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1 13:29

기획/ “왜 이리 힘듭니까 내려갈 화물이 없어요”

/해운경기침체 체감 인천항 현장취재
빈컨테이너트럭 길가에 세워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예전엔 1주일에 2회, 지금은 한달에 한번꼴 자동차운반선 기항
수도권 물량 받쳐주는 인천항 상황도 이러한데 ‘깊은 한숨소리만’


●●● 미국발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제체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경제 공황과도 같은 불안감이 몰아치면서 전산업계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해운물류업계가 예외는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시황변동에 민감한 해운 지수들이 줄줄이 폭락하고 있어 해운물류업체들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전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교역량이 크게 줄다보니 그 여파에 가장 치명타를 맞게 되는 분야가 해운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해상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일거리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해운물류업계는 그 어느해보다 추운 연말을 맞고 있다.

고유가에 이은 고환율, 물량급감 그리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계 경제상황에 직면한 해운물류업체들은 당장 내년도 사업계획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현재 급변하는 환경하에선 제대로 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같은 하소연의 실상을 체험키 위해선 물류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길 밖에 없어 수도권의 관문이며 최근 몇 년간 눈에 띌 정도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인천항 부두를 둘러보았다.

인천항 입구에서 화물차들이 실을 화물이 없어 정차하고 있다.

인천항은 송도 신도시의 개발, 경제자유지역 개발, 한중 교역의 허브항이라는 호재와 지역적 이점을 안고 있어 현 경제위기 한파에 덜 노출됐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같은 예측과는 달리 인천항 부두에서 접한 해운경기의 실태는 상당히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우선 글로벌 경제위기이전의 해운 호황기때는 인천시내가 온통 20피트, 40피트 컨테이너와 원목 등을 실은 화물트럭 운행으로 소음이 진동할 정도였고 민원에 시달릴 정도의 넘치는 벌크화물 하역처리로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12월4일 촉촉이 초겨울비가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방문한 인천시내에서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빈 컨테이너차량들이었다. 더군다나 인천부두를 끼고 여기저기 주차해 있는 빈 컨테이너트럭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직감적으로 물류현장에서 느끼는 침체된 해운경기 실상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먼저 인천부두 입구의 길가변에 늘어선 빈 컨테이너트럭들에 접근해 보았다. 카메라 후레시가 터지자 곧바로 운전기사가 차량문을 열며 민감한 반응을 보냈다. “혹시 불법 주차 단속반 아닙니까”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내는 운전기사에게 침체된 해운경기 현장취재차 사진을 찍게 됐다고 설명하자 운전기사는 안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지난 월요일(12월1일) 오전에 부산에서 40피트 컨테이너를 싣고 인천항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부산에 가야하는데 싣고갈 컨테이너가 없어요. 그래서 3일이 지난 목요일 지금까지 이렇게 차안에서 노숙아닌 노숙을 하며 내려갈 컨테이너화물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운전기사는 현 해운경기 침체로 봐선 며칠 더 버텨야 될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예전에는 하루에 한번꼴로 부산에서 짐을 싣고 인천항에 와 하차시키고 곧바로 부산항행 컨테이너를 싣고 내려가는 것이 통례였다며 심각해진 해운경기 악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인천항까지 4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수송하는 운송비는 43만원정도이고 그에 들어가는 기름값은 28만정도다. 그러니 부산까지 빈차로 내려갈 경우 이 운전기사는 적자운행을 하게 되는 셈이다.


한편 인천항 부두내 하역시설들이 어느정도 가동하고 있는지 컨테이너부두를 둘러보았다. 컨테이너화물들은 2,3단적으로 쌓여있기는 했지만 이중 상당수가 봉인이 안된 빈(空)컨테이너라는 부두 관계자의 설명에 다시한번 해운물류업체들이 상당히 힘든 겨울 연말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수출입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부두내 적재된 컨테이너가 그리 많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몇단적으로 컨테이너화물들이 쌓여 있어 처음에는 그래도 인천항이구나 하며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가 수출할 물량이 없어 선사들이 가져가지 않고 방치해 논 빈컨테이너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답답하기만 했다. 선사들의 경우 장기 보관시 보관료가 크게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자사 보유 야적장도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부두에 쌓아놓고 있는 것이었다.

갠트리크레인 등 하역시설도 한가롭기만 했고 일부 하역시설은 시운전 등의 점검을 받고 있었다. 이 역시 해상운송 물량이 크게 감소하다보니 선박 입항이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처리할 하역물량도 급감하게 된데 따른 것이다.

