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8 17:39

항운노조 상용화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세부법령에 대한 노·사·정 합의 이뤄져야


항만인력공급체제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이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정기국회에는 항만노무공급체제개편과 관련해 정부법안을 비롯한 4개의 법안이 제출됐으며, 국회는 정부법안을 기초로 항만근로자의 신분 및 근로조건 보장을 명시하는 등 일부 수정해 법안을 처리했다.

항만분야의 전문가들은 항운노조가 독점적으로 인력을 공급하는 현행 항만노무공급체제는 과거 인력중심의 하역체제하에서 형성된 것으로, 화물이 규격화되고 하역작업이 기계화 현대화돼가는 현대 항만물류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항만분야의 노사정은 이러한 지적에 대응하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현행 체제를 하역업체가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하역작업에 투입하는 상용화 체제로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왔으나 상호 입장차이로 큰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 3월 항운노조의 채용비리 문제가 언론 등에 부각되고, 현행 체제에 대한 개혁요구가 높아지면서 개편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됐으며, 다양한 협의 끝에 지난 5월 6일 노사정은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이러한 노사정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박승환 의원(한나라당)을 통해 특별법안을 제출했으나, 항운노조의 반발 등으로 심사가 보류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정기국회에 박승환 의원안을 기초로 노조의 의견을 반영한 정부법안을 제출했으며, 항운노조측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해 김재원 의원(한나라당)과 배일도 의원(한나라당)을 통해서 법안을 제출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는 공청회 등을 통해 관련 당사자의 입장을 청취하고 4개 법안을 심의한 결과, 정부법안을 바탕으로 근로조건 보장방안을 구체화하는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하여 대안을 마련했고,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주요내용은 ▲현행 항만노무공급체제를 항만운송사업자가 항운노조원을 직접 상시 고용하는 상용화 체제로 개편하되 노사정 합의에 의해 실시하며, 부산항과 인천항에 우선 적용하고 ▲상용화 되는 항운노조원의 정년, 임금 수준 등 기존 근로조건은 보장되며,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항만운송사업자는 항만시설임대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체제 개편으로 항운노조원이 일시 퇴직하게 돼 부족한 퇴직금을 정부에서 융자할 수 있도록 하고, 개편시 희망퇴직자에 대해 생계지원금을 재정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존 정부법안에서 수정된 내용은 상용화된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장과 관련된 규정이다. 당초 정부법안 제5조는 상용화된 노조원의 권익보호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상용화되기 전의 정년,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을 보장한다고 규정해 구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항만운송사업자와의 항만시설임대계약은 해지할 수 있도록 해 근로조건 보장규정의 실효성을 강화했다.

이 법의 제정 이후, 노사정은 상용화 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세부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항운노조원을 하역업체로 배분하는 방식, 희망퇴직자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의 지급대상·기준 등에 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정부는 그 결과를 반영하여 하위법령을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해양수산부는 “이 법안이 개편을 강제하는 법안이 아니라 개편을 지원하는 법안이므로 법제정으로 바로 체제가 개편되는 것이 아니며, 개편을 위한 세부협상의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라며 “체제개편은 노·사·정간에 협의를 통하여 추진할 것이며, 세부협상과정에서 개별 항운노조원의 권익보호 및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임을 밝혔다.

항운노조 상용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개항 후 거의 100년만에 항운노무 공급체계를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항만노무 상용화 의미는 = 현재 전국 주요 항만에서 현장 정리나 단순 노무를 제공하는 하역 인력은 총 1만1천명선으로, 하역업체는 항만별 항운노조에 가입된 인력만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하역업체가 하역에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항운노조측에 작업 인력을 건마다 수시로 요청해야 한다.

더구나 항운노조는 조합원에게만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클로즈드숍(closed shop) 으로 운영되고 있어 사실상 노조가 독점적 지위의 인력공급 회사 역할을 한다. 정부와 업계는 현재의 이 같은 노무 체계로는 치열해지는 세계 물류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올 초부터 강하게 상용화 입법을 추진, 결실을 보았다. 정부와 업계가 지적하는 항운노조 독점 공급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효율성이다.

예를 들어 실제 하역에 필요한 인력은 10명이지만 항운노조측이 20명을 한 팀으로 인력을 배정, 공급하면 업체 입장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의 임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특별법상 상용화 ‘우선 추진’ 대상인 부산과 인천만 상용화를 도입해도 30%의 인력 감축과 연간 약 5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영국과 대만, 일본 등 우리나라에 앞서 상용화를 도입한 나라에서도 평균적으로 운영 인력이 50% 정도 축소됐다.



◇향후 과제는 = 그러나 이번 특별법 도입이 당장 부산과 인천항 노무의 상용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노·사·정 합의’를 통한 상용화 도입을 명기하고 있는 만큼 향후 논의 과정에서 노조가 협의를 거부하거나 세부적 법령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용화는 현실화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해양부 관계자는 “이제 각 항만별로 노조와 하역업체, 정부가 희망퇴직자에 대한 지원의 대상, 규모 등을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번 특별법으로 보장된 지원 내용이 정부가 배려할 수 있는 최선이고, 이 법이 2010년까지의 한시법인 만큼 노조측도 곧 협상에 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별법에 따르면 합의를 통해 어떤 항만에서 상용화를 도입할 경우, 하역업체는 그 시점의 항운노조 전원의 고용을 승계하고 정년(60세)을 보장해야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에는 부두임대 계약을 취소하는 등의 ‘벌칙’이 부여된다.

또 정부는 노무공급 체계개편에 따른 대량 퇴직사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퇴직금을 융자해주는 등의 지원책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난달 27일 인천 등에서 부분 파업을 한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항운노련)은 “이번 특별법이 졸속으로 처리됐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김기래 항운노련 노사대책국장은 “정부가 말로만 노사정 합의를 강조하면서 법안에는 정부와 업체의 주장만 포함됐다”며 “기본적으로 항만노무 인력을 무조건 줄이는 게 능사인 지 생각해야하며, 상용화될 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포함하고도 현재의 임금수준이 유지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노사정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파업은 항만 물동량이 우회항로 등을 통해 빠져나갈 위험 이 있는 만큼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보면서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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