엔 KMTA회장이던 대진항운 박창현사장이 선임됐다. 통합당시 해상화물운송주선업체 410개사, 복합운송주선업이 240개사등이었다.
통합 이후 복합운송업체들은 급격한 업체수의 증가를 맞는다. 통합당시 650개사였던 복운업체는 97년 736곳, 98년 907곳에서 99년엔 1204개사로 1000개를 뛰어넘었고 2002년엔 1909개사가 등록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매년 200~300개의 복운업체가 새로 들어온 것이다.
현재 포워딩업체수를 구체적으로 추산하기엔 무리가 있다. 지난 1999년 건교부가 등록업무를 각 지자체로 이관하면서 등록업체의 전체적인 합산을 내기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복운업체의 세포분열로 등록업체만큼의 무등록업체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업계는 등록업체 1,700여곳 무등록업체 1,300여곳 등 3천개업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이같은 급격한 업체수 증가는 포워더들의 불황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포워딩시장 대외개방, 외국기업 진출러시
한편 복합운송시장은 두차례의 대외개방을 맞으면서 큰 격랑을 맞는다.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른 외국의 시장개방 압력이 날로 거세지면서 정부가 복합운송업 개방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먼저 개방된 곳은 해상포워딩 시장. 92년 8월 한국 정부는 미국과 가진 해운회담에서 해상운송주선업의 외국인 투자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합의하고 기존 50%였던 외국인의 투자범위를 100%로 전면 확대개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해운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 93년 3월10일 통과시켰다. 개정법률안에는 해상운송주선업, 해운대리점등 해운관련업의 외국투자를 같은해 7월에 완전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 해운대리점의 사업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정부는 92년 1월 미국 포워딩업계의 제소로 우리나라 운송업체와 한국인 소유 NVOCC(무선박운송인) 54개사에 대해 미연방해사위원회(FMC)가 자격정지의 제재안을 내리는 등 통상마찰이 심해지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상운송주선업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었다.
해상포워딩시장 개방으로 외국계 포워더들의 100% 현지투자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전면개방 이듬해인 94년 5월 미국의 대형 포워딩인 익스피다이터스 인터내셔날(EI)사가 100% 현지투자로 국내에 진출한데 이어 프랑스 최고의 포워더인 에스디브이사가 같은해 11월15일 국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또 판알피나도 같은해 합작투자법인에서 100% 현지법인으로 전환했다.
이전까지는 미쓰이소꼬, 고또, 프리츠, 판알피나등 15개업체가 합작투자형태로 국내에 진출해 있었다.
이후 96년 1월 항공포워딩 시장도 본격적으로 개방되기에 이른다. 교통부는 이전부터 대외적으로 약속했었던 항공화물시장의 개방을 1996년 화촉법 개정과 함께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해상포워딩 개방에 이어 항공포워딩 시장도 개방되면서 국내 복합운송 시장은 100% 개방되게 됐고 이후 외국계 글로벌 포워더들의 진출 러시로 국내 복운업계는 이들 거대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96년 항공운송시장 개방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외국계 포워더는 스위스계 퀴네앤드나겔과 영국계 엑셀(2005년 DHL에 합병), 일본계 긴데쓰월드익스프레스(KWE)였다. 먼저 KWE는 기존 대리점을 맡고 있던 한국포워더 SEI를 인수함으로써 국내에 진출 했다. KWE는 일본 본사가 50%, 미국법인이 30%,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10%씩의 출자를 함으로써 KWE코리아를 96년 1월1일 설립했다. 엑셀은 자본금 5억원을 100% 직접 투자해 같은해 3월8일 엑셀로지스틱스코리아를 설립했다. 퀴네앤드나겔도 26년간의 대리점 체제를 끝내고 같은해 6월1일 5억원의 자본금으로 국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후로 쉥커(97년 3월), 단자스(97년 10월), 헬만월드와이드로지스틱스(99년 4월), 유센항공서비스(2003년 2월)등의 글로벌 포워더들이 100% 직접 투자로 국내에 현지법인을 차렸다. 이후 100% 단독법인을 설립한 외국계 포워더는 30여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콘솔 붐 포워더 독자 운송상품 개발
업체수가 늘어나면서 복합운송업계엔 90년대 초반부터 콘솔(소량화물 혼재)이란 새로운 운송상품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콘솔이란 기존 FCL중심의 운송이 아닌 소량화물(LCL)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해 컨테이너 박스화해서 운송하는 것을 말한다. 콘솔업체들은 실하주 업체가 아닌 복합운송업체들만을 대상으로 LCL화물을 집화해 CBM당 수익을 내면서 발전했다.
