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조선사인 HD현대그룹이 중국 조선과 벌이고 있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전용 플랫폼 구축에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HD한국조선해양 김형관 사장은 지난 11일 서울 당주동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한국선급(KR) 창립 66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국내 노령 인구 증가와 고학력자 증가로 단순 노무 인력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형관 사장은 이제 대한민국은 지방 제조업체에서 근무할 단순 노무직은 구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한 해 100만명이 태어났던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이미 은퇴했고 80만명 이상이 태어난 2차 베이비붐세대(1964~1974년생)는 은퇴 연령에 진입하면서 생산 인력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1980년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베이비붐세대와 MZ세대의 중간인 이들 ‘낀 세대’는 대졸자가 가장 많은 세대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서울 경기 인천의 인구 비중이 2020년대 들어 50%를 넘어서면서 지방에선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인건비 상승도 제조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김 사장은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단순 노무 인력의 인건비는 63% 인상됐다고 전하면서 “이대로 가면 한국 조선산업은 5년 안에 큰 문제가 생기고 10년 안에 소멸될 걸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 조선소가 일본에서 LNG선 기술을 배운 게 30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올라선 반면 일본은 10년 전부터 LNG선을 못 짓고 있다”며 “이런 흐름으로 보면 한국 조선산업도 LNG선을 못 짓게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중국 수주량 한국 4배 앞서
반면 중국 조선의 성장세는 매우 가파르다. 이제 초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김 사장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1000만CGT를 넘게 수주하면서 대형 조선소 중심으로 건조능력을 모두 채웠지만 미국과의 경제 전쟁 때문에 줄어든 실적을 낸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었다”며 “중국은 지지난해엔 우리보다 5배 많은 양을 수주했고 올해도 4배 더 많이 수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의 14차, 15차(5개년 계획)에 이르는 전폭적인 조선산업 지원은 우리나라엔 없던 것”이라며 “이제 중국 조선은 피지컬 AI(로봇)까지 주도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이 같은 한국 조선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게 디지털과 AI다. 김 사장은 설계와 생산을 하나로 통합한 미래형 조선소를 구축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사장 주도로 2022년 4월 HD현대에 설치된 자동화혁신센터가 디지털 생산(DM)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화혁신센터는 발족 후 지난 4년 동안 지멘스의 3D 기반 설계 툴인 NX캐드와 디지털 생산 솔루션인 테크노메틱스를 활용한 조선소 전용 플랫폼을 개발해 선박 설계와 생산 인도 사후관리 등의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그동안 LLM(대규모 언어모델)이나 VLM(시각·언어모델) 같은 AI가 선박 설계 도면을 인식하지 못해 조선소의 설계와 생산 구조가 분리돼 있었지만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모든 정보를 하나로 묶는 단일 정보 소스(Single Source of Truth) 구현이 가능해졌다고 김 사장은 평가했다.
그는 “한국 조선이 패권산업이고 HD현대가 패권기업이기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방식으로 차세대 조선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며 “지멘스와 손잡고 플랫폼을 구축하면 구글이나 엔비디아 팔란티어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신기술을 조선업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이 같은 AI·디지털 전환 노력에 힘입어 작업시간을 60% 이상 단축하고 생산 효율을 2배 이상 높였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한국 조선을 지속 발전 가능한 산업으로 만들 수 있는 2가지 축으로 소프트웨어 정의 선박(SDS, Software Defined Ship)과 미래형 조선소 구축을 제시했다. 그는 “스마트십을 넘어 배를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선박을 독자 기술화해서 중국과 차별화하고 모든 제작생산 환경을 플랫폼화해서 인구 감소와 인력 변화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선급, 실시간 설계인증 AI 개발 추진
이어 김대헌 한국선급 연구부사장은 자사의 AI 전환 계획과 기술 혁신 방향을 상세히 소개해 참석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김대헌 부사장은 KR이 해사 분야의 AI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4가지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AI 전담 조직 구성 ▲체계적 전환 로드맵 ▲AI 클라우드 및 GPU 도입 ▲구체적 목표 수립 등이다.
KR 서울 지사에 AI융합기술센터를 갖췄다고 대응 전략을 전한 김 부사장은 “빅테크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강력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023년 디지털 워크플레이스 구축, 2024년 AI 인프라 구축, 지난해 클라우드 전환을 완벽하게 완료했다”며 “6월9일엔 KR 이영석 회장과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조원우 대표가 KR 조직 전반의 AI 전환을 빠르게 가속화하는 내용의 두 번째 MOU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KR의 차세대 선급 AI에이전트(Rule & Regulations AI Agent)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조선소의 설계와 선급의 승인 시스템을 연동해 조선소가 선박 모델을 설계하는 순간 AI에이전트가 KR 규정에 따라 실시간으로 검토해 승인 여부를 알려주는 모델이다. AI가 구조를 해석해 규정 적합성을 곧바로 안내하기 때문에 설계자는 무엇을 만들지만 집중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KR은 선박 설계 솔루션인 앤디(ANDDE)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 솔루션은 설계 과정의 복잡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AI에게 맡겨 설계자는 차별적이고 창의적인 의사 결정과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지난해 개발을 마친 마리노트(MariNote) AI는 선박 제원과 선박 위치 정보, 항만국통제(PSC) 이력 분석을 비롯해 해사법률용어 표준화 등의 업무를 자동화한 플랫폼이다.
김대헌 부사장은 “싱가포르 국방과학기술청(DSTA)과 AI 기반 자율 운항 기술을 검사하는 차세대 검증·확인(V&V) 프레임워크를 공동 개발하는 등 해운해사 분야의 AI 전환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라며 “휴머노이드 로봇이 선박이나 해양 현장에 투입될 때의 안전과 인증 체계를 새롭게 설계하고 해양 데이터 센터 구축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유현경 부사장은 2028년에 13억개의 AI에이전트가 난립할거란 통계를 전하면서 “AI로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건가 AI를 받아들여서 일하는 우리의 업무 문화가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엔 이수호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 이영석 KR 회장,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 등 정부와 국내외 해운·조선·기자재업계 관계자 등 200명이 참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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