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23 13:56

日시장 아성을 깨뜨린 기업들, 무엇이 달랐나

무협 대일 수출기업 사례집 출간
일본시장은 ‘호두’에 비유할 만하다. 껍질은 망치가 필요할 만큼 단단하지만 속에는 맛좋고 영양분 풍부한 열매가 들어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많은 한국기업들이 때론 무모하게, 때론 조심스럽게 일본시장을 두드린 것도 이 때문이고, 몇 마디로는 끝나지 않을 무수한 이야기를 남겼다.

심각한 것은 우리 기업들의 일본시장 공략이 실패로 끝나고 역으로 일본기업들은 한국시장에서 펄펄 날 때마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늘어왔다는 사실. 급기야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인 327억 달러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는 8개월간 170억7천만 달러를 기록 중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무역협회가 기업의 대일 수출을 전략적으로 지원키 위해 펴낸 일본시장 진출 성공기업 사례집 ‘스시보다 맛있는 일본수출 이야기’를 읽어볼 만하다. 정부의 개선대책에 기대기에 앞서 21개 일본시장 공략선배들의 눈물겨운 분투기는 일본시장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에게 그 자체로 충분히 교훈적이다.

생활용품 수출업체인 한일맨파워는 약 1천원 수준의 필기구, 슬리퍼, 유리잔 등 각종 생활용품을 20년간 일본 한 국가에만 수출해 누적 매출액 1조원을 달성한 무역업체다.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매월 약 500개의 신상품을 개발해 일본에 내보내고 있으며 다이소산업의 해외 수입물량 가운데 3분의 1을 공급 중이다.

끊임없는 품질개발로 일본에만 1조 수출

다이소에 납품하는 업체 가운데 대부분이 3년 이상 거래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반면 한일맨파워는 ‘항상 긴장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해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다이소산업과 거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97년 1천만불 수출탑, 1999년 3천만불 수출탑, 2000년 7천만불 수출탑, 2002년 1억불탑을 수상하며 성장가도를 달려온 한일맨파워는 소비자에게 100엔 이상의 가치를 주는 제품들을 계속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환갑의 나이에 국내 최고의 OPC드럼 생산업체인 백산OPC를 일궈내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의 일본시장을 평정한 이범형 부회장. 사무기기의 토너 카트리지에 장착되는 핵심부품인 OPC를 다년간의 연구·개발로 상품화에 성공, 창업 10년 만에 일본을 제치고전 세계 70개국, 400개 업체와 거래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1997년 고감도 EX드럼을 개발하여 북미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백산OPC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시장에 진출해 가장 약한 업체의 거래처부터 차례차례 장악하여 2위인 후지를 물리치고 결국 오랫동안 1위 자리를 누려온 미쓰비시의 자리까지 빼앗았다.

직원의 30%를 연구·개발인력으로 두고 있는 백산OPC는 매년 타사에 앞서 10~15개의 신기종을 개발·판매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기술은 기술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76년 플라스틱 사출금형업체로 출발한 재영솔루텍은 2000년대 들어 고민에 빠졌다. 중국이 금형산업에 관심을 높이면서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악화됐고, 수출시장의 60% 이상이 일본에 집중돼 신규 거래선 확보가 불가피해졌기 때문.

이런 고민의 타개책으로 재영솔루텍은 2003년 11월 도쿄에 위치한 몰드베이스 생산업체인 우치다를 1억엔에 인수해 'JYCO'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플라스틱 사출금형 생산 및 영업과 함께 금형의 유지·보수도 수행하며 현지에서의 신속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주문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2007년 10월에는 일본 대기업인 교세라그룹의 중·대형 금형사업부문을 인수·합병했는데, 교세라 케미컬이 금형사업부문 인수를 희망했던 다수의 일본 금형업체들을 제치고 재영솔루텍의 손을 들어준 데에는 20여년간 좋은 품질의 금형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오면서 쌓아왔던 믿음이 큰 역할을 했다.

2008년 우리나라의 전체 파프리카 수출액의 약 1/6을 수출한 오션그린의 출발은 일단 일본의 농수산물 유통업체인 오션트레이딩의 한국지사 성격이었다. 2003년 설립 당시만 해도 주력 수출품목은 국화였고 거래처는 오션트레이딩 뿐이었다.

하지만 농산물 수출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이종우 지사장은 일본인들의 취향과 유통구조를 꿰뚫고 있었고, 그의 노력으로 오션그린은 파프리카 분야에서 주력 수출업체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일본 블루베리 공급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오션트레이딩의 최고경영자가 이 지사장에게 기술전수를 약속했다고 한다.

日기술자 영입으로 밀접한 관계유지

야마자키 마작 등 세계 부품 ‘빅 5’를 비롯한 일본, 유럽 등의 40여개 회사와 거래하며 연평균 70~80%씩 고도 성장해온 대성하이텍은 지난 1995년 대성정공으로 설립된 뒤 해외로 눈 돌려 일본수출에 나서게 된다. 2년간의 노력 끝에 3천만원짜리 주문을 받지만 워낙 일본바이어의 기준이 높아 밤을 새우고 끝없이 제품을 수정한 후에야 그들의 요구에 맞춰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바이어들의 요구조건을 맞춰주면서 대성하이텍의 경쟁력 수준도 올라갔다.

현재 대성하이텍은 일본인 퇴직기술자 등 3명의 기술고문을 영입해 일본의 정밀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일본시장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아이디어 상품인 ‘애니락’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어떤 비닐이라도 손쉽게 밀폐·방수 처리할 수 있는 이 제품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하고 현재 일본과 미국, 유럽을 비롯해 세계 25개국에 수출되는 등 반응이 매우 좋다.

이밖에 우리 같은 희석식 소주업체만 80여개, 증류식 소주업체가 1,600여개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일본 시장을 뚫었고, 라면의 원조인 일본에서 매운 맛을 살린 라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 기업이 있다. 오락실게임과 비디오게임이 주류를 이루는 현지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신규 수요를 일으키는 데 성공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앞선 IT기술을 적극 홍보해 일본의 전자정부 시스템 도입에 기여하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일본시장의 벽이 높지 않은데도 ‘호랑이보다 곶감이 무섭다’는 현지 전문가들의 말만 믿고 대기업조차 도전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어느 사장의 후일담도 이 책 속에서나 확인 가능하다.

한편, 무역협회는 이번 일본 편 수출성공 사례집에 이어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을 담은 ‘삼국지보다 재밌는 중국수출 이야기(가제)’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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