복운업계에서 처음 콘솔을 시작한 업체는 지금은 없어진 기륭통상으로 알려진다. 기륭통상은 지난 80년대 초 우리 복운업계에선 처음으로 동남아와 미주, 유럽지역에 콘솔서비스를 도입했다. 이후 범한쉬핑과 해륙해운항공, 삼영익스프레스 등이 콘솔서비스를 선보였고 80년대말부터 모락스 YKL물류가 전문 콘솔서비스를 시작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맥스피드, 천지해운, HK코리아, 티오피해운항공, 은산해운항공, 골드웨이, FPS코리아, 유라시아라인, NCL등이 가세하면서 콘솔서비스는 새로운 포워딩 업계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들어서게 됐다.
항공 포워딩에선 코스코항운, 우진항공혼재화물, 고려종합국제운송등이 콘솔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아니라 복합운송이 일원화되고 업체수가 늘어나면서 포워딩업계는 경쟁력 있는 운송상품으로 해상·항공 연계운송 서비스인 씨앤에어(Sea&Air)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85년경 극동해운의 씨앤에어영업부가 분리해 설립된 성진콩코드사로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씨앤에어 서비스는 90년대 들어 성진콩코드가 윌슨로지스틱스(現 티엔티프레이트 매니지먼트)로 계승되고 90년 4월 설립한 맥스피드가 이 서비스에 뛰어들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모락스도 여기에 참여하면서 3파전 양상을 띠게 됐다. 이들의 씨앤에어 루트는 한국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 해상으로 운송한 후 밴쿠버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유럽으로 화물을 보내는 것이다. 이 루트는 해상운송보다 15일정도 운송기간이 빠른 반면 운임은 항공편의 반값정도여서 납기일을 놓친 해상화물이나 항공화물중 운임을 아끼려고 할 경우 많이 이용된다.
90년대 들어 한중수교가 수립되고, 중국의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중국에 대한 씨앤에어 서비스도 관심을 끌었다. 중국발 씨앤에어를 개척한 업체는 성일해운항공과 코트랜스해운항공이다. 성일해운항공은 한중수교 1년 전인 91년부터 중국에 진출해 칭다오-인천-제3국을 잇는 씨앤에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것이 업계에 크게 어필하면서 성일해운항공은 중국 전체매출의 60~70%이상을 여기에서 낼 만큼 발전을 이뤘다. 코트랜스해운항공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 진출해 유럽 노미네이션 화물 중심으로 씨앤에어 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코트랜스 화물의 90% 이상이 바이어를 통한 노미네이션 화물이다. 90년대 중반 들어 팍스글로발카고와 SAS, KAS, 세중하나, 선진해운항공, 국보해운 등이 한중간 씨앤에어에 뛰어들면서 이 서비스도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오지를 하이웨이로’
국내 포워딩의 역사가 30년을 넘으면서 외국으로의 서비스 지역도 다변화됐다. 특히 아프리카나 남미, 몽골지역등 서비스가 힘든 오지로의 운송루트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이들 지역은 더 이상 오지가 아닌 곳이 됐다.
