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11 15:53

고객을 위해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앞서 갑니다, 로테르담항

동북 아시아 허브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정계와 학계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언제나 오르내리는 로테르담항. 유럽의 한가운데 위치함으로 일찍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gateway)으로 불리던 로테르담항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부두나 다름없어 항만 길이만 대략 50km에 이른다. 로테르담항은 17미터에 달하는 깊은 자연 수심으로 7,000TEU 이상의 대형 선박도 무난히 접안시킬 수 있고, 대륙에서 흘러 나온 라인강을 따라 스위스까지 내륙수송을 할 수 있는 천혜의 항만으로 타고난 곳이다.
그 위에 사람들은 유럽 전역을 실핏줄처럼 연결시키는 철도와 도로를 교차시키고 로테르담항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자를 유럽 내륙으로, 세계 전역으로 실어 날랐다. 로테르담항은 명실공히 유럽 물동량의 40% 이상을 처리하는 대표적인 허브항인 것이다. 항만 배후지에는 대규모 물류, 유통단지를 설립함으로 충분한 창고·보관시설을 확보, 물건을 저장했고 하역, 보관, 배송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전산화시켜 부두 운영의 선진화를 이루었다.
항만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허브화 물결에 동참, 유럽에 진출한 미국과 아시아 기업 중 절반 이상의 기업들이 네덜란드에 물류 유통 센타를 두고 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2~3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외국어 소통 능력은 허브 네덜란드의 핵심 원동력으로 꼽히고 있다. 허브란 사람과 물자가 모여 들어야 하고, 사람과 물자의 중심지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말이 통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김 만석 선임상무관은 무엇보다 이들의 서비스 정신을 강조했다. 남한의 대략 1/3 밖에 되지 않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게다가 전체 국토의 1/4 가량은 해수면 이하인 악조건 속에서 물류중심국가로서 그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던 것은 사용자인 고객의 눈높이에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 네덜란드 정부의 치밀한 정책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내 고객이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나의 편으로 그들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늘 연구하며 이를 위한 차별화된 항만 전략을 사용했다.
항만사용료 등 항만 사용자들에게 당장에 가시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가격적인 면뿐 아니라 수량화 할 수 없는 면에서도 늘 노력하고 있다는 것.
1966년 사상 최초로 유럽과 북미 대륙을 횡단했던 씨랜드의 첫 컨테이너선을 띄운 로테르담항은 항만을 찾아주는 선사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문가 집단의 브레인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결국 1980년대 말 자동화 터미널 사업 연구에 들어가 남보다 10년 앞서 세계 최초의 자동화 터미널을 개장하였다.
사용된 막대한 투자비는 장기간 ‘부두 운영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면 초기 투자비는 거뜬히 상쇄할 수 있다는 씨랜드의 투자 전략으로, 제 1호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은 첫 컨테이너를 띄웠던 씨랜드(현재의 머스크-씨랜드)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제 3세대형 터미널로 불리는 Delta/Sealand 터미널은 평면이동과 적재를 위한 무인자동화 시설을 설치, 선박과 컨테이너 야드간 컨테이너 운송을 완전 무인 자동화함으로 인건비의 50% 절감 효과를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들보다 10년을 앞서 가는 이러한 선구자적 시도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들의 남다른 서비스 정신에서 태동되었던 것이다.
로테르담항은 내년 또 한번의 개혁을 시도한다. 1932년 로테르담항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을 위해 설립, 70년 이상 그 일을 충실하게 담당해 왔던 로테르담시 항만관리공사(Rotterdam Municipal Port Management, RMPM)를 내년 1월 1일부터 Havenbedrijf Rotterdam N.V.(공공유한책임회사)로 전환시킬 것이라는 계획이 바로 그것. 김 선임상무관은 효율성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취해진 이러한 전환에 큰 의미를 두었다. 고객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항만당국의 의지와 함께 거시적인 개념에서 전세계 항만이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네덜란드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항만간 경쟁은 항만 운영 주체간 경쟁에서 날로 그 강도가 증대, 이제 국가간 경쟁뿐 아니라 국가 단위로 결집된 블록간 대항으로 전세계를 상대하는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특히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이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 속해 있는 네덜란드는 새로운 규칙과 규제, 배후지역 연계 사항에 대한 투자 문제 등에서 EU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다. 새로운 환경 아래에서 그 동안 전통적으로 RMPM이 수행해 왔던, 항만시설 개발, 건설 및 관리 기능에 대해 어느 정도 한계성이 제기되었던 것.
오랫동안 수행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거듭 검토한 끝에 2002년 말 로테르담시 이사회는 시 의회에 RMPM을 2004년 1월 1일부로 시 당국 부속 기관에서 공공 유한회사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구조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시 당국이 새로 탄생하게 되는 회사의 주주 자리를 차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서 말이다.
결국 보다 더 상업적인 기반 위에서 조직을 운영하고 전문가적인 식견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새로운 회사의 목적으로 향후 신규 회사가 맡게 될 책임은 기존의 RMPM이 수행하던 역할과 동일할 것이라고 로테르담시 당국은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 환경 속에서 더 신속하고 유연하게 운영,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단기적인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미래를 향한 장기 투자라고 RMPM측은 공언하였다.
새로 탄생하는 회사의 법적인 위치는 시 조직이었던 RMPM과는 달리 민법(civil law)의 영향력 아래 있는 민간 회사가 될 전망이다. 이로써 항만 운영에 있어 타 항만과의 연합 등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로테르담시 당국은 기대했다.
회사가 바뀐다고 해도 RMPM의 사명(mission)이었던 “To strengthen the position of the Rotterdam port and industrial zone within a European perspective. Now and on the long term"은 회사의 법적인 위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통관 절차가 각종 제도 및 시설과 잘 결합되어 외국의 어느 자유항보다 더 훌륭하게 운영, 자유항이 아니면서도 “자유항보다 더 자유로운 항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 한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10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태어날 뿐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을 면면히 이어 나갈 수 있는 곳, 주변의 여러 항구들과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고객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곳.
로테르담항은 분명 전체 물동량 면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항만으로서 최상의 입지 조건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자신들을 더욱 더 연마, 남보다 한 발 앞서가는 선진항만으로 이끌 수 있었다.

글·백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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