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4 09:25

논단/사정변경으로 인한 용선계약의 해지가 가능한가?

정해덕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 법무법인 화우
■계약존속이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 해지가 허용돼야


<5.4자에 이어>

(3) 서울고등법원 1996. 1. 30. 94나38429 판결

계약의 기초가 된 사정이 계약이 성립된 후 그 이행기 사이에 당사자의 책임없는 사유로 인하여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하게 변경되고 그 결과 당초의 계약내용대로 그 이행을 강제하거나 그 계약을 존속시키는 것이 신의칙과 형평의 원칙상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계약당사자에게 이른바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른 해재권이 발생한다. 이 판결의 상고심은(96다11181) 사정변경의 원칙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다른 사유로 파기하여 고등법원에 환송하였다.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12. 30. 2008카합3816 결정(이른바 키코(KIKO) 사건 가처분 결정)

(가) 사정변경 등으로 인한 계속적 계약의 해지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이 계약 성립 이후 현저히 변경되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경우에,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고 나아가 변경된 사정을 고려하여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일방에게 기대할 수 없게 된 경우라면, 다른 일방은 계약 준수원칙의 예외로서 신의칙에 의하여 계약을 장래를 향하여 해지할 수 있다고할 것이고(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는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당사자 공통의 근본적인 관념이 사후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나) 이 사건의 경우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소명되는 다음 각 사정을 종합해 보면,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여 신청인들로 하여금 이 사건 계약에 따른 의무를 계속해서 이행하게 하는 것은 신의칙에 현저히 반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계약은 신청인들의 해지의 의사표시가 담긴 이 사건 신청서 부본의 송달(피신청인 은행에 2008. 11. 3. 도달)로써 적법하게 해지되었다고 할 것이다.

① 이 사건 계약은 1년 내지 3년의 계약기간 동안 1개월 단위로 만기가 도래하는 각 구간마다 해당 만기시점의 시장환율을 기준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으므로 계속적 계약에 해당한다(다만, 각 구간마다 신청인들의 풋옵션 가치와 피신청인 은행의 콜옵션 가치가 대등한 것이 아니라 전체 계약기간을 기준으로 할 때 신청인들의 풋옵션 가치의 합계와 피신청인 은행의 콜옵션 가치의 합계가 대등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계약기간 중간에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는 옵션 프리미엄의 정산이 필요할 수 있다).

②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Implied Volatility)’은 신청인들과 피신청인 은행이 갖는 각 옵션의가치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변수이었으므로 이는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 사정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또한 앞서 보았듯이 신청인들과 피신청인 은행은 모두 환율이 계약기간 동안 일정한 범위(상단환율과 하단환율 사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피신청인 은행도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상단환율 위로의 일정 폭의 환율 상승도 포함하는 의미이다)에서 안정적으로 변동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는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당사자 공통의 근본적인 관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③ 그런데 이 사건 계약 체결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 또한 급격하게 커졌는바(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은 1년 물 기준으로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3.6-5.4이던 것이 2008. 3. 18. 10.025, 2008. 9. 1. 10.295, 2008. 9. 16. 15.8325, 2008. 10. 6. 20.7475, 2008. 10. 7. 25.7575, 2008. 10. 16. 31.3725, 2008. 10. 28. 37.86을 각 기록하였다), 이러한 현저한 사정의 변경은 이 사건 계약체결 직전 3~4년의 원/달러 환율의 변동 상황 및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국내외 유수의 금융기관이나 연구소의 원/달러 환율 예측에 비추어 볼 때 신청인들이나 피신청인 은행이 이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볼 것이다.

④ 위와 같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신청인들은 앞서 본 바와 같이피신청인 은행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거래손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지 않는 한 남은 계약기간 동안 상당한 거래손실이예상되는바, 이는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할 당시 신청인들이 예상하였거나 예상할 수 있었던 손실의 범위를 훨씬 넘는 것이고, 또한 이 사건 계약으로 인한 신청인들과 피신청인 은행의 거래손익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⑤ 이 사건 계약에 의하면 계약체결 당시에 정한 행사가격 등 계약조건이 1년 내지 3년의 계약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되도록 되어 있고, 달리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여 신청인들의 손실이 예상 외로 확대되거나 옵션 가치 산정의 기초가 되었던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이 급격히 증가하여 계약체결 당시의 내재변동성을 기초로 한 계약조건이 더는 합리성을 갖기 어렵게 된 경우에계약조건을 변경하거나 계약을 조기에 종결하여 환율의 변동에 적응할 수 있는 장치가 결여되어 있다.

