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한국해운의 운명이 판가름 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 심판정에서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국내외 선사 23곳을 대상으로 부당 공동행위 여부를 가리는 전원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날 회의엔 100명 이내의 인원만 참석한다. 공정위는 코로나 상황임을 고려해 인원을 평소보다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측에선 재판관 역할을 하는 9명의 위원과 검사 역할을 하는 심사관 4~5명, 피심인 측에선 해운기업 대표와 임원 변호인 참고인 등이 심판정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에서도 참고인 자격으로 전원회의를 찾는다.
전원회의는 공정위 사건에서 1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절차다. 하지만 위원 구성을 보면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명의 위원은 모두 공정위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의장 역할을 맡는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을 비롯해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 윤수현 정진욱 김성삼 상임위원, 이정희(규제개혁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최윤정(연세대 교수) 김동아(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서정(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 비상임위원 들이다.
의장과 상임위원은 모두 공정위 간부다. 비상임위원도 공정위에서 위촉한 사람들이라 관련성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이정희 최윤정 위원은 과거 공정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일반 사법체계로 보면 검찰총장이 재판장을 맡고, 검찰 간부와 검찰에서 선임한 사람이 판사가 돼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재판하고 판결을 내리는 셈이다.
경쟁만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해온 공정위 위원들이 전 세계적으로 카르텔 구성을 원칙적으로 허용받고 있는 해운산업을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낄 건 분명하다. 해운업계가 전원회의 결과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 위원은 전원회의에서 해운산업의 특성과 공동행위가 도입된 취지 등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해운업에 문외한이라고 해서 수십년간 허용돼온 적법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해 국민경제를 사지로 내모는 잘못을 용납받을 순 없는 까닭이다.
유엔은 1983년 10월 컨테이너선사들의 운임담합을 허용한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을 발효했다. 이를 근거로 유럽에선 구주운임동맹(FEFC), 미국에선 태평양항로안정화협정(TSA) 같은 운임동맹이 활동해왔다.
우리나라도 정기선협약에 가입하고자 1978년 12월 개정한 해운법에 해운사들의 공동행위를 인정하는 조항을 신설했고 이에 맞춰 선사들은 아시아역내항로 동맹을 결성해 운임협의를 벌여왔다.
이렇듯 오랜 기간 정해진 법적 테두리 내에서 진행된 합법적인 행위가 하루아침에 불법으로 둔갑한다면 어느 국민이 법을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부당행위로 지목된 122건의 부속합의를 두고 해운시장 감독기관인 해양수산부가 적법한 절차였다는 유권해석까지 내린 터라 공정위의 주장은 더욱 명분을 얻기 힘들다.
피심인에 포함된 외국선사는 공정위가 과징금 처분을 강행할 경우 부과받은 과징금을 국내 화주에게 전가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공급자 주도로 흘러가는 현재의 해운시장에서 선사들의 이 같은 계획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아가 국내항만에서 선박을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속내도 드러낸다. 누누이 거론되는 얘기지만 공정위의 해운사 제재가 국적선사를 표적으로 한 외국 경쟁당국의 보복성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코로나발 물류대란으로 지난 2년간 해상운임은 10배가량 치솟았고 부산항에 입항한 컨테이너선 숫자는 15% 이상 줄어드는 ‘코리아패싱’이 표면화됐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사상 초유의 해운업 제재가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국내 수출입기업을 더 큰 어려움에 빠뜨리고 국제시장에서 국적선사를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과연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익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게 무엇인지 공정위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