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20 10:32

선사·항만 ISPS Code 미이행시 화물운송에 심각한 영향 초래

각국 정부 당국이나 선사들의 이행준비 미흡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ISPS Code(선박 및 항만시설 보안규정)와 미국 해운보안법(MTSA 2002)을 놓고 최근 전문가들은 물론 언론매체에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상당 수의 선사와 항만들이 보안규정을 이행하지 않아 화물운송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우려가 흘러나오는 것은 두 법률의 시행이 이제 초읽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선박과 항만시설에 대한 보안 규정의 이행속도가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KMI에 따르면 실제 최근 자료를 종합해 보면 선사와 항만 가운데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곳은 50%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미 9.11 참사이후 국제해사기구가 제정한 ISPS Code와 미국 해운보안법에 의하면 선사와 항만은 테러공격이나 불순분자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보안평가를 실시한 다음 보안계획서를 수립, 시행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필요한 보안시설과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 문제는 이같은 보안규제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사실상 선박운항이 금지돼 화물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특히 미국으로 화물을 수출하는 전세계 2,500개 항만은 미국 연안경비대 보안조사팀의 보안평가를 받게 돼 있어 그 파급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ISPS Code의 이행여부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 해운보안법의 시행도 부담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두 법률은 각각 오는 7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시행된다. 따라서 선사는 물론 항만당국, 각국 정부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선박과 항만시설에 대해 테러를 방지할 수 있는 보안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하고 적절한 보안시설과 장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제도의 이행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선박의 경우 초기 이행비용이 척당 2만5천달러정도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항만은 크기에 따라 다소 사정이 다르지만 최소한 50만달러 안팎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추산에는 앞으로 관련 직원에 대한 보안교육과 훈련, 장비의 유지, 보수 등에 관한 운영비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이들 비용까지 합하면 전 세계적으로 ISPS Code를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초기비용은 20억달러, 그 이후의 유지비용은 연간 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이 두 법률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야기되는 부담이 이 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선박의 운항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 운항이 허용돼도 다른 나라 항만에서 억류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때 선사와 항만당국은 하주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선·체화 등에 따른 손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이같은 불똥은 그 선박이 출항한 항만까지 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해당국가의 보안 신뢰도가 저하되고 화물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마저 있다는 해석이다.

대상 선박중 2.6%만 심사 통과

협약 등을 이행하지 않는데 따른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도 각국의 정부당국이나 선사들의 이행준비가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IMO가 지난 3월 50개 회원국과 10개 비정부기구(NGOs)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응답한 국가 가운데 14개국의 180척만이 협약에서 정한 기준을 이행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ISPS Code에 따라 선박보안증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50개국 선박 6,800척 가운데 단지 2.6%만이 선박보안심사를 통과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ISPS Code등 해사보안협약의 제정작업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 연안경비대는 지난 1월 자국선박의 50%이상과 항만 및 터미널의 상당수가 작년 12월 말까지로 돼 있는 보안계획서 제출시한을 어겼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 등록된 선박 1만여척 가운데 5,200척과 5천개의 항만시설 중 1,100개가 연안경비대에 보안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경우도 지난 3월 23일 현재 보안계획서를 제출한 선박은 60% 가량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은 기간내에 보안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선사에 대해 경고장을 발송한데 이어 다음 달 31일까지 협약 기준을 이행하지 않는 선사에 대해서는 명단을 공개하는 등 압력을 가할 방침이다.

아시아지역의 항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P&O Ports사의 아시아 운영본부를 맡고 있는 브라이언 스미스 사장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해사보안회의에서 싱가포르나 홍콩과 같은 대형 항만들은 데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그 외 대다수 항만들은 7월로 예정된 ISPS Code의 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스미스 사장은 이같이 아시아 항만들이 보안기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 지역 국가들이 ISPS Code의 내용과 그 파급효과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허비한데 있다”고 비판하고 “아시아 항만들이 비록 시설 면에서는 협약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안평가는 상당히 지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이같은 경고가 나온 뒤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5개 항만만이 7월 1일까지 보안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ISPS Code 위기’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예멘에서 발생한 프랑스 유조선 림버그호 폭발사건이나 최근 이스라엘 아슈도드항이나 이라크의 바스라 항만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사건에 비추어 볼 때 항만이 더 이상 테러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에 발생한 테러공격은 IMO와 미국의 해사보안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IMO는 지난 1월 사무총장의 명의로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회원국은 물론 국제선급연합회(IACS), 국제항만협회(IAPH), 발틱국제해운거래소(BIMCO), 국제독립선주협회(Intertanko) 등 선박 및 항만보안과 관계가 깊은 국제기구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IMO는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 참사가 발생한 직후 선박의 운항과 관련해 일어날 수 있는 테러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해사보안협약 제정 등 새로운 보안제도 도입에 긴급 착수했다. 지난 2002년말에 만들어진 ISPS Code는 이같은 IMO 노력의 결정판이라는 것. 이 협약은 선박과 항만의 보안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여러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모든 선박은 해당국가에서 승인한 선박보안계획서를 비치하고 운항해야 한다. 이 계획서에는 ISPS Code에 따라 단계별 보안조치 사항과 선박보안 담당관의 임명과 임무, 선원의 보안훈련 등에 관한 절차를 자세하게 명시해야 한다. 보안경보장치나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설치하고 선박보안증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것도 이 계획에 따라 선사가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다.

