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7 13:24

논단/ 편의치적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법인격부인, 가압류가능성 및 관세법상의 문제에 관한 판례를 중심으로

<11.14일자에 이어>

4. 편의치적과 관세법 문제

가. 관세법상의 취급·관세법상의 수입에 해당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서 선박을 취득해 사실상 소유하면서 형식적으로 외국에 회사를 설립해 그 회사 명의로 선박을 편의치적한 경우에 이 선박을 국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반입하는 것은 관세의 부과대상이 되는 수입에 해당한다는 것이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나. 대법원 2000년 5월12일 선고 2000도354판결

관세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외국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도착된 물품을 우리 나라에 인취(引取)하는 것을 관세의 부과대상이 되는 수입의 한가지 형태로 규정하고 있고, 여기서 우리 나라에 인취한다고 함은 물품이 사실상 관세법에 의한 구속에서 해제돼 내국물품이 되거나 자유유통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인 바, 선박의 경우에는 그것이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를 왕래하는 등의 특수성이 있으므로 선박이 우리 나라의 영역에 들어온 것만으로는 그 선박이 수입됐다고 볼 것은 아니며

다만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자가 외국에 있던 선박의 사실상 소유권 내지 처분권을 취득하고 나아가 그 선박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 사용에 제공된 때에는 형식적으로는 그 선박이 우리 나라의 국적을 아직 취득하지 아니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관세부과의 대상이 되는 수입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실질과세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하고 외국의 선박을 국내 거주자가 취득하면서 편의치적의 방법에 의해 외국에 서류상으로만 회사를 만들어 놓고 그 회사의 소유로 선박을 등록해 그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게 한 다음 이를 국내에 반입해 사용에 제공하게 한 때에도 위에서 말하는 관세법상의 수입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대법원 1993년 5월25일 선고 93도689 판결, 1994년 4월12일 선고 93도2324 판결, 1998년 4월10일 선고 97도58 판결 등 참조).

다. 헌법재판소 1988년 2월5일 96헌바96결정

(1) 법 제180조 제1항 본문은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포탈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그 포탈한 세액의 2배 이상 10배 이하에 상당한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둔 것은 관세를 포탈하지 못하게 해 국가의 재정수입을 확보하고 국내산업을 보호하려는 데 그 입법목적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은 탈세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행위로서 사회통념상 사위(거짓), 부정으로 인정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며 적극적 행위(작위) 뿐만 아니라 소극적 행위(부작위)도 포함되는 것이다(대법원 1987년 11월24일 선고, 87도1571 판결, 법원공보 제816호 199면). 어떤 행위가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에 해당되는 지의 여부는 구체적인 경우에 위 법조항의 입법취지와 관세포탈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행위를 전체적으로 보아 그 행위가 관세포탈의 범의(犯意)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행위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관세포탈은 범죄의 성질상 관세를 포탈하기 위한 행위유형이나 포탈의 수법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법률에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시대적 변화와 상황에 따라 행위유형이나 포탈의 수법이 점차 교묘하게 변하고 있으므로 처벌법규 또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어느 정도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의 여지를 두고 성문화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 제180조 제1항 본문의 구성요건인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이라는 용어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그 적용대상자가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고 있는지 알 수 있게끔 규정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헌법재판소 1990년 1월15일 선고, 89헌가103 결정, 판례집 제2권 419면).

(2) 편의치적은 내국인이 외국에서 선박을 매수하고도 우리나라에 등록하지 않고 등록절차 조세 금융면에서 유리하고 선원 노임이 저렴한 제3의 국가에 서류상의 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소유의 선박으로 등록하는 것을 말한다. 청구인들은 대외무역법 및 상공자원부장관의 수출입별도공고에 의해 수입허가를 받을 수 없는 선령이 10년 이상인 일본제 중고선박들을 편의치적의 방법으로 수입한 것이다. 즉 편의치적의 방법으로 외국(벨리제국과 파나마국)의 선적을 취득하게 한 다음 국내에 반입해 사용하면서 단순한 하역이나 선적 또는 수리목적 등으로 입항한 것처럼 허위로 신고한 경우다.

이러한 경우에는 비록 위 선박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선박이 수입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관세부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대법원 1994년 4월12일 선고, 93도2324 판결, 법원공보 969호 1545면).

(3) 이와 같은 편의치적이 실질과세의 원칙에 부합되는 관세부과의 대상이 되는 이상 법 제180조 제1항 본문 소정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관세를 포탈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해 죄형법정주의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과 유추해석금지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대외무역법 등에서 일정한 선령이 경과한 선박의 수입을 금지한 것은 노후한 선박의 안전운항에 대한 우려와 중고선박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인해 국내 선박건조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정책적 이유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선박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포탈한 자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재정수입을 확보하고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편의치적의 방법에 의한 선박수입을 관세포탈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권 제한으로 입법목적 달성수단으로 필요하고 합리성을 갖춘 것이다.

더구나 내국인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박을 수입해 해상운송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므로 헌법상의 재산권보장이나 직업선택의 자유(영업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거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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