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선원 교대 지연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선원을 ‘필수근로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선원 교대 경직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으로 선원의 필수근로자 지정과 업단체의 원활한 공조 체제라고 지적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우리나라 선원교대 2월부터 급격히 줄어
현재 선원 교대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이슈다. 약 40만명의 선원이 교대를 제 때 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각국의 항만을 통제하고 있어 교대가 6개월 이상 곤란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선원 교대 인원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KMI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원 교대 인원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2월부터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월 427명이던 교대 인원은 2월 333명, 3월 237명, 4월 139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해외와 달리 선원 교대를 자유롭게 보장하는 개방 정책을 실시하고 있어 상황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다. 지난달 중국 인도 파나마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는 우리 선원들의 교대를 허용하지 않았다. 다른 여러 나라에선 선원 교대가 불가하거나, 14일 자가격리 이후 승선은 할 수 있지만 하선은 불가능한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어 교대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일부 재개되는 모습이지만 원활하지 못한 항공편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항공편 문제로 선원들의 입·출국이 미뤄지며 입항 국가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2019년 9월 말 현재 우리 국적선에 승선하는 외국 선원은 1만2738명으로 한국인인 8155명을 웃돈다. 체류기간이 장기화되면 선원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KMI “최악 상황엔 운항중단 선박 늘어”
선원 교대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해운항만물류 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엔 독일 국적 유조선 1척이 근무시간 초과로 운항 거부에 들어가는 등 선원 교대 문제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KMI는 최악의 상황엔 선원 교대를 포함한 각종 문제로 운항을 중단하는 선박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코로나 2차 유행이 예견되면서 선원 교대가 더욱 힘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승선 지연이 장기화되면 선원들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선박 사고로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인적 요인에 의한 전체 선박 충돌사고가 96.2%를 차지했다. 선원의 과도한 스트레스는 작업 중 안전사고 뿐만 아니라 선박의 충돌, 침몰, 좌초 등 해양사고의 직·간적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선원 교대는 단지 선원의 권리 측면이 아닌 선박의 안전이라는 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KMI의 견해다. 국제해운회의소는 선원 피로도가 쌓이는 건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세계무역의 90% 이상은 선원들의 전문성과 능력에 달려 있다며 인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원들도 승선 중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장기승선을 강제할 우려가 있어 장기적으로 선원 수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현재 코로나로 해외항만에서 선원들의 하선이 불가능하거나 교대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장기 승선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승선 기피를 불러와 향후 선원 확보에 제동이 걸릴 거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발이 묶인 선원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각국의 대응방향을 보고 향후 해운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뀔까봐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해사단체는 선원 수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IMO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은 공동성명문을 발표, 운송 관련 근로자들을 필수근로자로 지정해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필수근로자 지정을 통해 운송·물류와 관련된 선원 등을 대상으로 각 국가 이동을 자유롭게 허가하고 선원 관련 서류를 신분증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필수근로자 지정은 영국이 유일하다. ILO는 “선원을 필수근로자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선원들이 검역 관리를 준수한다는 조건하에 승·하선 제한, 입국금지 등의 이동제한 조치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하선 시 제한 없이 이동을 허용하고, 공항에도 안전한 환승 구역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KMI도 “우리나라 선원은 필수근로자로 지정돼 있지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고 있다”며 “선원을 필수근로자로 명시함으로써 대외적으로 국제기구의 권고를 적극 이행하고 있음을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항지 입항 시 검역을 최소화하고 선원 교대 관련 정보 수집·공유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선주협회에서 나오는 자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선원 교대 정보 등의 실시간 업데이트를 통해 우리나라 선사들이 선원 교대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자는 설명이다. 코로나 대비 검역소, 지방청, 도선사협회 등의 원활한 정보교환과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게 KMI의 설명이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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