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4 08:00

기획/ 부산항 하역료 해법 정부·업계 동상이몽

정부·항만물류協, 운영사간 신사협정 준비중
운영사, “북항 공급축소도 병행해야”
운영사, “북항 공급축소도 병행해야”


●●●부산항은 올해 들어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산항은 9월까지 1056만TEU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성장했다.

벌크선 뿐 아니라 컨테이너선사들이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수출입 화물은 664만TEU, 환적화물은 546만TEU를 기록했다. 각각 12% 15%의 성장 속도다. 특히 7월 이후 환적화물은 20%를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부두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한겨울이다. 부산항 내 북항과 신항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하역료가 급전직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북항 운영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는 수익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물동량 감소와 하역료 하락의 이중고가 북항 운영사들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다.

‘하역료는 떨어지고 적자폭은 커지고’

부산항 물동량 증가에 비해 선석당 처리 물량은 신항 개장과 함께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부산항만공사에 따르면 부산항 처리물량은 2008년 1345만TEU에서 지난해 1399만TEU로 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터미널 선석당 처리물량은 같은 기간 60만3천TEU에서 38만8천TEU로 36.5% 급감했다. 부산 신항 가동에 따른 공급과잉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부산 신항은 현재 총 17선석의 컨테이너부두가 가동되고 있다. 1단계 1~2차 9선석과 2단계 1~2차 8선석이다. 2-3단계 4선석도 내년 초 개장할 예정이어서 공급과잉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처리물량 감소와 함께 부산항 하역료도 곤두박질쳤다. 북항 하역료 수준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5만5천원에서 지난해 4만5천원대로 떨어졌다. 현재는 3만원대까지 하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부산항 하역료는 신항이 개장하기 전인 2004년만 하더라도 10만원대를 넘어섰다. 6년만에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궤를 같이 해 북항운영사들의 영업실적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북항을 대표하는 한국허치슨터미널(HBCT, 옛 자성대부두)의 지난해 매출액은 913억원으로 1년 전 1355억원에서 33% 감소했다. 순손실 폭은 2009년 78억원에서 지난해 594억원으로 7배 이상 확대됐다. 대한통운부산터미널(KBCT, 옛 신선대부두)은 매출액은 2009년 1354억원에서 지난해 1321억원으로 감소폭이 크지 않았지만 순이익은 42억원에서 24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하역료 덤핑은 현재 우리나라와 대만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항만업계는 말한다.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항만운영사 단체인 일본항운협회를 중심으로 사전협의제가 지켜지고 있어 요율하락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전협의제란 컨테이너선 취항, 항만운영사 진출, 노사문제 등을 항만업계 노사와 선사들이 협의토록 해 시장질서 교란을 예방하는 제도다. 일본 도쿄나 고베항의 TEU당 하역료는 18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도 상하이나 칭다오 텐진 다롄항 등의 터미널 요율은 70~80달러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6배 이상, 중국은 2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항만하역업계는 심각한 요율 덤핑은 곧 국부유출로 이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부산항을 이용한 외국선사가 수송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819만TEU였다. 부산항 전체 처리물량의 60%를 차지하는 규모다. 외국선사들의 취급물량이 국적선사를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 “하역료 하락은 곧 외국선사들의 배만 불리는 격”이란 주장이 가능하다.

“이달 내 클린협정 매듭” 계획

보다 못한 정부는 항만운영사 단체인 한국항만물류협회와 손잡고 항만하역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지난 7월 마무리된 ‘항만하역시장 안정화 방안’ 연구용역이 밑그림이 됐다. 그 첫 단추가 공정경쟁협약(클린협정)이다.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부 류동근 교수는 운영사들의 클린협정 체결 후 정부가 공정경쟁규약을 만들어 선포할 경우 요 몇 년 새 진행돼 온 하역료 하락을 당장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공정경쟁규약의 경우 예선업계에선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예선업협동조합은 예선업체 난립으로 리베이트 등 시장 질서가 혼탁해지자 지난 2009년 3월 공정경쟁규약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항만물류협회는 이달 안으로 클린협정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회원사를 대상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클린협정을 빨리 체결해야 그 다음 수순인 공정경쟁규약을 도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당장 협약 체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운영사들이 협약 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운영사들은 협약 체결이 하역료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미지수란 입장이다. 외국계 운영사들의 경우 본사 승인과 법적 검토를 문제로 협약 참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달 28일 국토해양부 주성호 물류항만실장과 부산항 컨테이너부두 운영사 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도 이 같은 인식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회의에서 한 외국계 운영사 대표는 “클린협정 같은 대응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협회는 일부 반대하는 외국계 운영사를 끝까지 끌어안고 가야할지 배제하고 찬성하는 운영사만을 꾸려서 협약을 체결할지 고민 중이다.

공정경쟁규약 도입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당초 연내로 도입할 예정이었던 규약은 빨라야 내년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협정 체결이 쉽지 않은데다 협정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와 규약 내용이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지를 놓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예선업공정경쟁규약은 이 과정에서 6개월을 허비했다.