포워더들은 다년간의 시행착오와 손해를 감수하면서 오지서비스 개발에 힘을 기울여 운송루트가 없어 발을 굴렀던 하주들의 갈증을 해소해 줬고 포워더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성과를 이룩했다. 선사나 항공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지역에 대해 포워더들은 과감한 진출을 모색함으로써 독자적인 운송영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의 경우 모락스나 은산해운항공, 맥스피드, 앤씨엘, 골드웨이등 90년대 콘솔 붐과 함께 생겨난 콘솔 업체들이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고, 몽골 지역은 전통적인 북방 전문 포워더인 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나 서중물류, 동서로지스틱스, 보고인터내셔널 등이 서비스를 개발해왔다.
포워더들은 90년대 이후 시장변화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다. 바로 제조업체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92년 대외개방과 함께 싼 인력을 찾아 한국 제조업체들이 대거 진출함으로써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하게 됐고, 국내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포워더들은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 지사 설립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중국 진출 1세대는 삼영익스프레스와 성일해운항공이다. 삼영익스프레스는 상하이, 톈진, 칭다오, 다롄, 닝보, 샤먼 등 중국 10개 지역에 지사를 두고 있고 직원들을 지사에 파견하는 등 중국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영익스프레스는 최근엔 국내 매출보다 중국에서의 매출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일해운항공은 1992년 중국 칭다오에 지사를 설치했고, 이후 상하이와 베이징, 톈진, 웨이하이, 다롄, 옌타이등에 10개의 지사를 운영중이다. 성일해운항공은 이들 지사를 중심으로 중국-한국-미국간 씨앤에어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93년엔 제일항역이 칭다오와 상하이에, 화산해운항공이 다롄과 칭다오, 옌타이에 각각 지사를 개설했다. 94년엔 동서해운과 동보해운항공이 다롄에 지사를 설립한 이후, 동북3성지역으로 지사를 확대해 나갔다. 이후 서중물류가 95년에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톈진, 칭다오에 지사를 설치했고 롄윈강엔 현지법인을 설립해 TCR(중국횡단철도)을 통한 북방물류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포워딩 실적, 90년대 후반 들어 둔화
90년대 이후 복합운송업체들이 취급한 화물량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업체수의 증가르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국제물류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높아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해상화물 취급실적의 경우 90년 수출 55만7777TEU, 수입 14만9793TEU, 총 71만899TEU에서 2003년엔 수출 114만1827TEU, 총 30만4060TEU, 수입 144만5887TEU로, 각각 103%씩 늘었다.
그런데 연도별로 보면 90년대 중반까지는 높은 실적 증가세를 보이지만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증가폭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 제조기업의 해외이전의 여파를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복합운송업체들이 취급한 해상화물은 90년 71만899TEU에서 91년 74만1883TEU로 4.3% 늘었고, 92년엔 79만2277TEU로 6.8%, 93년엔 88만6621TEU로 11.9%, 94년엔 99만8596TEU로 12.6%, 95년 117만4383TEU로 17.6% 증가했다. 그러나 96년엔 131만1695TEU로 11.7% 증가를 보여 성장세가 소폭 하락한 뒤 97년 1.7%, 98년 3.7%, 98년 3.7%, 99년 5.4%, 2000년 4.9%로 급격히 성장폭이 떨어졌다. 급기야 2001년엔 전년보다 11.3%가 감소해 제조업체의 해외이전에 따른 복운업체들의 영업환경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2000년대 들어 복합운송업계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2003년 이후 해운업 호황에 따른 선사들의 운임인상을 복운업계가 하주에 제대로 청구하지 못한 것을 비롯해 원화강세에 따른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이익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조업체가 베트남이나 중국등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한 것도 국내 복합운송업체들의 영업환경에 빨간불이 되고 있다. 현재 제조기업의 22%가 해외로 공장을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불리한 환경에서 3천개 이상의 업체가 난립하면서 제살깎아먹기식의 덤핑영업으로 더욱 어려운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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