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물류시장에 불고 있는 찬바람이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유라시아 주요 국가들의 교역량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포워더(국제물류주선기업)들이 느끼는 시황 체감도는 아직 쌀쌀하기만 하다.
기업들의 단가후려치기, 프로젝트 수주량 감소, 컨테이너 화물열차 발차 지연, 2자물류기업과 글로벌기업들의 시장잠식 등은 여전히 국내 토종포워더들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시황이 한껏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품었던 물류사들의 희망 실현은 내년으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중소포워더 “일감 구하기 어렵네”
서방 경제제재와 유가하락 장기화로 루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며 러시아 경제가 곤두박질친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떨어질 때까지 떨어지면 바닥을 치고 올라간다지만 북방물류시장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도무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된 탓에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발주 또한 잠잠하다. 포워더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따금씩 발주되고 있는 프로젝트 물류 운송건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다음달에 진행되는 우즈베키스탄 GTL(천연가스 액화정제시설) 물류운송 입찰을 앞두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따낸 이번 GTL 프로젝트는 국내 물류기업들의 입찰 참여가 제한적인 사실상 ‘반쪽짜리’ 운송에 가깝다. TCR(중국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진행되는 알짜배기 물류는 우즈벡 현지 기업이 맡는다. 국내 물류사들은 러시아 볼가항-돈 운하를 거쳐 진행되는 벌크와 유럽을 통한 컨테이너 운송을 수행한다.
과거 해상운송에서부터 하역, 통관, 육상운송 단계까지 원스톱으로 일을 맡겼던 해외 발주처들은 최근 물류를 여러 부분으로 쪼개 입찰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를 세분화하고 비용을 줄이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이면엔 주요 물류를 자국 기업에게 맡겨 물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국내 물류사들의 수익도 과거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포워더 관계자는 “최근 프로젝트 수주처로부터 물류 입찰 참여통보를 받지 못하는 국내기업들의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권사업이다보니 현지 기업에서 수행하는 사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이 GTL 입찰을 따내기 위한 물류사들의 ‘제살깎기’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업계는 중앙아시아 종합물류기업 ‘이브라콤’을 인수한 CJ대한통운과 최근 국내시장에 진출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인스타프로젝트로지스틱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이브라콤뿐만 아니라 이달 베트남 1위 물류사인 제마뎁의 물류부분을 인수하며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과거 물류업계의 예상을 뒤엎고 현대엔지니어링으로부터 선택받은 러시아 종합물류기업인 인스타프로젝트 역시 올해 우즈베키스탄 칸딤 가스처리시설에 사용될 중량물 운송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기존 북방물류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온 중소포워더와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우며 시장 점유율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2자물류사, 그리고 글로벌포워더들의 불꽃 튀는 경쟁이 예상된다. 치열한 경쟁은 운송단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실적악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중소포워더들의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계약을 따내지 못한 중소포워더들은 재벌기업 물류자회사나 글로벌포워더로부터 재하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량 앞에서 장사 없다고 했던가. 수익이 높지 않더라도 대부분 포워더들은 입찰에 참여한다. 입찰 불참 시 협력업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는 와중에도 물류사들은 목을 매고 입찰에 서류를 내고 있다.
포워더 관계자는 “별도로 프로젝트 물류운영팀이 없는 2자물류사들의 협력업체로 등록돼 재하청을 받으면 기존 100원이었던 수익이 70~80원으로 내려간다. 여기에 기업들의 입찰경쟁까지 붙으면 수익이 반토막까지 곤두박질치게 된다”라며 “다음 입찰 기회를 얻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입찰에 뛰어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방시장을 주력으로 하지 않는 파트너들의 물류수행을 맡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게 포워더들의 입장이다. 2자물류사들과 글로벌포워더들의 시장 진출 가속화가 북방물류시장에 표면화되며 중소포워더들의 목을 더욱 옥죄고 있다.
