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8 18:21

항운노무체계 100년만에 바뀌나

항운노조 상용화 법안이 28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통과됨에따라 거의 100년만에 전통적 항운노무 공급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현재의 노무 체계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물류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 올 초부터 강하게 상용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항만노조는 이에 반발, 경고 파업에 이어 총 파업까지 논의하고 있어 향후 사태 추이에 따라 수출입 업무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 항운노조 상용화란 = 현재 전국 주요 항만에서 현장 정리나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하역인력은 총 1만1천명선으로, 이들은 모두 각 항만별 항운노조에 가입된 상태다.

이들을 하역업체가 고용하기 위해서는 항운노조측에 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건마다 수시로 요청해야한다.

항운노조가 조합원에 가입해야만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클로즈드숍(closed shop)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만큼 사실상 항운노조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인력공급 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법률상으로는 복수 항운노조 설립도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존 노조의 막강한 영향력 등으로 지난 1897년 청진항에서 노조가 결성된 이후 100년간 이 같은 노무 공급체계가 유지돼왔다.

이처럼 현재 철저히 항운노조에 귀속된 일용직 인력을 노.사.정 합의를 통해 항만운송사업자가 정규직으로 고용토록한다는 것이 바로 '항운노무의 상용화'다.


◆ 왜 필요한가 = 정부와 업계가 지적하는 항운노조 독점 공급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성이다.

예를 들어 실제 하역에 필요한 인력은 10명이지만 항운노조측이 20명을 한 팀으로 인력을 배정, 공급할 경우 업체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의 임금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영국과 대만, 일본 등 우리나라에 앞서 상용화를 도입한 나라에서 평균적으로 운영 인력이 50% 정도 줄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부산과 인천만 상용화를 도입해도 30%의 인력 감축과 연간 약 5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클로즈드숍의 폐쇄적 구조에 막강한 권한이 더해짐에따라 각종 노무 관련 비리가 관행처럼 뿌리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검찰은 노조 가입과 승진 등을 청탁받고 금품을 수수한 부산과 울산 항운노조 간부와 간부 인척들을 대거 구속, 사실상 상용화 여론에 힘을 실어줬다.


◆ 항운 노조 "확실한 고용보장 해달라" = 그러나 항운 노조측은 공급 체계 변화에 따른 고용 불안을 걱정하고 있다.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는 노사합의로 어떤 항만에서 상용화를 도입할 경우, 하역업체는 그 시점의 항운노조 전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정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부두임대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벌칙'을 부여한다는 내용까지 추가됐다.

또 정부는 노무공급 체계개편에 따른 대량 퇴직사태 발생시 정부가 퇴직금을 융자해주는 등의 지원책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항운 노조는 이 같은 법률적 장치의 실효성이나 지속성 등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명서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항운노련) 사무처장은 "아무리 지금 고용보장 등을 법률에 명시한다해도 정권이 바뀌면 어찌될 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또 하역업체가 도산할 경우 소속 항운인력들에 대한 대책도 전혀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 총 파업 가능성은 = 항운노련은 지난 25일 대표회의의 결정에 따라 이날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인천과 울산, 평택 등에서 경고 파업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 자동차 선적이 제 때 이뤄지지 않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항운노련은 29일까지 각 지역별 찬반투표를 거쳐 오는 30일 대표자 회의를 통해 총 파업을 포함한 향후 대응방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주 사무처장은 "현재 노조원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로, 찬반 투표시 파업 찬성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중이 큰 부산과 광양 등 주요 항만이 경고 파업에 불참하는 등 현재 노조내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실제 총 파업을 단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실상 근거가 희박한 독점권 유지를 주장하며 수출입 업무에 지장을 줄 경우 시민들의 따가운 질책이 예상되는데다, 자칫 항운노조 비리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하역 작업의 기계화로 인해 파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 파업을 가정한 대체인력 가용과 대체항만 우회 등의 대응책을 점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이번에 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당장 상용화 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상용화 도입시 근로자들이 어떤 지원을 받게되는 지를 명시한 것"이라며 "상용화는 의무가 아니므로 노사가 합의하지 않을 경우 도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계속 노조측에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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