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 확충에 팔을 걷어붙인 미국을 겨냥해 우리 중형조선사들이 일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선박은 대형뿐만 아니라 중소형도 다수 있어 일감이 부족하고 중형선박 건조력이 우수한 한국 조선소가 미국발 건조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말 한국 등 동맹국이 자국 조선소에서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내용을 담은 ‘해군·해안경비대 준비 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 조선사들의 함정 수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상선사관학교(Kings Point) 출신인 마크 켈리 상원의원(민주당)이 주도해 발의한 ‘선박법(Ships Act)’에도 해운조선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선박법은 미국 국적 상선을 현행 93척에서 250척으로 확대하는 ‘전략적 상선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250척을 한꺼번에 도입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한시적으로 임시선박(interim vessel)을 운영하는 계획을 법안에 담았다.
이 밖에 지난 2월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중국과 관련한 선박이 자국 항만에 입항할 경우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입항세를 부과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김인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13차 해운조선물류산업 촉진·안정화포럼’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서 “미국이 필요한 모든 선박이 대형선이 아니고 벌크선 등 작은 선박도 많다. 현재 국내 대형 3대 조선사는 일감이 넘치지만 중형조선소는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중형 조선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중형조선사들은 최근 수주 증가와 선가 상승, 선수금 비중 확대 등으로 선수금 환급보증(RG)의 확대 공급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발급 한도가 소진되거나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주 계약에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서 대한조선, 케이조선, HJ중공업, 대선조선 등 4개 중형조선사와 함께 경영 상황 점검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중형조선사들은 수주를 따내려면 RG의 적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중형조선이 RG 발행이 안 돼 수주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RG 발급을 활성화해 미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건 중형 조선소가 건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박사도 이날 토론에서 조선업이 고부가가치선박 중심의 생태계로 변화하면서 국내 중소조선소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조선사를 중심으로 한 가스운반선과 중대형 선형에 건조가 집중되면서 조선업 생태계가 약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 2020년 일본은 한국 정부의 조선업 지원을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강행한 바 있다. 이 박사는 “일본의 WTO 제소와 같이 경쟁국의 민감한 대응으로 정부의 조선업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박사는 미국과 조선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면 우리 조선업계의 인력난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조선업 인력 숙련에 필요한 최소 시간은 용접 2~3년, 취부 3~5년, 배관 5~10년, 엔지니어 10년 이상이 각각 걸린다. 그는 “조선업 인력은 양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현재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우리 조선업이 미국과 협력을 확대하면 인력난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선 확대뿐만 아니라 해기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의 선박법 발의를 놓고 우리나라도 선원직 매력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은 선박을 운항할 해기사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7년 이상 승선 근무를 하면 비경쟁 자격으로 쉽게 취업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고, 10년 이상 승선 시 GI법에 따라 대학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김인현 교수는 “선원직 매력화, 해기사 확대 제안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병역법상 승선근무예비역제도는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한국의 양대 해양대학이 통합계획을 내놓고 도전하는 글로컬대학 30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아야 해양 인력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위협 중국조선소 35곳 달해”
미국에 위협이 되는 중국 조선소가 수십 곳에 달한다는 연구소의 평가도 나와 눈길을 끈다.
하문근 부산대학교 교수는 최근 발표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박전쟁(Ship Wars)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 조선업계가 미국에 미칠 리스크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조선업 생산능력이 중국 53.3%, 한국 29.1%, 일본 13.1%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0.1%에 불과하다.
CSIS는 2024년 말 현재 가동 중인 307개의 중국 조선소를 대상으로 진행한 평가에서 위험 수준이 “매우 높음(티어1)”이나 “높음(티어2)”인 곳은 전체 조선소 중에서 11%인 35곳으로 파악했다. (
해사물류통계 ‘중국 조선업계 리스크 평가’ 참고)
티어1은 중국 해군 군함을 생산하는 중국선박그룹(CSSC) 소유 조선소, 티어2는 상선을 건조하지만 군사프로젝트, 인력 및 국가자금조달 메커니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CSSC 소유 조선소를 의미한다. 티어1~2 모두 외국 고객의 점유율이 75~76%로 높은 편이다.
하 교수는 “대부분 70% 이상인 외국 바이어들이 중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상황인데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CSIS는 진단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위험 수준이 보통(티어3)인 곳은 46곳, 약함(티어4)은 226곳으로 각각 집계됐다.
“美해운조선 우리나라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어”
미국의 조선업과 해운업이 보조금 등의 특례를 꾸준히 제공받으면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상승해 우리나라의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정부는 자국 조선소와 조선기자재업체에 제조시설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2025년부터 2034년까지 매년 2억5000만달러의 해양보안신탁기금을, 소형조선소엔 매년 1억달러를 각각 제공할 계획이다. 더불어 대출 및 대출 보증으로 생성된 수익을 재투자하는 선박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 매년 1억달러를 제공할 예정이다.
정우영 광장 변호사는 우리 해운조선업이 미국의 부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세리스 제도를 조기 도입하고 한국해양진흥공사(KOBC)의 자본금을 확대하는 한편, 필수선대 보조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업은 투자 세액 공제, 친환경선박 및 청정연료기술 개발 및 고도화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운과 물류, 조선의 정책을 한데 묶는 기구 설립도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해사청, 해양안보 보조관 및 해양안보위원회를 설립해 해운물류조선을 통합했다.
정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총리실이 중심이 되던, 독립된 위원회를 두던, 별개의 정부 기관을 둬 해운, 물류, 조선, 해양, 국방 및 외교를 함께 어우르는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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