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3 14:17

도로 위 '시한폭탄' 화물차…다단계 화물운송시장 문제 부각

현장취재/ 육상운송 현장을 가다
운송 기사들 "화물차 사고는 100% 인재"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에서 발생한 화물차 폭발사고로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브레이크 오일관 파열로 제동력을 잃은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5톤 화물차에 실린 화물도 기준치를 2.3톤 초과한 7.8톤이 실렸다.
 
사고가 발생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물자동차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이달 평택제천고속도로에선 화물차간 추돌 사고로 1명이 부상을 당했고, 대전‧충남 지역에서 화물차 전복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밖에도 부산 사상구, 전북 순창, 평택, 수원 등 전국 곳곳에서 화물차 사고 소식이 이어졌다.
 
사고원인도 다양하다. 적재물 낙하, 졸음운전, 안전거리 미확보, 빙판길 사고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화물 과적과 졸음운전은 화물차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달 수도권 인근 주요 고속도로를 찾아 화물차 과적 실태를 취재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5톤 화물차에 조경용 소나무가 실려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유관으로 보기에도 과적이 확실해 보였다. 최고속도 제한장치도 해제한 듯 운행 속도가 아주 빨랐다. 고박도 제대로 안되어 자칫 사고로 연결될 수 있겠단 우려가 들었다. 단속이 소홀한 새벽시간 이와 유사한 화물 과적은 곳곳에 눈에 띄었다.
 
재건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 도심에선 노골적으로 화물 과적이 이뤄졌다. 11톤 차량에 실린 철근은 부피는 물론이고 무게도 11톤을 훨씬 넘는 듯 보였지만, 업계의 관행인 듯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운전자는 업계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는 과적을 강력하게 처벌해주길 희망했다. 그는 “6개월간 운행정지, 1000만원 벌금 등 강력한 제재를 하고, 화주와 화물차 기사를 모두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운송시장은 다단계 지입구조이기 때문에 화주가 가장 위에 있다. 다른 기사들은 다 가는데, 왜 당신만 안가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회사와 계약이 끊기면 짐을 안주니까 어쩔 수 없이 과적을 하는 것이다”고 토로했다.
 
잠 못 이루는 기사들
 
우리나라 화물자동차 기사들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의 수면장애, 근로여건에 따른 졸음운전 관계성을 규명했다. 화물업체 2곳의 트럭운전자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가정용 수면진단기 측정을 진행한 결과, 전체 대상자의 64.2%가 피로과다 증상의 수면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 대비해 우리나라는 사업용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관리 측면과 운전자의 근로환경 측면의 개선대책이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용 운행특성상 운송스케줄, 불규칙한 배차 등 만성적인 수면장애의 위험요소가 운송사업장에 방치돼 있다고 진단했다. 사업용 자동차의 연속운전은 4시간, 이후 30분의 휴게시간이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만, 1일 최대운전시간이나 최소휴게시간에 대한 규정은 없다. 연구소 관계자는 근로시간을 1일 최대 10시간, 연속 8시간 휴식시간 의무화하는 동시에,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활용해 화물자동차의 절대 운전시간, 연속운전 시간을 노상검사 하는 등의 단속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사업용 운전자는 건강관리, 근로환경
개선대책이 매우 미흡하다. (자료 :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화물차 기사들은 1~2억원을 들여 화물자동차를 할부로 구매했다. 그들은 매달 할부금을 갚기 위해 장시간 운전대를 잡는다. 차량 정체라도 생기면 일평균 운행시간은 10시간이 훨씬 넘는다. 조금이라도 더 수익을 내기 위해서 무리한 운행을 하다보니까 피로가 계속 누적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기사는 “화물차 사고는 100% 인재다. 제가 서울에서 충청권으로 운송을 하면 왕복 350km 정도 된다. 그런데 요금이 택시요금보다 못하다. 고정 간선차량은 30만원 가량 운임을 주는데, 여기서 할부금, 유류비, 지입료, 보험료, 통행료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며 “기업들이 운임을 깎을 땐 10%, 올릴 땐 3% 이런 식으로 한다. 통행요금이나 대기시간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표준운임제를 도입해서 합당한 운임을 받을 수 있다면, 무리해서 운행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화물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달부터 교통사고 사전 예방을 위해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및 차로이탈경고장치(LDWS) 장착 비용을 최대 80%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의 기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량이 처음 제조되는 단계에서 AEBS나 LDWS가 탑재된다면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미 운행을 하던 차량에 AEBS나 LDWS를 장착하면 제어가 안 돼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화물차 운전기사 B씨는 “상용차 제조사가 다양한데, 국내에서 생산된 AEBS와 LDWS를 제대로 된 실험도 거치지 않고 장착했다가 만에 하나 사고라도 발생하면 개별 운전기사가 (시스템 호환 결함의) 문제를 밝혀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고 예방을 위해 DTG(디지털운행기록계)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DTG 제조사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고, 심한 경우 에러율이 30%에 달한다. 즉 표준화나 품질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심한 경우 2~3년 마다 장비를 교체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30만원에 달한다. 말하자면 정부 정책을 잘 따랐던 기업들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지금 미국에서도 전자식운행기록계(ELD)를 의무화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점진적으로 DTG를 확대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DTG 장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직접고용 형태로 서비스 품질 높여야
 
