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탈탄소 이슈와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항공·해운을 대체할 운송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물류기업들 또한 때맞춰 철도물류 사업을 확장하면서 유럽 물류시장 내 철송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망 혼란 여파’ 중국-유럽 철도 꾸준한 성장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유럽 물류시장 보고서에서 극동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철도 물류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KMI는 화물 운송 전문 데이터 분석 기업 업플리(Upply)에서 공개한 자료를 인용해 시기별로 물동량에 변동은 있어도 철도 점유율 자체는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철도 운송은 러시아행 일부 노선이 중단되는 이슈가 있었으나 해상 운임 상승 여파로 지난해부터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철도그룹에 따르면 상반기 중국발 유럽행 열차는 전년 동기 대비 운행 편수가 16%, 물동량이 30% 증가하는 호실적을 내놨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2013년부터 철도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한 철도 운송 사업은 코로나 시기 해운·항공이 차질을 빚게 되면서 급성장을 맞이했다. 팬데믹 기간 3년간 철도 물동량은 이전 대비 119% 증가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5월 우한을 출발하는 유럽행 정기 화물열차가 월간 운송량 역대 최고치(9600TEU)를 경신했고, 8월엔 샤먼발 열차가 중국-유럽 철도 노선 중 처음으로 수출물량 10만TEU를 돌파했다. 중국 물류기업 코스코의 중국-유럽·중앙아시아 정기화물열차는 지난달 29일 컨테이너 수송량 1만TEU를 넘어섰다. 이외에도 올해 1월 전기차를 화물열차로 수출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지원하면서 시안과 정저우 정기 노선이 개설돼 성장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철도 운송 점유율과 관심도가 가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두고 KMI는 탄소 배출 규제, 물류비 절감, 정시성 제고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친환경 문제에 주목했다. 유럽연합(EU)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인다는 목표(Fit for 55)를 달성하려고 잇달아 관련 규제를 내놓으면서 철도 물류 활용이 늘었다는 해석이다. EU는 운송 부문의 탄소 배출 감축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도입하면서 비교적 친환경적인 철도를 대안으로 내세웠다.
유럽 내 화물 운송은 절반 이상이 트럭으로 이뤄진다.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운송 부문 탄소 배출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 2020년 EU는 철도물류 수송량을 2배 늘릴 것을 공언하고 ‘지속 가능하고 스마트한 운송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7월 또 다시 친환경 화물 운송 법안을 발표하면서 운송 사업의 탈탄소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탄소 배출이 적은 철로와 수로로 운송 수단을 대폭 전환하는 것이 목표에 포함됐다. 다만 도로철도복합운송국제연합(UIRR)은 철송이 원활하게 성장하려면 5000억달러 이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연달아 발생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화물 운송 수단으로 철로와 연계한 복합 운송이 급부상했다. 해상 운임이 폭등하자 바닷길 대신 러시아를 거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계 복합 운송 시장이 성장했고, 대(對)러 제재가 지속되자 중국에서부터 카자흐스탄 카스피해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를 연결하는 중부 회랑이 대체 루트로 주목받았다. 이전까지 이 노선은 러시아 통과 루트보다 2000km 더 짧은 거리임에도 경유 국가가 많아 기피됐지만 지난해 EU가 러시아 우회로로 주목하면서 발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우크라 전쟁이 장기화되고 흑해 노선의 불안정성까지 겹쳐 당분간은 중부 회랑을 이용한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유럽 간 철도 운송이 다국가를 경유하는 특성상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업플리는 지난해 중국-유럽 철도물류 보고서에서 국가 간 정치 이슈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고, 데이터 분석 기업 프런티어뷰(FrontierView)는 올해 5월 중부 회랑(중국-중앙아시아-카스피해 루트) 보고서에서 물류망을 구성하는 국가들이 복잡한 지정학적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는 인프라, 나라별 상이한 관세 구조와 운영 등도 운송 지연의 원인으로 꼽혔다.
MSC·머스크 나란히 철도물류 강화
탈탄소화 추진, 공급망 문제 해결 등의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해운·물류기업들은 철도 운송과 연계된 신규 사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나섰다. 특히 세계 1~2위 선사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스위스 MSC는 꾸준히 철도 물류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물류 자회사인 메드로그로 일찌감치 철도에 투자했으며 지난해 7월엔 메드로그 산하에 철도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메드웨이를 신설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과 독일 내부를 연결해 북유럽 복합 운송 서비스를 강화하고 추후 유럽 내륙까지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7월에는 전기기관차 15량을 새로 도입하면서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수송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덴마크 선사 머스크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복합 운송 서비스를 적극 확대한 케이스다. 2020년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하는 복합 운송 횟수를 늘렸는데, 지난해 전쟁으로 러시아 철로를 통과하는 데 차질이 생기자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루마니아로 가는 새로운 물류 루트를 도입했다. 이전과 달리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머스크는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이후 관련 지분을 매각하고 나서 신규 물류루트 개발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가 하면 싱가포르 항만 운영사 PSA는 최근 몇 년 간 해상뿐 아니라 내륙 물류망 확충에 힘을 쏟았다. 지난 5월 카자흐스탄 철도청과 손잡고 합작회사를 설립해 중앙아시아 동남아 유럽을 잇는 횡단 철도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합의했고, 7월엔 독일 수운과 철도 트럭수송을 연결하는 뒤스부르크 게이트웨이터미널(DGT)의 지분을 인수했다. DGT는 유럽 내륙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탄소중립 컨테이너 터미널이 될 예정이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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