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코로나19가 덮쳤을 때 모두 정기선사들은 큰 불황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예기치 않게 가수요가 일어났고 여기에 미국의 물류망이 무너지면서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가 항구에서 움직이지않자, 선박공급이 부족한 사태가 일어났다. 그 결과 작년과 금년 운임은 정상보다 5~10배 이상 높게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 HMM은 물론이고 세계 정기선사들은 모두 10조원에서 30조원에 이르는 흑자를 즐기고 있다. 이런 흑자 기조가 언제까지나 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경영의 혁신에서 발생한 흑자가 아니고 코로나19의 역설 때문에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꺽이고 미국의 물류망이 정상화되면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잡게 되고 운임은 떨어질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금리를 대폭 인상하면서 긴축으로 들어갔다. 전 세계가 같은 긴축 기조다. 긴축은 수출입화물 이동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 사이에 정기선사들은 2023년과 2024년 인도될 컨테이너선박을 엄청많이 발주했다. 각각 250만TEU이니 총 500만TEU이다. 전체 2500만TEU의 20%에 육박한다. 머스크는 더 이상 발주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체의 15% 정도의 여유분을 가지고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코로나 사태 시작전에 15% 여유분이 있었기 때문에 총 30%의 잉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크랩(폐선)을 고려해도 상당한 공급 초과다.
낙관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낙관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내년까지는 올해보다는 못하지만 약간 떨어진 운임으로 시황이 좋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이 낙관론의 근거 중의 하나는 2008년에서 2019년까지 불황을 경험한 정기선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급을 조정한다는 논리이다. 개별선사가 스스로 선박을 운항하지 않고 계선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에 선박은 많아도 투입되는 선박은 적으므로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운임과 선복부족에 놀란 화주들이 높은 운임에 장기운송계약을 3~5년 체결한 것이 있으니까 운임이 떨어져도 이 높은 운임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비관론
필자는 위 두가지에 대하여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개별선사가 자신의 선박을 운항하지 않아도 임계점이 있을 것이다. 계선을 해도 고정비용이 들어간다. 무턱대고 오랜 기간 계선을 할 수 없다. 공급을 줄여서 운임을 지지하거나 높이는 효과가 없다면 계선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계선에 따라 운임이 올라간다는 공동의 의사가 전제된다고 보아야한다. 결국 경쟁법위반의 문제가 있다.
더구나, 정기선은 공표된 운항스케쥴에 따라서 반드시 운항을 해주어야하는 것이다. 이는 항공기나 고속버스가 손님을 한사람이라도 태워서 운항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공적인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각국은 정시선을 보호하고 혜택을 준다. 감속도 마찬가지로 경쟁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환경 규제에 부응하기 위한 감속은 법률이 허용하는 한은 경쟁법 적용이 면제된다.
정기선사의 운송 의무가 최근 제대로 적용되지않았다. 미국의 서부 농산물을 싣지 않고 공선으로 동북아시아로 와서 높은 운임의 수출품을 싣고 다녔다. 미국 의회는 정기선사의 운송의무를 해운법(Shipping Act)에 명문화했고 이미 2022.6.16.부터 시행되고 있다. 운송거부를 하면 처벌하는 규정을 두게 되었다. 정기선사는 앞으로의 운항에는 강화된 미국의 경쟁법 동향을 반드시 고려해야한다.
장기운송계약은 서비스 계약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정기선사와 화주들에게 아주 유용한 것이다. 코로나19 하에서 스폿 운임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일부 정기선사들은 몇 년전에 낮게 책정된 장기운송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스폿 시장에서 화물을 싣고 높은 운임을 받았다. 미국 FMC에 대만의 모회사와 우리나라의 모회사가 이를 위반하였다고 제소가 된 상태이다. 머스크와 같은 정기선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장기운송계약을 그대로 이행해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런데 불경기가 와서 스폿의 운임이 아주 낮게 된 경우(TEU당 500달러)에 2년 전에 체결한 높은 운임(TEU당 5000달러)이 그대로 집행될 것인가? 이행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미 운임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이자 화주들은 작년에 체결한 장기운송계약을 파기하고 새롭게 낮은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하자고 한다. 화주와 신뢰관계를 잃은 정기선사들은 화주들의 요구에 운임을 낮추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약불이행이기는 하지만 화주들은 화주우위의 시장을 배경으로 소송도 불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대책
1. 운임 10% 인하 조치
필자는 이런 요소들을 감안하면 정기선시장은 금년 말부터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 정기선사들의 대규모 이익 실현은 화주로부터의 운임에 의한 것이다. 1달러의 의류를 만들어 파는 우리 소상공인은 20센트의 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물류비가 올라서 20센트마져 가져가버렸다고 하소연한다.