항만시설도 선박과 유사한 절차에 따라 보안계획서를 수립·시행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단계별 보안조치사항이 우선적으로 포함돼야 하고 항만시설의 안전한 운영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무기류 등의 반입통제는 물론 인원보안에 관한 사항, 담장의 설치 및 시설의 보안확보, 선박과 항만시설 사이의 인터페이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보안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조치 등도 담겨있어야 한다.

미국의 해운보안법 역시 기본적인 ISPS Code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보다 확실하게 담보한다는 차원에서 미국에 화물을 수출하는 외국항만, 그리고 자국 영토와 자국민의 인명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외국항만에 대해 보안평가를 하도록 한 점이 가장 본질적인 차이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이같은 선박과 항만시설의 보안기준 이행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우려는 크게 두가지 나눌 수 있다는 것. 제 시간내에 이러한 요건을 모든 선박과 항만시설이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선사나 항만에 대해 어떠한 규제조치가 뒤따르느냐 하는 점이다.

‘시행 1년간 연기하자’주장도

우선 첫번째 것과 관련해 보면 현실적으로 시간이 촉박하고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전세계 영세선사와 중소 항만을 중심으로 대량 미이행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특히 미주 및 구주항로에 취항하는 선박과 이지역으로 운항하는 선박이 드나드는 대형항만을 제외한 아프리카, 중남미 항만, 동남아시아 소형항만의 경우 국제보안기준의 이행률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지적이다. 오는 7월 1일 예정돼 있는 ISPS Code의 시행을 1년동안 연기하자는 주장도 이같은 배경에서 제기되고 있다.

둘째, ISPS Code나 미국 해운보안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데 따른 규제조치는 일반적인 예측보다 매우 강도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협약인 ISPS Code에서는 선박이 보안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항만국 통제 등으로 단속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협약에서 상정하고 있는 항만국 통제는 기존의 제도와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입항 선박이 갖고 있는 증서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선박이 과거 기항했던 항만에 대한 기록도 점검대상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바꾸어 말하면 마지막으로 기항했던 10개 항만 가운데 1개 항만이라도 보안기준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 해당 선박의 입항 자체가 금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이와관련 미국 연안경비대 대변인 졸리 쉬플릿은 “7월부터 미국에 처음으로 입항하는 선박은 모두 승선 보안점검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점검지역이 해상이 될 지 아니면 부두가 될지는 당해 선박이 입항 96시간전에 보고하는 사전입항통지와 그 선박의 정보에 따라 결정한다고 밝혔다.

미국 뿐만아니라 유럽연합, 호주, 아시아 일부 국가들도 강경한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사전에 승인받은 선박보안증서가 없는 경우 자국선박은 물론 다른나라의 선박도 운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강력한 단속을 펼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협약 기준을 이행하지 않는 선박에 대한 입항금지나 출항금지조치 등 엄격한 처벌이 당분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같이 새로운 보안제도가 시행되는 데 따라 자칫 잘못하는 경우 선사들이 상당한 금전적인 부담을 지게 되는 점이다. ISPS Code 등을 이행하는 데 따른 비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보안점검과 관련해 적지 않은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제기준에 적합한 보안증서를 갖추지 못한 경우에 화물을 운송하지 못하게 되므로 이에 대한 운임수입손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또 입항금지를 당하거나 특정국 항만에서 출항금지처분을 받는 등 억류되는 경우 체선·체화에 따른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2천~3천TEU급 컨테이너선은 1일 용선료가 2만~3만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보안기준 미이행으로 5일동안 억류당하는 경우 용선료 부문에서만 10만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게 된다. 하역이 금지되는 데 따른 하주 손해배상과 벌금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선급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박의 경우 ISPS Code 이행률은 15% 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외국에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데드라인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 선사가 할일은 3가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시간내에 국제보안기준을 이행하는 것, 이 기준을 이행하지 않은 항만에는 절대 기항하지 않는 것, 그리고 보안점검으로 인한 화물운송 지연 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고 KMI측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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