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09:03

논단/ 서렌더 선하증권하에서의 화물인도와 선박대리점의 책임

정해덕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법학박사)
대법원 2019년 4월11일 선고 2016다276719 판결을 중심으로
Ⅰ. 서렌더 선하증권

1. 선하증권의 위기와 서렌더 선하증권의 등장

선하증권(Bill of Lading; B/L)은 화물의 수취 또는 선적 사실을 증명하고 그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해상운송인 또는 그 대리인이 발행한 유가증권으로서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운송물 위에 행사하는 권리에 관해 운송물을 수령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며, 전통적으로 물품수령증으로서의 기능, 운송계약의 증거로서의 기능 및 권원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선하증권은 특히 화물에 관한 권리를 표창하는 권원증권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점에서 지난 수백년간에 걸쳐 해운관행을 주도해 왔으며, 선하증권의 권원증권으로서의 기능때문에 선하증권소지인은 선주에게 화물인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선하증권에 양도가능한 유통성이 부여돼 화환신용장 거래방식에 의한 무역대금의 결제에 널리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고속선(Fast Ships), 고속컨테이너선의 출현으로 인해 선박이 선하증권보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등 국제무역환경이 크게 변화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인 선하증권의 기능에도 변화를 초래하게 됐다. 소위 선하증권의 위기(Bill of Lading Crisis : B/L Crisis)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현상은 선하증권에 의한 화물인도를 어렵게 함으로써 선하증권의 권원증권으로서의 기능에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선하증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운송인이 선하증권대신 화물선취보증장(Letter of Guarantee : L/G)을 받고 운송물을 인도하는 소위 보증도의 관행이 생겨나게 됐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보증장도 받지 않고 운송물을 인도(소위 가도)하거나 선하증권을 수하인에게 직송하는 방식을 활용하게 됐으며, 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관없이 지정된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할 것을 약정해 발행하는 해상화물운송장(Sea Waybill)과 출발지에서 선하증권 원본이 이미 회수된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수하인이 양륙항에서 선하증권 원본 없이도 운송물을 인도받을 수 있게 하는 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 B/L 또는 Surrendered B/L)이 등장하게 됐다.

2. 서렌더 선하증권의 의의와 효력

가. 의의

서렌더 선하증권은 해운실무상 사용되는 용어로서 선하증권의 종류가 아니라 선하증권상에 Surrender라는 문구를 찍는 등의 방법으로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을 포기한 선하증권을 말한다. 서렌더 선하증권은 송하인이 운송인에 대해 선하증권을 발행받는 것을 포기하거나 이미 발행된 선하증권을 수하인에게 발송하지 않고 운송인에게 반납함으로써 수하인이 선하증권 원본 없이 신속히 화물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운송인이 선하증권의 권원증권성과 상환증권성에 대한 권리행사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권리포기 선하증권이라 할 수 있다(실무상 Express release, Telex release, Surrender, Surrender Cargo, Surrendered 등의 문구가 사용된다).

서렌더 선하증권은 원선하증권이 발행된 후 원선하증권에 서렌더로 표시되는 경우와 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선하증권 양식 또는 사본에 서렌더 표시를 해 송하인에게 송부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고, 선하증권 양식 또는 사본이 송부되는 경우 이를 다시 선하증권 전면만 송부되는 경우와 선하증권 전면과 이면이 모두 송부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실무상 선하증권 양식 또는 사본에 서렌더 표시를 해 송하인에게 송부하는 경우 선하증권 전면만 송부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선하증권 이면까지 송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 효력

서렌더 선하증권은 해운관행의 하나이지만 상법에 별다른 규정이 없으므로 그 효력에 관해는 선하증권에 관한 일반법리와 당사자의 의사해석에 관한 민법의 일반법리를 적용해 해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원선하증권을 발행한 후 서렌더하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선하증권 약관상의 다른 운송계약내용은 변경하지 않고, 선하증권의 권원증권성과 상환증권성만을 포기한 것으로 약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선하증권을 발행하지 않고 서렌더 표시를 한 선하증권 양식 또는 사본이 송부된 때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선하증권의 권원증권성과 상환증권성만을 제외한 나머지 선하증권 약관을 운송계약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의사합치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서렌더 선하증권에서 이면약관이 송하인에게 송부되지 아니한 경우 이면약관이 운송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운송계약 당사자의 합리적 의사를 추단해 결정할 성질의 문제이며,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가 그 표시행위에 부여한 객관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확정하는 것이므로, 이면약관이 제공되지 아니한 경우 이면약관이 운송계약의 내용에 편입됐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서렌더 선하증권 발행행위의 내용, 서렌더 선하증권이 발행된 동기와 경위, 서렌더 선하증권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논리칙과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대법원 2015년 10월29일 선고 2013다69804 판결 등 다수).
 
Ⅱ. 화물인도와 선박대리점의 책임

1. 선하증권과 상환없는 화물인도에 대한 해상운송인의 책임

가. 고의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책임

해상운송인이 선하증권과 상환하지 아니하고 그에 표창된 화물을 타인에게 넘겨주어 선하증권소지인에게 이를 인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물의 법적 멸실에 해당되며, 해상운송인은 채무불이행책임은 물론 운송물멸실에 따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 경우 운송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과 화물소유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이 경합하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권리자는 그 중 어느 쪽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법 제820조, 제129조의 규정은 운송인에게 선하증권의 제시가 없는 운송물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인도를 거절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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