프랑스 정부가 운임을 인가제로 하겠다고 하자 CMA CGM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수입화물 운임을 바로 10% 내린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이미 2010년 8월 운임을 10% 내려줄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 때는 우리 원양 정기선사는 우리도 그동안 힘들었는데 더 사정이 나아지면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운임 인하는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얼라이언스와 협의할 사항이라고 했다.
이제는 힘들었던 시기의 적자를 충분히 보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많은 수익을 올렸다. CMA CGM도 얼라이언스 회원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 화주의 어려움을 돌보아주는 차원을 넘어서 자위 수단이 된다고 본다. MSC와 CMA CGM의 이런 움직임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원양 정기선사들은 미국의 경쟁법 당국과 의회의 예봉을 피해야 한다. 원래 공동행위란 허용되지않는 것인데, 정기선영업과 수출입의 안정화를 위하여 공동행위를 허용한 결과, 비록 코로나19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운임의 대폭 인상과 인플레의 유발을 가져왔다. 정기선사에게 기대했던 바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미국 내륙 물류인프라의 부족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억측을 무마하는 차원에서도 화주를 위한 제스처가 필요하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얼라이언스를 독과점이라고 보아 셔먼법상 형사처벌을 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 경쟁당국도 동일한 조치를 얼라이언스 회원사들에게 취할 수 있다고 본다.
운송인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여해서는 아니된다. 해수부, 산자부, 해운협회 및 무역협회가 모여서 경기의 등락에 따라 운임의 상한과 하한을 정해 그 수치를 넘으면 운임 10%를 삭감하고 또 증액해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경기가 급락한 경우 운송인도 화주로부터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2. 종합물류업 진출
머스크, MSC, CMA CGM은 항공산업에 진출하는 등 종합물류업으로 향해 가는 중이다. 머스크는 아예 1위정기선사의 지위를 MSC에 넘겨주었다. 이들은 앞으로의 해운정기선시장을 어둡게 보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보아야한다. 일본의 NYK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NYK로지스틱스와 NCA 항공화물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정기선에서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을 갖추려는 전략으로 보아야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이런 종합물류회사로 우리 원양 정기선사들이 나아가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아직 시동도 걸지않고 있다. 정기선 자체로 보아서도 다른 외국의 정기선사들은 우리 외항정기선사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현금보유금액도 더 많다.
그 만큼 불황대비책을 우리 보다 더 많이 쉽게 만들 수있다는 말이 된다. 공급이 초과되면 한 두개의 정기선사가 또 없어져야한다. 우리 원양 정기선사들이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을 갖추어야한다.
3. 선주사 전환
경기하강시에 우리 해운사들이 반복해서 도산을 한 이유는 BBCHP(소유권이전부 나용선)로 선박을 확보하는 방법이 일조를 했다고 본다. 우리 해상기업들은 자본없이 해운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자사선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10% 자기 자본을 투자해서 선박을 확보한 다음 10년에 걸쳐서 조금씩 원금을 갚아가면서 선박을 완전한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이다. 불경기가 찾아와서 운임수입(용선료수입)이 떨어지면 원리금을 갚지 못하여 도산을 하게 되었다.
우리 선사들은 증가된 현금보유액으로 금융부채를 가능한 많이 갚아서 부채를 적게해서 불경기가 와도 견딜 수 있도록 해야한다. 지금 이런 절차를 밟는 해운사들이 많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선박을 구입하면서 선가의 50%까지 자기자본을 투입한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 든든하다.
