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07 17:43

허브포트경쟁에서 한번 밀려나면 끝장

(부산=연합뉴스)이영희기자 = 한꺼번에 수천개의 컨테이너를 싣는 대형 선박들은 전세계 항만들 가운데 하역효율이 높고 수송비용이 적게 드는 몇몇 항만만을 허브포트(중심항만)로 정해 기항한다.
나머지 주변 항만에는 소형선박을 이용해 화물을 실어나르는 피더운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허브포트를 갖지 못한 국가는 수출입화물 수송을 위해 다른 나라의 항만까지 피더수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물류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국가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각국은 너나없이 자국항만을 허브포트로 키우기 위해 시설확장과 인프라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인 선사들이 운항 스케줄을 바꾸는데는 최소 1년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그에 따르는 각종 협력업체 선정 등의 복잡함 때문에 월등히 좋은 시설이나 서비스에다 아주 저렴한 하역료 등의 혜택이 없는한 거의 기항지를 바꾸지 않는다.
이같은 특성으로 인해 허브포트 경쟁에서 한번 밀려나면 거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항만산업이 다른 산업과 큰 차이가 있다.
동북아의 주요 거점항이었던 일본 고베(神戶)항이 대지진으로 인한 선사들의 이탈로 지금은 완전히 경쟁대열에서 밀려나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작년에 부산은 20피트기준 790여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해 2000년에 이어 세계3위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시설은 4개의 컨테이너 전용부두의 5만t급 12개 선석과 1~2만t급 2개, 5천t급 2개 선석 등 16개 선석에 적정처리능력은 378만개에 불과하다.
오는 3월에 감만확장부두(5만t급 1선석,5천t급 2선석)가 개장하더라도 408만개로 늘어나는데 그쳐 오는 2005년 부산신항 1단계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심각한 시설부족현상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부산항은 배후부지가 전혀 없어 그야말로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단순한 부두기능 밖에 수행하지 못해 관세자유지대와 물류가공센터 등 선진항만 서비스제공은 거의 불가능한 후진항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물론 일본과 대만, 후발국인 중국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까지 항만경쟁에 뛰어들어 대규모 항만건설과 자동화 등 서비스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는 대규모 항만개발계획이 번번이 정치논리개입과 정책당국의 인식미흡 등으로 무산되면서 이들 국가의 속도에 뒤지는 발전을 하는데 머물렀다.
일본 고베지진때 부산항으로 엄청난 환적물량이 몰려 특수를 누린 것에 대해 "당시 수출입화물 처리에도 어려움을 겪던 상황에서 일본의 환적화물까지 몰리는 바람에 심각한 체선.체화현상이 벌어져 부산항의 이미지가 극도로 나빠져 장기적으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봐야 한다"는 한 외국선사 관계자의 지적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다시 말해 충분한 시설확보없이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일시적인 물량 증가 혜택을 볼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주변 다른 국가에 더 좋은 항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선사들은 떠날 수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
그 결과 중국 상하이(上海)항이 작년에 세계 5위의 컨테이너 항만으로 부상하면서 3위인 부산항을 턱밑까지 추격해오는 상황에 직면했다.
2011년까지 광양항 24개 선석과 부산신항 30개 선석이 차질없이 개장된다고 하더라도 상하이 등 경쟁항만에 비해 시설부족은 여전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역과 금융 등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현재의 구조로는 항만을 축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창출에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한진해운 중국지역본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항만경쟁력을 시설확장에서만 찾고 있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라며 "항만의 경쟁력은 시설 외에 배후소송망 등 사회간접시설, 금융 및 보험 등의 인프라, 네트워크 등이 고루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이 부분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부두운영 효율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하역회사들 중심으로 컨테이너부두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선사위주로 재편하고 1개 부두의 3~4개 선석을 나눠먹기식으로 여러회사에 운영을 맡기는 `보신주의'를 과감히 탈피해 1개 업체가 전부를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산.광양항은 현재의 시설확장에 안주할 시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몇배나 큰 규모의 시설확장과 자유무역지대 설치,세계적인 물류업체 유치, 원스톱 행정서비스체제 등으로 무장하고 추격해오고 있는 경쟁항들을 따돌리고 허브포트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항만육성 계획을 세워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중국 상하이 등 경쟁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우리 수출입화물까지 다른 나라에서 환적해야 하는 시대를 맞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허 금 중국지역본부장은 "상하이 항만당국은 대규모 항만개발 및 물량확보의 우위를 바탕으로 부산항을 더 이상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을 정도"라며 "부산항도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정책적으로 항만개발과 서비스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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