하역사 한 관계자는 “금융위기이전 호황세를 누리던 시절에는 화물이 적재된 적컨테이너가 인천항 부두마다 5단적까지 쌓여 있을 정도로 빽빽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는 2,3단이 고작이고 이중에서도 봉인이 안된 빈 컨테이너를 쉽게 찾을 수 있어 경기침체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내심 씁쓸하기만 했다.

이같이 수출입 물량이 급감하다보니 해운선사는 물론이고 하역회사들도 구조조정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인천 유수 하역회사의 기획실을 찾았다. 사무실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기획실장의 표정이 밝지가 않아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윗선에서 뭔가 지시를 받았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1차 임금동결이라는 것. 경기 침체 상황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 지시가 내릴 것이라며 요즘은 항상 긴장상태에서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갑작스레 닥친 경기침체에 하역회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항만노무자 상용화 타이밍이었다. 하역 처리물량이 급감하다보니 실제로 항만노무자들이 한달에 일하는 기간이 1/3정도 줄어 항만노무자 상용화가 되레 손실을 가져오게 됐다는 것이다. 상용화마저도 하역회사들에게 큰 짐이 될 줄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역회사의 싸이로에도 하주들이 찾아가지 않은 소맥 , 옥수수 등 양곡, 사료원료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주들이 장기간 수입물량들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 자칫 이들 수입원료들이 썩을 수도 있어 하역회사나 하주 모두 큰 손실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양곡, 사료 수입은 환율이 크게 올라 하주들이 채산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있어 비축량을 고려할 시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라고 관계자는 밝혔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돼 자동차 수출이 크게 줄면서 GM대우자동차는 부평 2공장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자동차 수출물량이 크게 줄었음에도 인천항 자동차부두에는 채 수송되지 않은 자동차들이 널리 주차해 있었다. 외국으로 실어 나를 자동차운반선을 기다리고 있는 수출 자동차들이지만 자동차 운반선이 예전에는 1주일에 1,2척 기항했으나 경기침체이후 최근에는 20~30일에 한번꼴로 기항하고 있어 자동차 운송물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인천항의 경우 선박 계선(lay-up)에 적합하지 않은 항만이지만 최근에는 관계기관에 계선을 신청하는 선박들이 꽤 된다고 설명했다. 인천항의 계선문제가 불거져서 그렇지 부산남항에는 수백척의 계선 선박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고 이것도 모자라 진해쪽까지 계선 선박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계선을 신청하는 선사들은 당장 실어야 할 물량들이 없기 때문에 계선을 통한 정박 코스트를 최소화하는 한편 당직 선원외에는 배에 승선 선원들이 필요없어 선원비를 줄일 수도 있고 보험료도 크게 줄어 계선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건화물 운임지수 폭락으로 계선 벌크선들은 국내항만 뿐아니라 중국 상하이항을 비롯, 세계 유수항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한때 용선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지금은 실어나를 화물들이 없어 계선 선박들이 갈수록 늘어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유례없는 벌크시황의 단기간 급락으로 해운브로커들이 개점휴업인 상태이고 호황시절에 직원들을 많이 채용한 해운중개업자들은 구조조정에 애를 먹고 있다. 해운 브로커들의 하루생활도 갑작스레 불어닥친 불황 한파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실 해운브로커들은 주로 영국 파트너와 선박 용선, 매매등의 정보를 얻고 한건이라도 성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국과의 시차 관계로 한밤중 또는 다음날 새벽까지 전화나 팩스 등 통신장비를 총동원하며 일하는 것이 보통 일과였으나 요즘은 일거리가 없어 아예 저녁 6시면 칼 퇴근하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고 유수 해운중개업체 한 관계자는 쓴웃음을 지며 말했다.

해운브로커 일거리 없어 오후 6시 칼퇴근

내년 상반기까지 쓰러지는 해운중개업체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때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일컬어졌던 한·중(韓·中)간을 운항하는 카훼리업체들도 가파른 환율상승으로 인한 용선료의 급등과 승객, 화물들이 반감해 경영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

한중간을 운항하는 某카훼리사의 경우 한달 용선료가 종전엔 6억원정도였으나 지금은 8~9억원으로 크게 상승했다는 것이다. 인천항 입항료도 항만공사에서 카훼리선사에 대해 50% 할인해주고 있으나 1항차당 150만달러에 달해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길동안 보다 많은 할인 혜택을 주었으면 한다고 관계자는 강조하고 있다. 카훼리의 경우 항차수가 많다보니 할인 혜택이 경영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중 카훼리하면 금새 떠오르는 것이 보따리상이다. 소무역상인 보따리상들은 예전에는 보통 150만원이상은 벌었으나 지금은 많아야 70만원정도이고 그이하도 꽤나 된다고 한 보따리상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엔 관세청이 통관 절차마저 더욱 까다롭게 해 보따리상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부언했다.

