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범 위원이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 모형을 들고 있다. |
2030년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완전히 녹아내리며 연중 항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북극항로에서 우리나라가 입지를 강화하려면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지원과 장기전략 수립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016년 SLK국보에 재직하며 북극항로 진출에 디딤돌을 놓았던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경영연구소 최수범 연구위원은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뒤따라야 곧 다가올 북극항로 시대에 우리나라가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실질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지면 경제성 확보 문제로 북극항로 진출을 꺼린 민간기업들의 관심이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기업 북극진출 마중물 역할 해낼 것”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갖춘 최 위원은 향후 학문적 연구로 이론까지 겸비해 북극항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최 위원은 지난 2016년 SLK국보 재직 당시 해양수산업무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해양수산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6년 7~10월 북극항로를 이용해 울산에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로 플랜트 설비를 성공적으로 운송한 게 수상 배경으로 꼽혔다.
최 위원을 필두로 SLK국보는 북극해항로와 러시아의 내륙 수로를 연계한 운송로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회사를 나온 후 지금은 북극 해운항만 연구를 인천대학교 물류학 박사과정에서 이어나가고 있다. 북극해운항만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교육연구사업에 집중해 중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북극항로 진출에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내겠다는 각오다.
현재 최 위원이 몸담은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경영연구소는 북극항로 전문인력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인력 배출로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진출에 큰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그가 바라본 우리나라 북극 해운항만의 학술 연구와 산업 개발은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진출이 원활해지려면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가 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최 위원의 견해다.
북극이사회는 미국 러시아 캐나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8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인도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도 옵서버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이사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는 러시아다. 북극이사회에서 러시아인의 발언권이 높고 국토 전체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전문 인력을 배출해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이어가 북극항로 진출에 물꼬를 터야 한다는 게 최 위원의 설명이다.
인천대 동북아물류경영연구소는 코로나19 여파에도 올해 2학기 러시아인 2명을 석사 과정에 입학시키며 북극항로 전문인력 양성의 신호탄을 쏘았다. 지금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향후 교육생을 점차 늘려 단순히 연구에만 그치는 게 아닌 국제기구가 활동하는 행사에 참여시켜 글로벌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울 예정이다. 중장기적으로 전문인력이 북극항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향후 북극항로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학문 연구에 첫발을 뗀 최 위원은 인력 양성에 한계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빙하가 녹아 북극항로에서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점쳐지는 2030년을 대비해 현장 경험이 필수인 해운업 특성상 정부나 기업의 참여와 지원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뤄져야 전문 인력양성과 채용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 위원의 꿈이 실현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북극항로 진출을 타깃으로 한 선사들의 경쟁력,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해운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 위원은 정부와 기업 등을 대상으로 북극항로 교육과 관련한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필요한 고급인력의 채용 기반을 인천대가 준비하고 있고, 내년에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다른 공공기관, 민관까지 동참해서 큰 운영협의체를 만들 생각이다. 북극항로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최 위원이 지난해 12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9 북극협력주간'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
북극항로 유망사업 무궁무진…국내기업 투자기대
최 위원은 북극항로 진출을 우리나라가 강화할 경우 기업들이 기대를 걸어볼 만한 사업이 향후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북극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오브·이리티쉬강 예니세이강 레나강 등 3대 수로의 길이가 각각 4000~5000km에 달하는데, 이들 수로와 밀접한 내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 산업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수로 운항에 필요한 선박을 짓는 조선업뿐만 아니라 내륙 진출을 타깃으로 국내 중견기업들이 사업을 벌이기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4차산업혁명기술이 결합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최 위원은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운항 실적이 단 4년(2013~2016년)에 그친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중국은 2019년 제2쇄빙선을 원자력 추진선박으로 건조해 이미 북극점에 도달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대표적인 북극자원개발인 야말LNG 개발에 자본을 투자했다. 일본 또한 북극 항해가 가능한 쇄빙선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국 선사를 통한 야말LNG 운송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특히 일본은 ‘Arctic(북극) LNG2’ 프로젝트의 지분을 확보하며 북극항로 활용에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이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북극항로 진출은 더디기만 하다. 2016년 SLK국보 팬오션의 화물운송 이후 우리나라의 북극 이용은 전무한 실정이다. 시범운항 등 단편적인 사례는 존재하지만 연속적인 이용과 자원개발 등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전략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최 위원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북극항로 참여를 위해서라도 정부의 지원과 장기전략 수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할 북극항로 연구개발이 지지부진해 지금부터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연구개발이 진행돼야 기업들이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자료가 도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위원이 최근 발표한 ‘CFPR법을 활용한 북극정책 우선순위 평가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에서도 정부의 북극권 운송 참여가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평가됐다. 더불어 대외협력방안 우선순위에서도 국제협의체 참여 확대도 최우선 대응 과제로 꼽혔다. 논문에서는 국가 내부적이고 상징적인 활동을 목표로 하는 정책보다는 북극항로 개척, 전문인력 양성, 해운물류 협력, 제도적 기반 마련 등 국제적이며,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한 정책들의 중요도가 높게 나타났다.
최 위원은 정부가 북극을 향한 관심은 높지만, 효과적으로 정책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뜬구름만 잡는 연구와 문헌이 아직도 난무하고 있더라. 그런 연구는 필요 없다. 북극항로에서 뛰어놀아야 할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고 주목을 끌 수 있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야 한다. 10~20년 안에 그에 대한 대비를 이제부터 해야 곧 활짝 열리게 될 북극항로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는 북극항로 진출과 관련해 러시아 내륙에서 생산되는 곡물도 식량 안보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곡물 자급률은 22%에 그친다. 쌀 자급률은 83%에 달하지만 콩 옥수수는 6% 0.7%로 매우 낮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선 식량 확보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최 연구위원에 따르면 일본은 러시아 옴스크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자국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협력으로 성사된 곡물 운송이라 우리나라도 관심을 가져 이에 동참해야 한다고 최 위원은 밝혔다.
이 밖에 그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간의 무력충돌 위험과 해적 소굴이라 불리는 말라카해협 등이 막히면 북극항로가 대안이 될 수 있어 러시아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원 개발과 곡물 수송과 관련해선 담당 부처가 산재해 있어 북극항로를 대상으로 종합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주무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만간 러시아 국립대와 북극항로 관련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최 위원은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려면 정부 지원이 최우선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북극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진출하기엔 위험요소가 아직도 너무 많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북극권 지역에 진출할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정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북극권 산업개발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2030년 북극 연중항로의 시대를 대비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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