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고가 같은 지역에서 3번이나 발생하는 게 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 이미 우리나라의 이천에서 일어났다. 물류센터 화재사고가 왜 이렇게 빈발하는지 예방대책은 없는지 알아본다.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는 2008년 1월7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코리아2000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우레탄 발포작업 중 시너로 인한 유증기에 불이 붙어 일어난 화재사고다. 이 사고로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2008년 12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는 2008년 12월5일 오후 12시20분경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GS리테일 서이천 물류창고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도중 불꽃이 튀면서 샌드위치 패널로 옮겨붙은 화재사고다.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0년 4월
2020년 4월29일 오후 1시32분경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640-1 한익스프레스 남이천물류센터 냉동·냉장 물류창고 신축 현장 지하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지하2층 용접작업이 발화 원인
올해 4월 사고의 경우 사고 발생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물류창고 공사업체 측이 제출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확인한 결과 화재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차례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공사를 강행하다 똑같은 사고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화재의 원인은 지하 2층에서 이뤄진 용접작업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천 냉동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6월15일 오전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번 화재가 용접작업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하 2층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도중 발생한 불꽃이 천장의 마감재 속에 있던 우레탄폼에 튀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 경찰이 내린 결론이다. 용접작업은 안전조치 없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은 2인1조로 작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근로자는 용접작업을 할 때 방화포와 불꽃·불티 비산방지 덮개 설치 등의 조처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도 무시됐다.
물류창고 화재 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공기단축을 위한 병행작업,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 설계변경과 시공, 구조적 특징 등이다.
중구 분향소에서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를 만나 물류창고업계의 문제점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만 잠시 주목하고 금방 다시 잊어버리기 때문에 같은 사고가 되풀이 된다는 진단이다.
그는 “화재는 이미 일어났으니 되돌릴 수 없지만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이 사고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고 앞으로는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한다”며 “이는 지금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화재가 이천에서만 세건 임에도 너무 빠르게 잊혀 가는게 안타깝다”며 “꼭 되새겨서 앞으로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자가 찾은 이천물류창고 화재 현장은 너무도 참혹했다.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려했지만 아직도 창고 주변은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멀리서 봐도 아비규환 같은 그때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된 이천시 창전동 서희체육센터 단체 분향소는 방문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코로나와 맞물려 소독을 철저히 하기 위해 봉사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물류센터 화재사고 재발방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사고발생 53일째인 6월20일 오전 3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사고 합동영결식이 서희청소년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이천 지역 내 사회단체 70여곳으로 구성된 이천시 범시민 추모위원회가 주관했다. 영결식을 끝으로 이천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꾸려졌던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문을 닫았다.
38명의 희생자와 10명의 부상자 가운데 37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시공사인 건우 측과 합의했다. 나머지 1명의 희생자 유족은 합의까지 서류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10명의 부상자의 합의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김권 유족대표는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아버지와 자식들이 4월29일 우리 곁을 떠났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고 우리의 시간은 29일에 아직 멈춰 있다”며 “영결식까지 우리는 많은 일을 겪었고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남아있다. 다시는 이런 참사로 인해 우리 같이 슬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되풀이되는 사고 막는 근본적인 법적 쇄신 긴요
앞으로 제2의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막기 위해 변형 건축자재에 대한 화재시험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회보건복지위원장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건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6월22일 밝혔다.
개정안은 중공슬래브와 같은 변형된 복합자재에 내화구조 시험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중공슬래브란 바닥 두께의 중앙에 중공부를 둔 슬래브를 총칭하는 것으로, 중앙에는 스티로폼 등 경량체를 삽입한 건축자재를 말한다.
현행법은 건축물 마감재료, 방화문 등 건축자재의 경우 내화구조 시험성적서 등 품질관리서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제출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건축물 바닥재로 자주 사용되는 중공슬래브 등 건축자재는 품질관리서 제출 의무대상에 없기 때문에 관리 감독이 어려웠다. 이에 따라 변형복합재도 품질관리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도 신설해 포함했다.
한정애 의원은 “이번 법안은 중공슬래브 등 안전의 사각지대에 있던 변형된 복합자재의 관리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화재 발생 시 유독가스로 인한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와 관련해 한익스프레스 관계자를 비롯한 9명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6월23일 진행했다. 영장실질심사 대상은 발주처 관계자 외에도 시공사 관계자 3명, 감리단 관계자 2명, 협력업체 관계자 3명이다.
이런 참사가 일어나기에 앞서 예방할 수 있는 법안과 안전에 대한 관심, 경각심이 필요하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는 더 중요하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바꿔야할 부분은 빠르게 바꿔야 한다.
올해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또 한 번의 이슈로 지나가면 안 된다.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제도 확립과 안전사고 관리 강화의 초석이 되길 바란다.
< 박재형 기자 j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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