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업 간 M&A(인수합병)은 ‘1+1=2’가 아니라는 통설이 있다. 실제로 2013년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고 CJ GLS와 합병할 당시, 두 기업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양사의 조직문화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및 전산 시스템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배송지연 등 차질이 빚었다. 이 무렵 증권사에선 CJ대한통운이 통합 초기 혼란, 파업으로 인한 물동량 감소, 판매단가 하락 등에 따라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1% 줄었고, 영업이익도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다고 평가했다.
올해 2월 KG로지스는 로젠택배로부터 KGB택배 지분 100%를 취득했다. KG로지스 측은 KGB택배와 통합 작업이 완료되면 매출액은 4300억원으로 증가하고, 시장점유율도 7.5%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단순 합산으로 보면 그럴듯 하지만, 실제 통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어 물동량이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KG로지스 장지휘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KG옐로우캡이 동부택배를 인수하고 KG로지스로 통합됐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네트워크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물량이 증가하지 않았다”며 “KG로지스의 성장성과 지속성이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KG옐로우캡이) 동부택배와 통합한 뒤로 회사의 사업 정체성이 모호해졌을 뿐만 아니라 집하물량을 보유하고 있던 영업소장들의 이탈이 발생했고, 한 지역에서 다수의 소규모 대리점이 배송위주로 사업을 벌이다보니 경쟁력이 없었고 자생력도 상실해 본사의 지원금으로 사업을 지탱하는 실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장 대표 본인이 KG로지스가 택배기업을 M&A 하는 과정에서 물량을 온전하게 흡수하지 못했던 상황을 지적하는 셈이다.
장지휘 대표는 KG옐로우캡과 KGB택배 대표를 모두 거친 인물로 양사를 통합할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그는 “KG로지스가 진퇴양난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리모델링이 아닌 리빌딩이라고 판단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KGB택배 인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덧붙였다.
KG로지스와 KGB택배는 로젠택배와 함께 C2C(소비자간거래) 택배시장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KG로지스 측은 이번 통합으로 양사가 보유한 물류 인프라를 공유해 물류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전략이다. KG로지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KGB택배 인수로) 이천 군포 옥천 세종 원주 대구 광주 등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물류 터미널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일일 처리 택배물량은 기존 50만개에서 100만개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로젠택배도 주저한 ‘KGB택배 통합’
KG로지스로 인수되기 전까지 KGB택배는 로젠택배에 귀속돼 있었지만, KGB택배 전국 지점장들로 구성된 KGB택배 협의회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두 회사의 통합은 진행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로젠택배는 KGB택배를 인수한 뒤에도 각각 법인을 유지하며, 로젠택배는 최정호 대표가, KGB택배는 장지휘 대표가 경영을 맡았다.
로젠택배 고위 임원은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로젠택배와 KGB택배 절대로 통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국 대리점의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통합 과정에서 엄청난 마찰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심각한 내부 반발을 염려해 양사 네트워크 통합을 애당초 염두에 두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KG로지스와 KGB택배의 통합은 성공적으로 진행될까? 안타깝게도 벌써부터 전국 대리점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노조)은 KG로지스와 KGB택배가 통합 절차와 방법이 부당하다고 비판하며, KG로지스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KG로지스 순천 지점장은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KG로지스에서 대리점에 보낸 계약 해지 통보 공문
노조가 지적하는 사항은 합병기준이 되는 ‘대리점 운영계획서’에 따른 점수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노조 측은 KG로지스 장지휘 대표와 노범하 상무가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로 지점을 통합시켰다며 울분을 토했다. 특히 합병 과정에서 수많은 대리점이 해지되면서 현재 KG로지스에 남아있는 지점장들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KG로지스 A 지점장은 “10년을 넘게 일했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본사의 강압적인 계약해지로 백수신세가 되는 것을 보면서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많이 하락했다”며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인수합병) 사례가 발생하면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는 그나마 통폐합된 지점에 남아있지만, 해고된 동료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많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쟁 대리점보다 훨씬 매출액도 높고 물동량도 많았던 지점이 계약해지 되는 것을 보면서 투명하지 못하고 원칙이 없다고 느꼈다”고 비판했다.
