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16:03

더 세월(44)

저자 성용경 / 그림 하현
40. 물속 진실
 


 
세월호 선체 인양은 기약이 없다. ‘기술적 검토 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는 판에 박은 말뿐이다. 민관조사단이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고 내부 결론을 내렸고, 여론조사에서 국민 60퍼센트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온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세월호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라진 7시간 행적이 도마에 오른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세월호 관련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그럴 터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어도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정서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을 가려 재판에 넘겼으니 끝났다고 여긴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오직 선한 자들의 무관심이다”라며 슬그머니 끝내려는 태도를 정의감 결핍으로 매도한다. 그들은 강력히 주장한다.


“현행법의 틀 속에서 재단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에는 그 동안 우리사회에 쌓여온 부조리한 관행과 부패, 비리, 권력의 무능, 국가의 책임방기 등 구조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것들을 다 들춰내 바로잡지 않고서는 우리사회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일 년 반 가까이 물속에 잠긴 세월호에 대해 궁금해한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네요. 바닷물에 많이 부식됐을 거예요.”


서정민과 만난 심해잠수회사 사장의 말이었다.


물속에 잠긴 세월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잠수 작업을 하기로 했다. 보고서 작성은 여성 다이버이며 여행작가인 김수진의 몫이다. 자금지원은 이팔봉 회장이 한다. 회장의 뜻은 간단하다.


“진실을 아는 일에는 공짜가 없지. 돈을 들여서라도 가라앉은 배를 끄집어 올려야 하는데 수중탐사라도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이 회장은 역사의 사례를 들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도 공짜가 없다. 조선 통신사 김성일의 말이 먹힌 것은 피와 땀과 눈물 없이 나라를 지키려는 공짜심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가족의 주장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일에 회장은 분개했다. 대학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추모공원 건립, 생활안정 평생보장, 정신적 치료 평생보장 등은 요구한 적도 없는데 이를 왜곡해서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니!


수중탐사는 2015년 8월 여름에 시행됐다. 세 명이 잠수하기로 했다. 전문잠수사, 김수진 및 해경이었다. 김수진은 서정민의 후배로 여성 항해사였는데, 배멀미가 심해 아예 여행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해양 레저스포츠는 그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그녀는 해경을 설득해 잠수 취재 허락을 받았다. 유실방지망 점검을 해경과 함께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전문잠수사가 선발, 김수진이 뒤따르고, 해경이 뒤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역할로 한 조가 됐다.


세 사람 모두 해저 다이빙 최고 등급인 마스터다이버 자격증을 갖고 있다. 최소 100회 이상 바다입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 양반, 자격증만 따고 장롱에 묵혀 놓은 거 아녀?”


나이 많은 해경이 젊은 여성 작가와 잠시 농을 주고받았다. 60미터 이상 깊이를 물질한 경험이 있다고 그녀는 주장했으나 본 사람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밤바다는 유난히 어두웠다. 흐린 날씨로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한 줄로 다이빙 발판에 선 세 다이버. 물안경을 얼굴에 쓰고 호흡기를 물었다. 심호흡을 한 뒤 공중을 걸어가듯 물속으로 들어간다. 수면과 발판의 높이가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바지선에서 흔히 사용하는 ‘워킹 다이빙’이다.


전문잠수사가 먼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얀 포말이 흩어졌다가 사라진다. 다음으로 김수진이 하강줄을 잡고 입수하자, 해경도 익숙한 자세로 입수해서 그녀를 따른다. 일행은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한 채 하강줄을 잡고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야간 다이빙에선 ‘헤드 퍼스트’ 방식을 주로 이용한다. 손에 든 랜턴으로 장애물은 없는지 도착지점은 얼마나 남았는지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내려가는 것이다.


어두운 밤바다를 헤치고 내려가는 다이빙은 마치 검은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다. 검은 어둠만이 계속되다가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비로소 랜턴 빛을 받아 허연 바닥이 모습을 드러낸다. 김수진은 물안경을 눌러 귀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 가면서 오리발질을 이어갔다.


“세월호가 보여야 하는데?”


이상했다. 하강줄에 마킹한 테이프가 수심 25미터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사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려 물안경 우측 눈 밑에 달린 컴퓨터 스크린에서 수심을 확인했다. 17미터. 하강줄과 게이지 사이에 오차가 있었다.


“바닥이 나올 때까지 가는 수밖에 없겠군.”


수심 20미터까지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 때 5미터 앞에 있던 전문잠수사가 비로소 선체와 조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강줄이 조류로 길게 휘어지면서 동선이 길어진 것이었다.


김수진은 세월호로 다가갔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하얀 선체를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얇은 막 같은 게 느껴졌다. 1년 새 물이끼류가 선박 표면에 내려앉은 것이다. 선체 외벽은 2년 가까운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 맹골수도의 거센 조류가 늘 씻어주기 때문일까.


그녀는 막상 세월호를 만나자 혼란스러웠다. 선체가 어떤 방향으로 누워 있는지 앞뒤는 물론, 아래위도 구분이 가질 않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세월호의 어디쯤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처음 잠수해서 하강줄을 설치하고 수색작업을 한 잠수사들이 느꼈을 어려움이 이해됐다.


해경이 3미터 길이의 노끈으로 매듭을 만들어 김수진의 왼쪽 손목에 채웠다. 다른 쪽 매듭으로 오른 손목을 묶었다.


