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9 09:10

‘홍해사태·얼라이언스 재편’ 노조·시민단체, “HMM 매각 중대 변수”

서울·부산서 노조 주최 HMM 민영화 토론회 열려


하림그룹이 국적 선사인 HMM 매각 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파열음이 계속 나오고 있다.

홍해 사태로 물류난이 가중되고 하파크로이트가 디얼라이언스 탈퇴를 선언하는 등 해운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HMM 노동조합을 비롯해 학계, 시민단체에서 국내 대표 원양선사 매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매각자 측인 정책금융기관과 하림 간 1차 협상이 2월6일로 미뤄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1일과 18일 HMM 양대(육상·선원) 노동조합 주도로 부산과 서울에서 두 차례에 걸쳐 토론회가 열렸다. 노조 측은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을 대표하는 데다 국민 세금이 투입된 회사의 매각에 범국민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행사 개최 이유를 밝혔다.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차 토론회엔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소장, 박인호 부산항발전협의회 대표, HMM·팬오션 소액주주 대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차 토론회엔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장,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 정일환 영원NCS 무역물류컨설팅 대표, 이용백 전 HMM 대외협력실장이 각각 참석했다.

두 번의 토론은 △HMM 매각 관련 우려와 문제점 △하림의 유상증자와 인수금융의 문제점 △HMM의 올바른 매각을 위한 대책 방안 등 3가지 의제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HMM의 바람직한 민영화를 위해 매각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 하림의 인수 자금 조달 계획이 불투명하다는 우려도 다시 제기됐다.

다만 이달 들어 시장이 불안정해진 점은 새롭게 등장한 변수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힘입어 컨테이너 운임이 치솟으면서 HMM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더욱이 HMM은 팬데믹 시기 발주한 신조선을 잇달아 도입할 예정으로, 높은 원가 경쟁력을 지닌 선박 확보로 수익성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일환 영원NCS 대표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HMM의 수익성이 더 악화되기 전에 매각하려고 입찰을 진행했을 것”이라면서 “공교롭게도 운임이 다시 오른 만큼 거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림그룹이 HMM을 인수하게 되면 기대한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은 대신 선대 다양성 확보가 어려워질 거란 지적도 나왔다. 전정근 선원노조 위원장은 “HMM은 미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벌크선 55척을 확장하겠다고 했는데 벌크선사인 팬오션에 인수되면 선단이 중복되는 문제에 직면한다”면서 “수익성 악화, 경쟁력 약화 방지 차원에서 HMM 벌크선단 투자를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두 회사 결합 이후 벌크선 사업을 한 회사로 몰아주게 되면 공공재 역할을 수행하는 해운산업 내에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HMM이 벌크선 사업 포기로 사업 다각화에 차질을 빚고 경쟁력 약화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HMM과 함께 전략적 제휴그룹인 디얼라이언스를 결성하고 있는 독일 선사 하파크로이트가 운항동맹에서 탈퇴하기로 한 것도 HMM 매각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로 활용됐다. 하파크로이트는 내년 2월부터 세계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손잡고 ‘제미니코오퍼레이션’을 결성할 계획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선복량 기준 세계 5위인 하파크로이트가 동맹에서 빠져 나가면 디얼라이언스엔 6위 ONE(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과 8위 HMM, 9위 양밍해운만 남는다.

HMM 노조는 하파크로이트의 결정으로 HMM이 글로벌 선사들 사이에서 동맹 재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본력이 불확실한 하림 측에 매각되면 선사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부 구교훈 교수도 “수출입 화주들 또한 과거 HMM과 향후 인수될 HMM을 다르게 볼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곧 국적선 적취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거들었다.

 
▲1월11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HMM 매각에 대한 1차 대국민 검증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참여자 외에도 소액주주, 시민단체 등 150여명이 모였다.

 
”인수자금 조달 방안 입증이 우선”

경제 관련 시민단체는 이번 매각이 불투명하게 흘러가면서 주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오인 경실련 국장은 “일반 주주에게까지 피해를 야기한다면 매각이 시장의 호재가 맞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하림이 자금조달 계획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차 토론에서 강융모 팬오션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팬오션을 담보로 HMM을 무리하게 인수하려 한다”면서 대규모 유상증자에 불안감을 토로한 바 있다.

다만 민영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권오인 국장은 “유의미한 매각, 비전 있는 민영화가 돼야 한다”면서 “각계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매각 테이블을 제대로 꾸려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차 토론회 당시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소장은 “탈탄소화 대처에 따라 HMM의 경쟁력이 달라진다”며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인수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2차 토론회 자리에선 전준우 교수가 “장기 해운 불황을 앞두고 금융논리가 아닌 HMM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인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HMM 노조 또한 “지분 매각 형태로 인수 과정이 흘러간다면 자기자본 조달 능력이 있는 회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지난 16일 HMM 선원노조는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사측에 결렬을 통보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고 쟁의권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파업이 이뤄진다면 국내 해운 사상 초유의 사태다. 노조 측은 통상적인 협상 내용인 정년 연장, 통상임금 재산정 등을 요구하는 동시에 하림 매각 건을 꺼내들고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 박한솔 기자 hsol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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