지입제도는 화물자동차운송사업 면허를 가진 운송업자와 실제로 차동차를 소유한 차주간의 계약을 뜻한다. 자동차를 운송업자 명의로 등록하고 운송사업자에게 귀속시키지만, 내부적으로는 차주들이 독립된 관리 및 계산으로 영업을 하고, 운송사업자에게 지입료를 지불하는 운송사업 형태다.
 
우리나라 화물운송시장에서 화물은 운송주선업체나 운송업체가 화주와 계약을 맺는 구조로, 주선업체나 운송업체는 운송효율이 높은 지입 차량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특히 화물을 갖고 있는 운송업체는 고정비와 노무관리 부담으로 인해 지입차주와 위수탁계약을 맺고, 지입료를 수입원으로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쯤에서 다시 창원터널 화물차 폭발사고를 다시 떠올려 보자. 당시 사고를 낸 운전자 윤모 씨는 사고 당일 오전 업체 2곳에서 기름통을 실었다. 총 화물량은 7880L로 조사됐는데, 4종의 윤활유 200L 22통과 20L 174통 등 총 196통이 적재됐다. 5톤 차량에 2.3톤이 넘게 실린 이유도 지입구조와 무관치 않다. 윤 씨는 매달 19만8천원 가량 관리비를 내고 사업용 번호판을 물류회사로부터 대여받아 지입차주로 운행을 해왔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윤 씨는 화물운송종사 자격증이 없었음에도 위험물 운반에 나섰던 것으로 밝혔다. 이에 대해 물류회사 측은 “윤 씨가 무자격자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가 화물회사로부터 콜(운송‧운반 요청)을 받아 개별적으로 운송을 해왔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윤 씨는 울산 모 가공유 회사의 콜에 응해 화물 운반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의 본질은 화주와 물류기업, 화물차 운전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뒤, 윤 씨가 최근 2년간 10번 가량 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는 점과 그가 76세의 고령 운전자였다 것, 결정적으로 국립 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 브레이크 결함으로 사고가 났다는 것으로 정리됐다. 표면상으로 드러난 이유만 놓고 보면 윤 씨의 책임이 맞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제2의 창원터널 폭발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국제물류관리사협회 구교훈 회장은 “화물운송주선사업자와 화물운송사업자의 혼재와 무면허 주선업자의 난립 등 다단계 운송의 프로세스로 인해 가장 말단에서 화물을 직접 운송하는 지입차주나 위수탁운전원들이 실제로 수령할 수 있는 운임은 화주가 최초 주선업체에게 주는 운임과는 현저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구 회장은 “사고운전자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물차를 운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이러한 화물운송종사자 자격이 없는 운전자들이 과연 화물운송 시장에 얼마나 있으며,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과 화물운송 업무를 위탁하는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따라서 우리 화물운송시장에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2003년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이후 반복적인 파업이나 불법적인 다단계운송 및 지입차를 비롯한 하청구조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현 화물운송시장에 대한 원시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우리나라 물류기업들도 물류서비스의 품질과 운행의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운송 구조를 점차 직영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물류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게 물류기업의 본래 역할이 아닐까.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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