정부는 공정경쟁규약이 도입되면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을 통해 하역료 신고요율을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컨테이너 전용터미널에서 처리되는 컨테이너의 하역료는 2000년부터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하역업체들마다 신고한 요율이 달라 하역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매년 업체별로 지방해양항만청에 신고되고 있다.

정부는 부산해양항만청을 주무관청으로 부산항 부두의 하역료가 신고운임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감독하고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해 하역료 하락을 억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재책엔 높은 수준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최종단계로 컨테이너 운영사 처리물량을 제한하는 이른바 항만풀링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처리물량의 상한선을 정해 과도한 경쟁을 막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한일항로에서 취항선사들은 이와 유사한 선적상한선제도(실링제도)를 도입해 톡톡한 실익을 거두고 있다. 한일항로 취항선사들은 지난 금융위기 시절 물동량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실링제를 통해 운임하락을 단속함으로써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다.

이 같이 다단계 처방책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정작 하역료 덤핑을 불러온 근본원인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항만물류업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항의 공급 과잉을 해소하는 게 먼저란 목소리다.

현재 북항과 신항엔 총 10곳의 운영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북항에서만 6곳의 운영사가 영업 중이다. KBCT와 HBCT를 비롯해 KCTC와 국보가 투자한 우암부두(UTC), 동부익스프레스가 운영 중인 동부부산터미널(DBTC, 신감만부두), 세방과 인터지스가 감만부두를 거점으로 각각 운영하고 있는 세방부산터미널(SBCT)과 부산감만터미널(BGCT) 등이다.

신항에선 싱가포르 PSA와 한진이 제휴한 부산신항국제터미널(PNIT)와 두바이포트월드가 보유하고 있는 부산신항만(PNC)과 1단계에 둥지를 틀고 있고 한진해운신항만(HJNC)과 현대상선부산신항터미널(HPNT)이 2-1단계와 2-2단계에서 성업 중이다. 내년에 고려해운 CMA·CGM KCTC 인터지스가 참여한 부산항신항컨테이너터미널(BNCT)이 개장 할 경우 운영사는 11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북항의 공급과잉 해소에 무게를 싣는 주장들이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항의 공급과잉부터 일단 잡아놔야 그 이후 하역료 안정화를 위한 대책들이 순조롭게 풀려 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항 하역료가 북항보다 최소 15%가량 높다는 점에서 북항 조기 재개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거론되는 재개발 대상은 바로 자성대부두다.

자성대부두는 지난해 현대상선이 이탈하면서 전체 물동량의 절반인 100만TEU를 잃어버렸다. 내년엔 CMA·CGM과 고려해운 등도 신항내 자체부두로 이전할 계획이서 물동량은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운영사 한 관계자는 “자성대 부두는 피더선박의 비율이 90%를 넘어서고 있어 더이상 온전한 컨테이너부두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까지 왔다”고 진단했다.

자성대부두의 예처럼 북항 물동량의 신항 이전은 이제 막을 수 없는 대세다. 신선대부두(KBCT)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신항 이전을 검토했다가 하역료 인하를 제시한 운영사측의 회유로 계획을 보류했던 그랜드얼라이언스(GA, 하파그로이드·OOCL·NYK)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 초 신항 이전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GA가 부산항에서 취급하는 연간 물동량은 신선대부두 전체 물량의 절반 수준인 100만TEU에 이른다. GA의 이탈은 곧 신선대부두의 위기인 셈이다.

3차항만개발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자성대부두를 2020년까지 컨테이너부두로 활용할 계획이다. 2019년 6월까지인 자성대부두의 임대기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항만물류업계는 북항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자성대부두를 잡화 또는 다목적 부두로 용도변경해 컨테이너처리능력 200만TEU를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운영사인 HBCT측도 재개발을 원하고 있다. HBCT는 자성대부두를 내놓는 대신 신항의 2-5단계 3선석을 대체부두로 조기개발해주길 요청한 바 있다.

업계 한 임원은 “자성대부두는 이미 투자비를 2.2배가량 회수한데다 시설도 노후화했기 때문에 굳이 컨테이너부두를 고집할 이유 없다”며 “부두기능을 전환해서 다목적이나 잡화부두로 이용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 임원은 “정부가 신항 개발로 시설과잉을 불러왔기 때문에 현재처럼 하역료가 내려간 것”이라며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북항의 조기 재개발을 촉구했다.

국토해양부는 이 같은 업계 요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과천에서 열렸던 부산항 운영사 회의에서 국토부측은 시설과잉에 대한 의견이 나오자 “계획에 없다”고 못 박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항만물류기획과 송상근 과장은 “항만하역료 안정화 대책은 항만물류협회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안정화 대책과 북항 재개발은 별개의 문제로, (북항 재개발은) 현재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경희 차장 khlee@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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