그녀는 “왜 이러시죠?”라고 묻는 듯 해경을 쳐다봤다.


“떠내려갈지언정 혼자 보내지는 않겠어.”


해경은 물안경 너머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지금이 물이 가장 맑을 때인데도 시계(視界)는 5미터 안팎에 불과하다. 5미터 밖은 짙은 어둠으로 덮여 있어 145미터짜리 선체를 훑어보는 건 불가능했다. ‘수중의 세월호 선체 사진이 왜 없어?’ 물 밖에서는 이렇게 아우성치곤 하지만 물속에 들어와 보니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문잠수사가 안내줄을 깔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새로 설치된 줄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10미터 정도 앞에서 또 다른 랜턴 빛이 보인다. 다른 팀이 이동하고 있었다. 안내줄을 잡고 이동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여러 번 다이빙을 하면서 물속에서 공기를 아껴 쓰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우!? 하얀 선체를 짚어가며 천천히 전진하는 중 갑자기 큰 구멍과 만났다. 그 속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구멍 위로 유실방지망이 설치돼 있었다. 깨진 유리창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어두컴컴한 곳에서 학생들의 마지막 희망도 서서히 꺼져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실방지망을 고정시키는 네 개의 C클램프가 창문 모서리마다 긴 볼트로 채워져 있다. 이 정도면 선체 내부의 시신이 밖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사 홈마다 벌겋게 녹이 슬어가는 중이다.


공기탱크의 공기가 135밀리바 남았다. 물 속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선 공기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다음 창문으로 이동했다. 안으로 이어진 노란색 공기호스가 보였다. 다른 팀이 선체 내부로 들어간 것이다. 깨진 유리창 출입구 안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물 속에서 다른 잠수사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기포도 함께 올라왔다.


김수진 일행은 다른 팀의 공기호스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후진을 해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게이지가 120밀리바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월호를 둘러볼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조금만 더 가면 4층의 앞면 지점이다. 조타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선체 한쪽에 가는 철근으로 만든 난간이 눈에 들어왔다. 4층과 5층 사이의 끝단이다. 사다리처럼 난간을 한 칸씩 잡고 전진했다. 굵기와 색깔이 다른 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설치한 안내줄들이다.


곧이어 선체 한편에 작은 원통 같은 게 보인다. 현등이다. 모든 배는 좌우 뱃전에 등을 켠다. 좌현은 적색등, 우현은 녹색등이다. 녹색등을 보았으니 배는 좌현으로 넘어져 있다는 증거다. 조금 더 가자 선체의 끝이 나왔다. 4층 선수 끝단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서 수직으로 내려가면 조타실 바닥이 나온다.


김수진은 선체 끝에서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시커먼 낭떠러지다. 랜턴을 비추자 측면갑판에 설치된 방향컴퍼스가 뿌연 펄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안쪽이 조타실이다. 조타실 입구까지 가려면 수심 5미터 이상은 더 내려가야만 한다. 하지만 모험을 하기에는 공기가 부족하다.


김수진은 검은 낭떠러지를 내려다봤다.


“나머지 시신 9구를 찾기 위해서 해경과 해군 다이버들이 목숨 걸고 저 낭떠러지를 계속 왔다 갔다 했겠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임무를 지우는 건 아닌가.


다시 선체 위를 기어서 전진했다. 4층 우현 뱃머리 쪽 유리창의 두 번째 지점이이었다. 선체를 자세히 보니 외벽이 큰 곡면에 가까웠다.


“이래서 선체 외부에서 전문구조사도 걸어서 접근할 수 없었던 건가?”


20분간의 잠수 임무가 끝났다. 전문잠수사, 김수진, 해경 순으로 선 채로 서서히 상승을 시작했다. 수면 도착 시각은 늦은 밤이었다. 왜 입수할 때보다 출수할 때가 더 힘들까?


수면에 도착하자 파도가 크게 치고 있었다. 바지선에 승선하려면 3미터 높이의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암벽등반의 경험이 있는 그녀였지만 4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멘 채 자력으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무게가 막상 수면 위로 나오자 어깨를 짓눌렀다.


갑판에 오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온 일행을 반겼다. 더블 탱크를 벗은 김수진은 갑자기 뒷골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문제가 생길까 싶어 노심초사한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던 서정민과 이팔봉 회장은 괜찮은지를 물었다.


“저체온으로 인한 두통입니다. 한두 시간쯤 지나면 사라져요.”


전문잠수사가 옆에서 설명했다.


시신을 왜 못 찾는지 궁금했던 김수진은 물속에 들어가보니 시신을 찾는 작업 자체가 대단해 보였다. 불철주야 이곳에서 잠수 수색을 하며 시신을 인양하는 잠수사들이 마치 묵언의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천안함 사건의 준위 한주호, 세월호의 민간 잠수사 이광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재난은 지구촌의 모든 생명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피해자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재난은 4단계 주기를 갖고 있다. 예방, 대비, 대응, 복구. 세월호 대응을 두고 비교적 좋았다는 평가도 있다. 30분 만에 해경123정과 헬기 그리고 어업지도선과 민간 소형어선들이 가세해 구조를 기다리며 선체 밖으로 빠져나온 승객 172명 전원을 구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을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책임은 어찌하랴. 김수진은 물속 진실을 어떻게 보고할까?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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