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규제를 앞두고 탈황설비(스크러버) 설치가 늘어나면서 벌크선 시황이 회복될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해운업계에선 스크러버 설치 공사에 따른 공급 감소 효과가 해운 수요 증가율을 웃돌 거란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브라질 댐 붕괴사고로 4월 말까지 1000포인트선을 밑돌았던 벌크선운임지수(BDI)는 5월 들어 상승세를 지속했다. 7월 초 1500을 돌파한 데 이어 같은 달 16일엔 5년 만에 2000포인트를 넘어서며 깜짝 성장을 보여줬다. 6월 중순 이후 한 달 만에 1000포인트 가까이 오른 BDI는 7월 말 상승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최근 벌크선시장 호조 배경은 브라질의 철광석 공급 능력 회복과 대서양 선적 석탄 물동량 증가, 남미 곡물 수요 강세, 케이프선형의 스크러버 장착에 따른 공급 부족 등으로 압축되고 있다.
브라질 광산 재가동으로 철광석 수송량 증가
벌크선시장에서 나타난 깜짝 시황개선은 브라질발 중국행 철광석 수송량 증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브라질 댐 붕괴 사고, 서호주의 사이클론 베로니카 피해, 브라질 북부 집중 호우 등은 철광석 공급에 찬물을 끼얹었다. 게다가 BHP빌리턴과 리오틴토가 7~8월 생산설비 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호주발 공급부족 우려마저 확산됐다.
하지만 6월 말 댐 붕괴 사고 이후 제한적으로 운영되던 브라질 브루쿠투광산의 재가동으로 철광석 공급이 정상화되면서 시황이 회복되고 있다. 선사들은 철광석을 실어나를 선박이 부족해지면서 케이프선을 중심으로 시황이 상승 반전했다고 밝혔다.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호주의 공급량 감소분을 브라질에서 조달하며 케이프시황 상승 동력이 6월 말 이후 대서양으로 옮겨갔다”며 “이후 대서양 중심의 케이프시황 강세는 지금도 건화물선 시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서양 내 석탄 선적 수요가 6월 이후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벌크선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양진흥공사는 올해 상반기 석탄시장은 건화물선시장에 부정적인 이슈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태평양 수역 내 석탄 물동량은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 제한과 연간 수입량 통제, 저조한 연료탄 수요 등으로 평년 대비 둔화된 상황이며, 이는 수프라막스 이하 중소형선의 태평양 시황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때 이른 폭염으로 냉방용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대서양지역 연료탄 가격 하락세에 따라 판매자들이 아시아행 판매를 확대하며 석탄 수요는 6월 이후 증가하고 있다. 철광석 중심의 케이프 시황 상승에 더해 석탄 수요까지 증가하며 파나막스 이상 대형선 시황은 한층 강화된 상승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에 따른 브라질산 대두의 중국향 수출 증가도 케이프시장 부진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이어진 무역전쟁에 대비해 브라질은 올 시즌 대두의 재배과정을 앞당겨 평년 대비 1~2개월 가량 빠르게 출하했다.
그 결과 올해 남미 곡물 시즌이 평년 대비 일찍 시작됐으며, 연초 케이프가 초래한 시황 부진을 다소 상쇄했다. 다만 아프리카 돼지열병 확산으로 사료용 대두 수요가 점차 감소하며 브라질의 대두 수출량은 2분기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IMO의 황산화물 규제에 대비한 스크러버 설치도 벌크선시장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건화물선의 스크러버 장착비율은 총 선대의 3% 수준이지만, 케이프선은 6%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스크러버 장착 예정인 선박의 비율은 케이프가 15%로 파나막스급 이하 선형을 압도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케이프 선대 20%에 해당하는 선박이 스크러버 장착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존 케이프 선대의 14%가 남은 하반기 스크러버 장착을 위해 입거할 예정이다. 장착 공정이 2분기부터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선박 공급에 일시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벌크선 시황 현수준 유지하거나 소폭 개선”
향후 벌크선시장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철광석은 중국 내 철강가격 부진에 따른 제철 수익 악화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해양진흥공사는 “아직까지는 중국 내 주요 제철소들의 마진이 양(+)의 구간에 머무르며 철강 생산 확대가 이뤄지고 있지만, 과잉 생산으로 철강 가격이 추가 하락해 제철 마진이 음(-)으로 전환될 경우, 철광석 수요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석탄 물동량은 단기적으로는 여름철 냉방 수요 증가로 호조가 예상되지만 연말로 갈수록 침체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중국 정부가 석탄 수입 통제정책을 강력히 시행할 경우 수입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산 옥수수 구매 증가로 상반기 물동량 강세를 이끌었던 곡물은 확산되고 있는 중국의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수요가 갈수록 제한될 것으로 예상됐다.
요약하자면 상반기 시황 강세를 이끌었던 주요 벌크선 수요는 3분기 중반부터 4분기에 걸쳐 악화되겠지만 스크러버 장착 선박이 증가하면서 하반기에도 케이프시황은 예년 대비 높은 선에서 지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양진흥공사는 “파나막스 이하 선형은 스크러버 장착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선복 공급 감소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면서도 “케이프의 선전에 따른 연쇄 상승효과가 발생할 경우, 연말 석탄 및 곡물 수요가 저조하더라도 다소간의 지지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남은 하반기 폐선이 크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선주들이 노후선박을 규제 시행 이후까지 운항하며 추이를 관망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중엔 대량 폐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 수출입은행은 “하반기 중 곡물시즌 등으로 운임의 등락은 거듭될 것이며 시황은 전반적으로 완만하게 개선되거나 최소한 평균적으로 유지되는 흐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사들의 선박 투입이 시황회복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팬오션 관계자는 “다른 항로에 투입됐던 벌크선들이 최근 철광석 증가로 대서양으로 투입되고 있는데 공급이 어느 정도 이뤄지느냐가 시황회복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하반기에 시황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3000포인트 돌파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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