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이 길목이 막히자 중동산 원유 수입에 비상이 걸렸고, 국제 유가는 가파르게 치솟으며 국내 주유소의 기름값은 물론 산업 전반의 생산 비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특정 해역의 지정학적 위기가 곧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과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현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해상 수송력 확보가 곧 국가 안보이자 경제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에서 해운은 단순한 물류 수단을 넘어 국가 경제적 이익과 안보의 핵심 기반이며, 전시·사변 등 비상사태 시에도 국민경제에 긴요한 물자와 군수물자를 차질 없이 수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일은 국가의 기본 책무에 해당한다.
이러한 책무를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비상사태 등에 대비하기 위한 해운 및 항만 기능 유지에 관한 법률’(이하 ‘해운항만기능유지법’)이다. 이 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및 해운·항만 기능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도 해운·항만 기능을 유지해 국민생활의 안정과 국가안전보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1조). 특히 국가는 비상사태 등에 대비해 국가필수선박의 지정 등 해운·항만 기능 유지에 필요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그 운영과 목표 지정 척수의 달성에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노력할 책무를 부담한다(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3조).
그런데 필자는 현행 법률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우리 경제의 규모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가필수선박 선대의 규모다. 해양수산부장관은 비상사태 등에 대비해 국제선박이나 공공기관 소유 선박 등을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5조 제1항), 지정은 비상사태 등에 대비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5조 제2항).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서 보듯 전략물자의 수송로가 한순간에 막히고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현실에서, 최소한의 기준에 머무른 현재의 선대 규모만으로 과연 에너지 안보와 수출입 물류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률에서 해양수산부장관에게 목표 지정 척수를 달성하도록 노력하라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5조 제2항), 이제는 그 목표 자체를 상향하고 선대를 실질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법령 개정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상금 문제 해결돼야
다만, 국가필수선박 선대의 규모를 확대할 시 손실보상금의 현실화 문제가 필수적으로 해결되어야만 한다.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되면 선박소유자는 비상시 동원에 대비해 외국인 선원의 승선 제한, 자유로운 용선·배선의 제약 등 각종 의무를 부담하고, 국가는 이로 인한 손실을 보상한다. 문제는 현행 법령의 보상 체계상 한국인 선원 승선에 따른 임금 차액과 항만시설사용료 면제 등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해운항만기능유지법 시행령 제11조, 제16조 등). 정작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처럼 비상사태가 현실화되었을 때 선사가 떠안는 가장 큰 부담은 위험 해역 운항에 따른 전쟁위험할증보험료의 폭증, 안전·보안 비용의 증가, 운항 제약에 따른 기회비용인데, 평시를 기준으로 설계된 보상 항목이 비상시의 실제 손해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적인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법령 개정 시 선원 임금 격차에 더해 전쟁위험할증보험료, 운항 제약에 따른 기회비용, 비상 대비 추가 안전·보안 비용을 보상 항목으로 시행령에 명시적으로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호르무즈·홍해 등 전쟁위험구역 운항 시 급증하는 보험료를 실비에 가깝게 보전하는 조항을 신설해 위기가 현실화되었을 때 즉시 작동하는 보상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사견이다.
마침 정부는 10년 단위의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 제도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고(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4조 제1항), 기본계획에는 제도 운영과 참여 사업자에 대한 지원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4조 제2항 제3호). 이번 기본계획 수립과 법령 개정 과정에서 국가필수선박 선대의 목표척수 상향과 그 전제가 되는 손실보상금의 현실화 방안이 실질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든든한 해상 수송력은 위기가 닥친 뒤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시에 충분한 선대와 합리적인 보상 체계를 갖추어 둘 때 비로소 확보되는 것이다. 국가의 책무를 명문화한 법률의 입법취지(해운항만기능유지법 제3조)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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