⑥ 일반적으로 은행은 장외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위험감수능력이 낮은 거래상대방에게 장외파생금융상품의 거래를 권유하는 경우에는, 거래상대방의 영업속성·재무상황·금융거래 수준, 당해 거래의 목적, 상품에 대한 이해정 도·위험관리능력, 상품의 종류 등에 비추어 그 거래상대방에게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거래를 권유하여서는 아니 되고(이른바 적합성 원칙), 나아가 당해 거래의 구조, 거래에 따르는 위험 및 잠재적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등 거래상의 중요사항을 거래상대방이 이해할 수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고지하여야 할 의무가있다고 할 것인바(이른바 설명의무), 이 사건 계약 체결 당시 신청인들의 장외파생금융상품 거래경험 및 업무담당자들의 경력 등에 비추어 볼 때 신청인들은 장외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위험감수능력이 낮았던 것으로 보이는 한편, 이 사건 계약은 복잡하고 이색적인 거래구조를 갖고 있는데다가 신청인들에게 무제한의 손실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피신청인 은행으로서는 신청인들에게 이 사건 계약의 체결을 권유함에 있어 위와 같은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등을 준수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피신청인 은행은 다음과 같이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신청인들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계약의 이행에 따른 엄청난 거래손실을 보게 되었다.

3. 관련 판례

(1) 대법원 1992. 5. 26. 선고 92다2332 판결
계속적 계약관계에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당사자에게 해지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대법원은 계속적 보증계약의 경우에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보증인에게 해지권을 인정하여 왔다. 즉회사의 이사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요구로 부득이 회사와 은행 사이의 계속적 거래로 인한 위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 연대보증인이 된 자가 그 후 위 회사로부터 퇴사하여 이사의 지위를 떠난 것이라면 위 연대보증계약 성립 당시의 사정에 현저한 변경이 생긴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정변경을 이유로 위 연대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2) 대법원 1990. 6. 12. 89다카30075 판결
원심이 계약을 부담부증여로 판단한 것은 채증법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하면서 방론으로 "위 약정과 같이 계속적 이행계약에 있어서 계약성립 당시의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의 약속을 유지·존속시키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만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위 약정을 해지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3) 대법원 1996. 11. 12. 96다34061 판결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차임불증액의 특약이 있더라도 그 약정 후 그 특약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될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여지는 경우에는 형평의 원칙상 임대인에게 차임증액청구를 인정하여야 한다.

(4) 서울고등법원 2001. 2. 8. 99나17830 판결
차임불증액의 특약 후 그 특약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될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에는 형평의 원칙상 임대인에게 차임증액청구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위 판결은 토지 임대인이 차임에 갈음하여 토지 임차인으로부터 매점의 운영권을 인수받기로 약정한 후 최초 계약일부터 19년, 매점운영권 인수일 부터 9년이지나 부동산의 차임이 2배 가까이 증가하고 부동산의 지가상승에 따른 공과부담이 증가한 반면, 매점의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어 매점의 운영수입이 2분의 1 이상 감소함으로써 결국 매점의 운영수입이 부동산 차임의 2분의 1 정도에 불과하게 된 경우,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약정한 차임이 상당하지 않게 되었다고 보아 임대인에게 차임증액청구를 인정한 사례이다.

(5) 서울지법 동부지원 1998. 12. 11. 98가합19149 판결
전세보증금 증감청구권의 인정은 이미 성립된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 그 내용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 데다가, 보충적인 법리인 사정변경의 원칙, 공평의 원칙 내지 신의칙에 터잡은 것인 만큼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만 인정될 수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의 요건인 ① 계약 당시 그 기초가 되었던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었을 것, ② 그 사정변경을 당사자들이 예견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 없었을 것, ③ 그 사정변경이 당사자들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하였을 것, ④ 당초의 계약 내용에 당사자를 구속시키는 것이 신의칙상 현저히 부당할 것 등의 요건이 충족된 경우로서, 전세보증금 시세의 증감 정도가 상당한 수준(일반적인 예로서, 당초 약정금액의 20% 이상 증감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음)에 달하고, 나머지 전세기간이 적어도 6개월 이상은 되어야 전세보증금의 증감청구권을 받아들일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고, 증감의 정도도 시세의 등락을 그대로 반영할 것이 아니라 그 밖에 당사자들의 특수성, 계약의 법적 안정성 등의 요소를 고려하여 적절히 조정되어야 한다.

Ⅳ. 결론

최근 사정변경의 원칙과 관련하여 민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즉 민법 개정안 제544조의4는 "당사자가 계약 당시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명백히 부당한 때에는 그 당사자는 변경된 사정에 따른 계약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고 상당한 기간내에 계약의 수정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는 이러한 학설과 판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최근 판례의 흐름에 의하면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지가 신의칙상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므로 해상법 분야의 용선계약의 경우에도 사정변경에 의한 계약해지의 주장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용선계약은 그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국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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