다음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이마바리 형태의 민간선주사를 육성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신용도가 높은 팬오션이 부산 소재의 A 선주사에게 10년 장기 정기용선으로 한 척의 배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한다. A 선주사는 부산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서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건조를 부탁한다. 선주사는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된다.
부산은행은 대출금리를 정하는데, A 선주사도 튼튼하고 무엇보다 팬오션은 신용이 좋기 때문에 대출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최저의 금리로 선가의 70%를 빌려준다. A 선주사는 선원도 고용하고 선박의 관리도 한다. 팬오션은 건조된 선박을 인도받아 운항하면서 매달 정기용선료를 꼬박 꼬박지급한다.
10년이 지나면 선박은 A 선주사에게 다시 인도된다. 이 방법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BBCHP로 인한 원리금상환의 압박을 해운사들이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경기가 와도 자신은 용선료만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선주사도 자체로 하나의 비즈니스가 된다. 300척을 부산에 육성하면 5조원 정도의 용선료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선원, 기자재, 수리 등 시너지도 상당하다. 어떻게 육성할지가 문제다. 일본은 NYK, 케이라인, MOL과 같은 우량 정기용선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기용선형 선주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당장 이런 우량정기선사와 선주사들이 없다. 창명해운, 동아탱커가 그런 역할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시도상선은 선주사로서 일본에서 맹활약 중이다. 선주사의 후보로서는 포스코, E1, GS칼텍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이 선주사를 자회사로 둔다. 1000억원짜리 선박 10척이면 1조원이 필요하지만 70%를 대출하면 되므로 3000억원이면 10척 규모의 선주사를 만들 수 있다. 자신들의 화물을 실어주는 해운사에게 정기용선을 해주면 된다.
대량화주의 해운업진출의 우려가 있을 것이다. “선주업육성에 관한 법률”에 선주사를 정의할 때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하면 된다. 그러면 해운업진출이 아예 원천봉쇄된다. 포스코와 같은 대량화주들이 선주업을 하게 되면 선화주 상생이 될 것이다. 해운협회의 회원사들이 지위에 불안을 느낀다면 선주사들은 별도의 협회를 구성하면 될 것이다.
기존의 해운사도 자본금 1조원 규모의 자회사 형태로 선주사를 만들어 선박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운영하고 있는 선박관리회사를 선주사로 전환할 수도 있다. 선박 한 척을 소유하기 위해선 척당 1000억원의 30%에 해당하는 300억원이 필요하므로 1조원이라면 30척의 선박을 소유할 수 있다. 전액 자기자본으로 30척을 소유하려면 3조원이 필요하다.
선주사는 금융비용이 없으므로 우리 정기선사(HMM)들에게 정기용선을 해줄 때 아주 낮은 용선료로 대선이 가능하게 된다. 일본이나 그리스의 경우 이런 형태의 선주업은 기존의 동업자들 사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하는 것이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장차 세계의 선주사는 풍부한 유동성으로 선주사들이 척당 전액 자기자본을 투자하여 용선료를 낮추어주는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풍부한 현금을 선주업에 투자하여 용선비용을 낮추고 결국 운임을 낮추어주는 것은 화주들에게도 좋은 것이다. 마치 컨테이너 운송이 생기면서 하역비가 줄어들어 운임이 낮아진 것과 같은 효과다.
화주로부터 얻은 막대한 이익을 화주를 위해 환원하는 방법이 된다. 막대한 수익을 얻었음에도 톤세 제도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코로나의 역설로 전 세계의 정기선사는 대단한 흑자를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규모 흑자 기조는 곧 종료될 것이다. 미국 해운법 개정으로 정기선사에 대한 경쟁법 적용이 강화되어 결항 등 인위적인 공급조절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긴축정책으로 운송수요도 감소할 것이다.
닥쳐올 불경기에 대비해 화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 정기선사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으로 선박금융 부채를 줄여야 한다. 종합물류회사로 나가서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야한다. 자회사로 선주사를 만들어 운송단가를 떨어뜨리면 곧 화주에게 이익이 되니까 선화주 상생이 된다. 선주사는 자체로서도 큰 비즈니스가 된다. 너무 낙관론에 의존하지 말고 다가올 불황에 잘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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