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박준영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놓고 정치권이 고민을 거듭하는 가운데 해양산업계가 해양행정 전문가 출신 장관의 임명을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외항해운기업 권익단체인 한국해운협회는 이틀 전 발표한 긴급성명서에서 “해운물류 행정전문가가 해양수산부 수장으로 신속히 임명돼 해운재건을 전담하는 정부조직이 흔들림 없이 해운산업 재건목표를 완수하고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출물류대란을 안정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박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을 촉구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무너진 해운산업의 재건을 위해 현 정부가 수립한 해운재건계획이 4년차에 접어들면서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30년 경력의 해양행정 전문가를 해운 주무부처 사령탑으로 하루속히 임명해 남은 과업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게 해운업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해수부는 지난 2018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수립 이후 국내 최초의 해운산업 전담 지원기관인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내 대표 원양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토록 지원함으로써 한국해운 부흥의 토대를 다졌다.
정부 정책 지원에 힘입어 HMM은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며 10년 적자 기업의 꼬리표를 화려하게 떼어냈다. 이 선사는 지난해 4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인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을 인도받으면서 32항차 연속 만선 출항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5대 해운국 지위를 회복했다. 우리나라 지배선대는 2015년까지 세계 5위를 고수하다 한진해운 사태 여파로 보유하고 있던 선박들이 해외로 팔려나가면서 2017년 세계 7위까지 떨어졌다. 이후 정부의 해운재건 정책 추진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했고 올해 초 독일을 300만t차로 제치고 5위에 복귀했다.
해운업계는 코로나발(發) 수출물류대란도 해양행정 전문가가 해수부 수장으로 임명돼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세계 해운업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당초 예상을 뛰어넘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각국의 거리두기 정책으로 보복성 소비가 폭발한 반면 컨테이너장비와 하역인력은 부족해진 게 원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표면화된 수출물류난은 ‘현재진행형’이다. 다행히 정부와 해운업계의 신속한 대응으로 우리나라 화주들은 전 세계적인 물류난을 비교적 원활히 타개할 수 있었다. HMM은 지난해 8월 이후 미주와 유럽 러시아 베트남 등에 21척의 임시선박을 투입했다. 고려해운과 SM상선 남성해운 등 주요 국적컨테이너선사들도 앞다퉈 임시 배편을 편성해 물류 지연으로 발을 굴리던 수출입화주 지원에 나섰다.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항만물류업계도 박 장관 후보자 임명에 힘을 보탰다.
한국항만물류협회 김종성 회장과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최두영 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오랜 경험의 항만물류 행정전문가가 해양수산부의 수장으로 신속히 임명돼 항만물류산업의 극심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지난 120여년간 국가경제의 핵심이자 물류대동맥의 기종점인 항만에서 맡은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해 온 항만하역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항만물류업계와 하역노조는 수출입 화물의 99.7%를 처리하는 국가기간산업인 항만물류업이 올해 코로나19 백신접종과 경기부양책 등에 힘입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는 상황에서 반등의 토대를 다지려면 행정 전문가가 이끄는 정부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항만은 8.9% 감소한 14억9000만t의 물동량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전국 항만물동량이 감소세를 띤 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다. 2021년에도 항만 분야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전국 항만 물동량은 1% 감소한 3억8300만t에 그쳤다. 다행스러운 건 1월과 2월 1~2%의 감소세를 띠다 3월 들어 1%의 성장세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수산업계도 박 후보자 지원사격에 나섰다. 수협중앙회는 “일본의 오염수 방출로 인해 전국 수산단체들이 전국 바다에서 해상시위 활동과 규탄대회를 여는 상황에서 국가의 수산정책을 총괄하는 해양수산부 장관이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 일관된 정책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며 “업무 중심의 인사 검증을 거쳐 장관 인선이 조속히 마무리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밖에 해양수산부 공무원 노조도 이날 낸 성명서에서 “박 후보 배우자의 도자기 불법판매 논란으로 촉발된 장관 후보자 자질 문제에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한다”면서도 “어업인의 정주여건 개선 정책인 어촌뉴딜 300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대응, 안전한 수산먹거리 확보, 해운산업 재건 같은 국민건강과 해양수산 종사자의 삶의 질과 관련된 해수부 현안 해결을 위해 박 후보자가 조속히 장관에 임명돼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관료 출신의 해수부 장관 내정자는 박 후보가 처음이다. 정치권 출신인 김영춘 장관이 2017년부터 1년10개월 동안 해수부를 이끈 뒤 학자 출신의 문성혁 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아 2년 이상 근무 중이다. 1992년 공직에 입문한 박준영 후보자는 지난 30년 동안 해수부 요직을 두루 거친 해양행정 전문가로, 김영춘 장관 때 해수부 기조실장, 문성혁 장관 때 차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해운 재건과 코로나발 수출물류대란 대응, 어촌뉴딜300 등 각종 해양수산 정책에서 성과를 내며 행정력을 인정 받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배우자의 도자기 밀수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권의 비판을 받았다. 다만 공직 생활 30년 동안 모은 재산이 2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박 후자가 청렴하다는 점을 들어 가족 의혹이 본인의 장관직 수행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해수부는 전날 “박 후보자가 귀국할 때 외교행낭을 이용해 배우자의 도자기를 국내로 들여왔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귀국 당시 상사 주재원 등과 동일하게 해외이사대행 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국내로 배송했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6시 열리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박준영 후보자를 비롯해 해수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야권이 부적격으로 판단한 장관 후보자 3명의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