우즈벡 단일환율제도 시행으로 수입화물 급감
북방시장의 대외변수도 국제물류업계 시황을 좌우하고 있다. 포워더들은 CIS 지역에서 교역량이 가장 많은 우즈베키스탄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지난 9월 자국 통화인 ‘솜(SOM)’화 가치를 50% 가량 평가절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이중구조로 운영되던 시스템을 단일환율 제도로 변경한 것.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은 달러당 기준 환율을 4200솜에서 8100솜으로 책정·고시했다. 중앙 정부는 환율 분석과 수입업체의 계약에 따른 환율을 현실화하기 위해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솜화 가치하락은 현지 구매력 저하로 직결됐다. 포워더들은 9월 이후 우즈벡으로 향하는 화물이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포워더 관계자는 “우즈벡 정부 측에서는 이번 제도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흐지부지 될 가능성도 있어 대부분이 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쏟아진 폭우도 TSR 물류 운송에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여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쏟아진 폭우로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향하는 철도 물류네트워크가 약 1주일 가량 끊긴 것. 러시아철도청은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인 우수리스크와 프리모르스키에서 작업을 중단하고 수리 작업에 나섰다. 가뜩이나 노후화된 러시아 철도망이 폭우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러시아 해운물류사들은 극동지역에서 선적 예정인 계약분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 대체루트 확보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물류업계는 당시 폭우로 한국 일본 중국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화물이 평상시의 약 60~65%까지 떨어진 것으로 내다봤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폭우가 내리기 전인 1분기부터 한국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TSR 화물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보스토치니 주당 물동량은 6000~7000TEU 규모로 과거 침체기와 비교해 2배 이상 늘었다. 물량이 증가한 까닭에 원활한 물류 운송을 위한 화차(웨건)와 컨테이너 박스 수요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TMGR(몽골횡단철도)를 통한 일시적인 화물 증가로 컨테이너 장비가 다른 곳으로 몰리며 TSR 운송에 악영향을 미쳤다. 발차가 지연됐고 이는 곧 적체를 낳았다. 평소 운임이 높지 않은 이유로 TSR를 이용하던 포워더들은 TCR로 눈을 돌려 CIS향 화물을 늘렸다.
‘컨’ 장비부족에 화물철도 운임 상승
컨테이너 장비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매매단가도 자연스레 오름세를 보였다. 포워더들은 러시아에서 시작된 장비난이 CIS까지 확산되며 연초 대비 화물철도 운임이 상승했다고 입을 모았다. 물류사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20피트 컨테이너(TEU)당 평균 운임은 6000달러 중후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향 TSR 운임은 3000달러 중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컨테이너 장비 부족으로 운임이 상승했다는 평가다.
현재 북방물류시장은 컨테이너 박스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중국 정부가 올해 1분기 컨테이너 제작 시 수성페인트 사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자 리스사들의 제작 비용은 늘어났다. 제작 시간이 유성페인트에 비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인력 투입시간도 늘어났고 이는 곧 컨테이너 박스 단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TEU 박스 신조 가격은 2000달러를 웃돌고있다. 40피트 하이큐빅 컨테이너 박스도 4000달러(약 450만원)에 달한다. 일부 포워더들은 오른 물류비를 화주에게 전가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10월 초 장기연휴가 끝나고 성수기를 기대했지만 물거품이 됐다는 게 포워더들의 전언이다.
바닥친 시황, 내년에는 정말 회복될까
물류사들이 느끼는 시황 체감도가 매우 쌀쌀한 가운데 코트라는 최근 북방시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가 내놓은 시장 전망은 ‘흐림’이 아닌 ‘맑음’이었다. 경기침체에 따라 감소세를 보였던 민간소비와 고정투자가 점차 증가해 현지에서의 수입이 증가할 거란 전망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등 주요국의 경기 개선에 따라 한국과의 교역량이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국제유가 안정화로 지난해 바닥을 형성한 루블화 가치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포워더들은 시황회복을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지역의 경기개선이 지표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내년에 개최되는 러시아 월드컵 특수 또한 중국과 유럽 등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돼 기업들이 체감할 정도의 경기회복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본격적인 턴어라운드 시기가 언제가 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절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상황에서 경쟁은 심화되고 있어 포워더들의 수익성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시황이 나아질 때까지 출혈경쟁을 감수해야만 한다. 포워더 관계자는 “북방시장 교역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경쟁까지 치열하다보니 그야말로 버티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며 “향후 시황이 좋아질 것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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