노조 주장에 따르면 강원도 원주의 경우 KG로지스와 KGB택배 양측 대리점 모두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원주, 횡성 5개 대리점에 근무하던 100여명의 택배기사가 일자리를 잃었고, 원주지역의 화주들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금전적인 피해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시 금천구 대리점은 KGB택배와 택배지역 대리점은 2016년 12월 1일부터 2018년 7월 30일까지 계약을 체결했고, 가맹비 550만원, 보증금 3000만원을 KGB택배 본사에 지급했다. 금천구 대리점은 계약체결 후 업무상 사용할 상하차장(토지)이 필요해 보증금 4000만원, 월세 300만원에 계약을 맺고 하차 작업에 필요한 장비설치 및 공사 등 각종 물품 구입에 700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올해 2월 6일 KGB택배가 KG로지스로 넘어가면서 KG로지스 금천지점으로 통합됐고, 이로 인해 해당 지점은 와해됐다.
현재 택배노조가 요구하는 사항은 ▲살인합병 중지 ▲통합과정 지점 평가 공개 ▲기존 택배기사 생존권 마련 ▲인수합병과정 공개 ▲일방적 계약해지 철회 ▲손실보조금 및 지원금 공개 ▲장지휘 대표‧노범하 상무 사퇴다.
한편 일부 택배업계 관계자는 KG로지스가 KGB택배를 통합한 뒤, 다시 로젠택배와 합병할 것이란 추측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풍문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만일 C2C 택배시장 단일화된 기업 육성을 위해 통합이 진행된다면 또 다른 갈등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CJ대한통운이 택배시장 점유율 40% 중반을 거머쥐며 독보적인 1강을 차지하고 있고, 한진택배와 롯데택배도 지속적인 인프라와 네트워크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나가는 상황에서 중소택배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인수합병(M&A)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지휘 대표는 역시 “C2C 택배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리점을 대형화하고 집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택배사업은 대리점의 경쟁력이 곧 본사의 경쟁력으로 본사와 대리점의 상생과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3월 1일자로 대리점 수수료를 업계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했고, 인프라 투자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G로지스, 통합 실패하면 ‘공멸’
KG로지스는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KG로지스와 KGB택배의 과거 3년간 양사의 누적 영업손실이 각각 702억원, 358억원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향후 견실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턴어라운드를 달성하고자 한다”며 “지금까지 대리점 통합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평했다. 특히 동일 지역 내 대리점 상호간 합의를 통해 동업법인을 구성하는 경우 별도의 대리점 탈락 없이 모두 수용하기로 한 정책이 대리점장의 불안을 없애줬다“고 평가했다.
▲양사의 과거 3년간 누적 영업손실
일부 대리점에서 발생하는 마찰에 대해서는 “각 지역 내 경쟁자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곳이 많았던 데다, 대리점장들이 지역 내 사업권 전체를 가져가려고 했다”며 “본사의 적극적인 중재에도 불구하고 탈락한 대리점은 기존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택배기사를 볼모로 배송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통합의 기준은 본사가 제시하는 것이지만, 화학적 통합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본사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만 짧은 통합기간 동안 현장의 감성적인 요소까지 터치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며 “(만약) 통합이 실패할 경우 두 회사는 업계에서 사라지고 수천명의 실직자를 양산해낼 것이다. 이에 대해 대리점장들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서는 각 지역의 대리점장과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들이 실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특히 각 대리점은 가맹점 계약에 의해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계약 내용에 따라 대리점도 다른 택배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양사의 대리점 통합 평가기준을 양사 대리점에 공지하고 기준에 따라 평가를 진행했으며, 계약해지 또는 해고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편파적인 대리점 통합 작업을 진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장지휘 대표는 “KG로지스는 장기적인 비전과 플랜을 갖고 C2C 택배시장의 강자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KGB택배 인수를 통해 물량이 증가하더라도 여유 있게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추가로 확보했다”며 “거점 계획에 따라 추가 터미널 건설과 자동화설비 도입, 도서 및 오지지역에 대한 드론택배 등 사업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