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6-24 10:05
경제관련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디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은 ‘LG주간경제’에서 이와 같이 밝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반에 한 차례 있었던 디플레이션 논란이 최근에는 미국의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그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도 최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 내외, 심지어 독일은 1% 이하로 떨어져 있어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연구위원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인플레이션에 시달려 온 우리경제에서 디플레이션은 낯선 개념”이라며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디플레는 대공황기를 비롯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그 폐해를 실감하게 된 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통화를 푼다든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이른바 리플레이션(Reflation) 정책을 통해 디플레를 막아왔다는 것.
최근 디플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이유도 정부의 정책 수단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돈을 찍어 뿌리기 시작하면 물가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IMF도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등은 디플레 위험이 높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위험이 낮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오연구원은 또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아직 높지는 않더라도 최근 추세를 보면 분명 과거 인플레 시대와는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경쟁으로 인한 물가 하락 압력이 그것인데, 1990년대 후반 신경제에 대한 환상은 선진 기업들의 엄청난 과잉투자로 귀결됐다. 세계의 제조업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의 저렴한 제품들이 각국으로 수출되면서 현지에서의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가 다소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미국의 제조업 가동률은 70%대 중반에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공급과잉과 경쟁 심화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제조업 분야는 디플레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당분간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오연구원의 설명.
그린스펀은 미국의 디플레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만약 현실화된다면 그 영향은 매우 치명적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당분간 디플레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오연구원은 “정부는 세계 경제가 디플레 압력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어 우리 경제가 디플레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거시경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제조업의 비중이 높고 비교적 단순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기업은 가격 하락 압력을 흡수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과 신제품 개발, 기술혁신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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