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협회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사무국 임원을 공개모집한다. 해운협회 정태순 회장은 지난 1월20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차기 부회장과 상무이사를 공모 절차를 거쳐 발탁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아울러 사무국 임원에 한해 3년 임기를 마치면 1년마다 중임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9개월의 시간이 흘러 협회는 본격적인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오는 22일 열리는 회장단 회의에서 임원 공모 제도의 틀을 확정 지을 예정이다.
협회가 야심 차게 임원 공모를 선언했지만 제도 도입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우선 공모하는 임원의 범위다. 업계에선 상무급까지 공모로 인선하는 게 과연 타당하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현재 협회 사무국 내 임원 구성은 부회장 1명과 상무이사 3명이다. 이 가운데 상무이사는 협회 내 5개 팀 중 3개 팀 팀장에 보임돼 있다. 이들은 모두 직원 때부터 팀장 일을 하다 연차가 쌓인 뒤 등기임원으로 승급한 케이스다. 다른 2개 팀 수장은 직원에게 맡겨진다. 등기임원이라고 하지만 역할로만 보면 직원과 수평적인 관계인 셈이다.
그렇다보니 상무이사 수는 유동적이다. 사무국의 운영과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장인 부회장 또는 전무와 달리 등기임원임에도 맡은 역할은 실무자의 연장선에 있는 상무이사는 인원 구성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 2019년 전까지 협회 상무이사 수는 1명이었다. 과거엔 2명이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다보니 상무이사 공개모집을 두고 해운산업 일선에서 현장 실무를 보는 팀장을 업무의 연속성을 깨뜨리면서까지 외부 인사로 교체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무이사 숫자가 유동적이기에 현재처럼 3명을 그대로 유지할지 과거처럼 1~2명으로 축소할지 결정하는 것도 애매하다. 형평성 차원에서 5개 팀장을 모두 상무이사급으로 격상하고 공모 절차를 밟는 게 합당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협회 사무국의 사기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조직에서 임원은 직원들의 꿈이다. 임원을 목표로 직원들은 절차탁마하면서 전문성을 키우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임원 인선에 공모 절차를 도입한다면 사무국 직원들이 느낄 박탈감은 헤아리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임원 승진의 꿈이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버린다면 어느 누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능력을 갈고 닦으려고 할까? 부장 직급을 달자마자 상무이사 공모에 도전하려고 본연의 업무는 도외시한 채 대외 로비에만 힘쓰는 일이 늘어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임원 인선을 주관하는 임원추천위원회 구성과 공모 시기를 정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협회는 임원추천위원회를 회원사 사장들로만 구성할지 외부 인사까지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막판 조율하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건 협회의 일꾼을 뽑는다는 점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가 이뤄지고 한국해운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적임자가 누군지 최선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임추위를 구성해야 한다.
업무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모 시기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초 협회는 공모를 9월 말께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장단 회의가 22일로 일주일 미뤄지면서 공모 일정도 10월 중순 이후로 순연될 전망이다.
이를 두고 현 임원진 임기가 내년 1월 정기총회 전까지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너무 이른 시기에 공모를 하게 되면 현 임원진의 임기가 많이 남은 상태에서 업무 공백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임원 인선에 공모 방식을 채택해 온 해운조합이 차기 본부장 선임을 임기 시작 한 달 여 전에 마치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해운협회 임원 공모는 기간산업인 한국해운의 백년지대계를 그리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섣부른 임원 공모가 불러올 피해는 비단 국내 해운업계만 떠안는 게 아니다. 깊은 고민과 치열한 협의를 통해 최상의 결론을 내놓길 기대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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