이에 따라 카훼리선사들은 무료승선제도(FOC:Free of Charge)를 이용해 회사들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6번 승선한 승객들은 1회 무료로 승선시키는 등 한마디로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인천의 한 카훼리선사 직원들은 경기침체이후 자발적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 회사측은 배려(?) 입장에서 전자렌지를 사주는 진풍경도 보인다. 그만큼 회사 살림살이가 궁해졌다는 것이다.

한편 컨테이너 1개에 먹고사는데 연관되는 해운물류업종이 12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업종들이 지난 수년간 타 업종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으나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고소득 도선사도 수입 크게 줄어

실감나는 한 예를 들면 항만분야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업종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도선사와 예선업자들이다. 이번 금융위기 한파가 얼마가 차가운지 이들 업종에도 불황을 몰고와 연봉이 수억원에 이르는 도선사마저 선박 기항수 급감으로 수입이 크게 줄었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한다.

도선사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카훼리선사들이 한중회담에서도 지적했듯이 항차수가 많은 카훼리선사와 같은 외국적선사에게도 강제도선 의무화를 폐지해 달라는 건의다. 실제 한국적선사와 같은 자력 도선이 가능하다고 카훼리 선사측은 강조했다. 카훼리선사의 경우 한 항차당 100만원의 도선료를 지불해야 돼, 1년에 150항차 운항하는 카훼리선사의 경우 1억5천만원을 절감할 수 있고 예선료도 함께 절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입항료, 접안료(인천항의 경우 수도권 화물이 많은 관계로 화물료 할인은 없음)와 같은 항비의 경우 현재 50% 할인을 해주고 있다고 관계기관 관계자는 지적하면서 카훼리선사의 경우 호황시기에도 충분히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면서 고통분담 한다는 측면에서 일방적인 할인 요구등은 자제해 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자생력을 키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천항 발전을 위해 필요없는 규제들은 과감한 제도 개선을 통해 진정 물류하기 좋은 인천항을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으로 대 불황이 닥쳐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해운물류업계에 보탬이 되는 시책들을 적극 개발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상품을 잘 만들어 수출을 하려 해도 신용장개설이 매우 힘든 상황이라 조속한 물동량 회복기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100년만에 오는 불황이라고 혀를 차고 있다. 국토해양부 공무원들도 예년 같으면 송별회 등으로 한창 바쁠 시기인데, 점심식사외에는 약속들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동남아 정기선운항을 중단한 C&라인이나 회사경영이 어려워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 둔 업계 퇴직 임원들은 예전 같으면 포워딩업체를 차리거나 자영업자로 나서기도 하지만 요즘과 같은 불황에는 사업에 뛰어들 자신도 없어 지인이 운영하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수출입 물량이 크게 줄어 해운분야 타 업종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제해운대리점사들의 경우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의 급등으로 큰 위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협회 한 관계자는 “물량이 11월이후 급감하고 있으나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의 급상승으로 물량 부족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고 있어 달러화 기준 수수료로 영위하고 있는 대리점사들은 경영 수익면에서 타 업종 회사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종태 사장
김종태 인천항만공사 사장은 “인천항을 이용하는 선사나 하주 모두에게 현 금융위기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인천항만공사의 대대적 구조조정 역시 경영합리화와 대 고객서비스를 보다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강조했다.

포워딩업체들의 경우 생존을 위한 출혈경쟁에 나서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측 관계자는 올해 150여개사가 등록취소되는 등 회사가 없어지거나 개점휴업하는 포워더들이 크게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포워더 업종은 정부의 과보호하에 있는 업종이 아닌 이미 지난 ’87년에 개방이 되면서 자생력을 갖춘 업체들이 많아 어떻게 보면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해 이 위기만 넘기면 경쟁력을 갖고 사업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관련 협회 한 관계자는 전했다.

국적 벌크선사의 경우 호황 끝자락에 진출한 선사들은 생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어떻게든 버틸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쯤 가면 해운물류업계 재편 향배의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정창훈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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