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20 07:32

KSG에세이/ 아이스 바나나의 굴욕

서대남 편집위원

서대남 편집위원

“고향을 언제 떠났노 / 바나나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외롭구나”

오늘 냉장고에서 언 바나나를 혼자 꺼내 먹으며 김동명(金東鳴)의 옛 시 파초(芭蕉)를 생각한다. 요샌 너무 흔해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나 대형마트는 물론 재래시장 구멍가게 심지어 길거리 노점상에까지 지천으로 늘려있는 게 바나나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30여년 전만 해도 한사코 달랐다. 과일인지 채소인지는 잘 모르지만 바나나는 너무나 귀하신(?) 존재였다. 어느 해. 정확히 35년 전쯤 일인 것 같다. 배라곤 자랄 때 낙동강 나룻배 두어번에 서울에 와서도 창경원 보트를 한번인가 그저 구경만이었던가 기억의 전부였던 시절이다.

그저 배라고는 나무로 만들었거나 쇠로 만들었거나 간에 물에 뜬다는 뗏목 개념 이상의 상식은 없을 때였던 것. 직장 돈벌이 개시 10년차의 필자가 30대 후반에 갑자기 배를 타고, 그것도 멀어 봐야 제주도나 국내의 도서지방이나 어느 어촌의 낭만어린 낯선 포구가 아니라 배를 타고 지구의 저 편까지를 가며 선박내부나 선상 직원들의 생활까지도 살피고 와야 되는 제법 거창한(?) 목적과 여정이었다.

해양계 교육을 받거나 선상 경험을 쌓은 선장이나 기관장급 출신이 아닌 활자매체 종이쟁이(?) 경력자에게 소속 직장의 악질(?) 수장이 어느 날 갑자기 부서장급 인사이동을 통해 ‘해무부장’ 자리를 맡으란 분부를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밥벌이를 계속 하려면 피할 수 없는 길이었기에 우선 한국해대 실습선 <한바다>호에 승선,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난생 처음  뱃길로 첫 기항지인 타이완의 지룽항에 입항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부두를 떠날 땐 추운 날씨였는데 지룽항에 상륙을 하고 보니 따뜻한 날씨에 우선 눈에 띄는 게 바로 바나나였다. 무엇보다 놀랜 건 탐스런 바나나가 예상 밖으로 값이 싼 것이었다. 학생들과 떨어져 혼자 낯선 항구와 거리를 살피면서 필자의 관심은 온통 바나나에만 집중됐었다. 이를테면 10,000원 정도는 웃돌 것으로 예상한 값이 0 하나를 뺀 10분의 1쯤의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싼 맛에 우선 두서너 다발을 사서 점심 한 끼를 바나나로 배를 채웠다. 당시 이렇게 귀한 바나나를 마음 놓고 실컷 먹을 수 있다니 그저 신나기 그지 없었다. 남은 건 배로 들고 와 선실의 침대머리에 올려두고 밤참으로도 바나나를 먹었다.

며칠을 지나 다음 항, 지금은 어느 항구를 먼저 갔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인도의 캘커타항(콜카타항)과 버마(미얀마)의 랭군항(양곤항) 차례였다. 항행시간이 보름 정도가 걸린대서 출항 전날 비축용 바나나를 크게 한보따리 샀다. 선실에서 오래 갈무리를 할 방법을 강구 끝에 시험 삼아 몇 송이를 냉동실에 넣어 얼려서 먹어봤다. 그 귀한 바나나를 얼려서 아이스 바나나를 만들어 먹으니 그 차갑고 혓바닥에서 사르르 녹는 맛과 향이 기가 막혔다.

언 다음엔 껍질 벗기기가 힘들어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미리 껍질을 벗겨 그릇에 담아 얼리니 꺼내 먹기에도 편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늘 바나나를 볼 때마다 35여년 전 옛 생각이 나서 언제 다시 저 바나나를 얼려서 먹어보리라 맘만 먹다가 마침내 얼마 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올 설을 며칠 앞두고 손주들이 오면 세뱃돈에 더 해 이 할아버지가 기가 막히는 아이스 바나나를 몰래 만들어 ‘짠!’하며 깜짝 쇼를 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최고!”란 명성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리라. 참으로 야무진 꿈이었다.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설날 아침 추모예배를 끝내고 세뱃돈을 건넨 후 “아이스 바나나 짠 ~!!” 순서가 임박했다.

“다음은 빅이벤트에 스페셜 이벤트로 이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 바나나를 선물하겠습니다”란 오프닝 멘트가 떨어지기도 전에 필자 예하 분대원(?) 9명 중 이 할아버지만 제외한 8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바나나는 필요없어요. 안먹어요!”라고 외쳤다. 손주녀석들보다 애비 에미들이 한술 더 떠 “요새 누가 바나나를 먹어요!”란 한심하고 기가 차단 말투에 필자는 아연실색,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괘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필자가 작심하고 만든 기획상품 ‘아이스 바나나’가 냉동실에서 이벤트 행사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혐오식품 취급을 받으며 ‘손주’들로부터 거부당한 것.

참으로 처연한 “아이스 바나나의 굴욕”을 상기하면서 오늘도 일요일 오후 빈집에서 반납 폐기상품을 즐기는 나홀로 망중한 속에서 환희와 희열의 엑스타제를 만끽한다. <끝>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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