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5 09:05

논단/ 국제해사소송의 관할과 준거법의 결정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법학박사)
일본 미쓰비시 강제징용사건에 대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중심으로
<2.1자에 이어>

2) 유효요건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당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갖는 국가의 입장에서 보아 유효인가 무효인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전속적 관할합의인 경우에는 어느 한 국가에서 무효로 인정되면 배타성을 가질 수 없고, 비전속적 관할합의인 경우에는 무효로 인정되는 국가에서는 장래 그 판결의 집행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소송에 있어서의 재판관할의 합의는 전속적 관할합의가 아닌 한 별 의미가 없으므로 특히 전속적 관할합의의 유효성 여부가 문제된다. 

우리나라의 통설과 판례는 ① 당해 사건이 타국의 전속관할에 속하지 않을 것과 ② 관할법원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법원이 당해 사건에 대해 국내법상 관할권을 가지고 있음을 조건으로 해 이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또한 반대로 그 합의가 우리나라의 재판관할권을 배제하고 외국법원에만 관할권을 인정하는 전속적 관할합의라고 해도 ① 당해 사건이 국내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지 않을 것과 ② 관할법원으로 지정된 외국법원이 그 외국법상 당해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가질 것을 요건으로 해 동 관할합의가 불합리해 법정지의 공서에 반하는 경우가 아닌 한 유효성을 인정해 왔다.  

3) 합리적 관련성의 문제

대법원 1997년 9월9일 선고, 96다20093판결은 국제관할합의의 유효요건으로서 추가로 당해 사건이 그 외국법원에 대해 합리적 관련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판시를 한 바 있어 이것이 유효요건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한국과 일본의 유력한 학설은 종래의 다수설이 주장하던 유효요건에 “지정국과 사안의 관련성”을 추가해 들고 있다. 관련성요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합의된 법원으로 해금 외국법의 적용, 외국에서의 증거조사 등 과도한 부담을 지게 하는 한편, 심리의 적정이나 소송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당사자들에게도 소송제기 및 방어에 부당한 부담을 지워 사실상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으므로, 관련성요건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논거이다.

관련성을 요건으로 드는 학설들은 관련성을 위와 같은 경우에 한정해 인정하지 않고, 보다 넓게 당사자에게 합의된 법원의 관할을 인정해야 할 합리적인 이익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그 국가와의 관련을 인정하기도 한다. 

생각건대, 관할합의의 유효요건으로서 합리적 관련성을 요구하는 것은 국내법조문의 해석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사법정책적인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 국제사법은 제25조에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준거법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합리적 관련성을 판단할 필요 없이 원칙적으로 그 준거법선택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관할합의의 경우 이와 달리 해석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사자간의 공평을 위해 당사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제3국을 의도적으로 관할법원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으며, 관련성을 유효요건으로 요구하는 경우에도 그 개념이 명확하지도 않고 관할합의의 합리성은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달성될 수 있으므로 굳이 관련성이라는 불확정개념을 이용해 관할합의의 유효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관련성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예컨대 우발적인 사고 발생지의 법원에서 재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생기는 등, 당사자들의 예측을 벗어나는 결과가 초래돼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법관 등 당사자들의 불필요한 부담을 초래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평, 적정, 신속한 재판을 기대할 수도 없는 불합리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 관련성을 관할합의의 유효성판단기준으로 하는 견해에는 찬동할 수 없다. 

4) 승인·집행요건의 문제

위에서 본 요건 외에도 관할합의에 의해 관할권을 갖게 된 법원의 판결이 그 관할합의에 의해 관할권이 배제된 국가에서 승인·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들고 있는 소수견해가 있으나 이는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유효성 문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고 외국판결의 승인·집행요건은 승인·집행을 요구받은 국가의 법원이 그 나라의 법률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므로 관할합의에 의해 관할권을 갖게 된 법원이 관할권이 배제된 국가에서의 승인가능성을 미리 예측해 관할합의의 유효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7) 관할합의의 불법행위책임에의 적용여부

계약서상의 준거법합의(조항)가 불법행위청구에도 적용되는가의 문제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 법원은 지금까지도 준거법조항은 계약상의 청구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조항의 문언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계약상의 관할합의(조항)에 관해도 우리나라 법원은 준거법조항과 마찬가지로 종래에는 관할조항이 계약상의 청구에만 적용되고 불법행위 청구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았으나, 대법원 1992년 4월14일 선고, 91다17146, 17153판결은 중재조항과 관련해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해 하자담보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경우에 그 불법행위책임의 존부에 관한 분쟁도 중재조항이 규정하는 중재대상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으며, 대법원 1997년 9월9일 선고, 96다20093판결은 국제관할합의조항이 계약상의 청구는 물론 불법행위청구에도 적용된다는 전제 아래 판결한 바 있어, 관할합의조항의 문언상 모든 소송에 대한 관할합의로 규정돼 있는 경우에는 계약상의 청구이든 불법행위 청구이든 청구원인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소송에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우리법원의 입장으로 확립돼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관할합의조항의 문언과 당사자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해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본다.

(8) 약관규제법과의 관계

국제재판관할합의가 약관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에는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약관규제법”)과의 관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약관규제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공정을 잃은 약관조항은 무효이며 (i)고객에 대해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ii)고객이 계약의 거래형태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iii)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은 공정을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제6조), 나아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재판관할의 합의조항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있으며(제14조), 약관심사위원회도 국내계약에 있어 전속적 합의관할은 대개 무효라고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운송약관 등에는 제14조가 적용되지 아니하나(제15조) 일반조항인 약관규제법 제6조는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국제재판관할합의도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가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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