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혁신을 국정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 2019년 7월 24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선언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규제혁신은 ‘선택의 문제’였지만, 산업 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디지털 경제 시대의 규제혁신은 ‘생존의 문제’가 됐다. 여전히 많은 낡은 규제들은 기업들로 해금 신산업으로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거나 적극적으로 투자하는데 걸림돌이 돼 왔다. 규제라는 장벽으로 국내에서의 기업 경영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는 사례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규제자유특구 지정
중소벤처기업부는 2019년 7월 규제자유특구 7개 지역을 선정함으로써, 신산업 활로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각 지역들은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 적극적으로 신산업들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규제완화의 숙원을 해소했고, 산업 진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못하고, 해외로 수출만 했던 기업들도 있었던 만큼, 상당한 혁신성장의 기회가 열린 것이다. 예를 들어, 자택에서도 폐질환·골절 등을 검진할 수 있는 이동형 X레이 촬영장비를 개발해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을 진행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못했던 중소기업 에이치디티(주)는 특구 내 실증 및 레퍼런스 확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규제자유특구는 기업이 규제 없이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도록 지정한 구역이다. 각 특구는 신기술 개발이나 사업 진출에 도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유예·면제하여 집중 육성한다. 지역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등의 규제특례와 지자체와 정부의 투자계획을 담은 특구계획에 따라 지정된 새로운 시스템이다.
규제 샌드박스란 기존에 존재하는 규제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신산업을 시도 할 수 있도록 일정조건 하(시간·장소·규모)에서 규제를 면제·유예시켜 주는 ‘혁신의 실험장’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sandbox)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개별 기업이 신청하는 제도인데 반해, 규제자유특구는 지자체가 신청하고 재정 및 세제가 지원되는 제도다. 규제자유특구는 곧 지역단위의 규제 샌드박스인 셈이다.
지역별 규제자유특구, 어떻게 ‘혁신의 실험장’ 될까?
첫째, 강원도는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원격진료, 백신 재고 관리 서비스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몸이 불편한 환자가 험준한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원도 내에는 교통이 불편한 산간 지역 등에 거주하는 만성질환자(당뇨, 혈압) 중 주기적인 검진이 필요한 재진 환자가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에서도 원격으로 모니터링 및 내원 안내, 상담·교육, 진단·처방을 할 수 있게 된다. 혈압을 측정하는 스마트밴드, 환자의 혈당 수치를 체크해주는 모바일앱, 허리둘레를 측정해 비만을 관리하는 허리벨트 등의 제품과 서비스가 실증될 것이다.
둘째, 대구광역시는 스마트 웰니스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스마트웰니스(Smart Wellness)는 스마트(Smart), 웰빙(Wellbeing), 피트니스(Fitness), 행복(Happiness)의 합성어로 삶의 전 영역에서의 건강을 추구하기 위한 개인별 맞춤 건강관리 차세대 라이프 케어 산업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VR기술을 활용한 원격 개인 PT 서비스, 개인 신체사이즈에 맞춰 제작하는 3D프린팅 깁스 등이 있다. 현행 의료기기 제조시설 구비의무 규정을 완화해 세계최초로 3D프린터를 활용한 의료기기 공동제조소 구축을 허용했다. 이를 통한 3D프린팅 기반의 ‘쉐어링 팩토리’를 구축해 나갈 전망이다.
셋째, 전라남도는 e-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e-모빌리티(Electric Mobility)는 전기를 동력으로 삼고 있는 개인용 이동 수단으로 전동 킥보드, 전기자전거, 전기자동차 등을 포함한다. 기존 자동차 산업에 기반 한 도로교통법의 규제에 막혀, e-모빌리티 산업이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어왔다. 초소형 전기차의 진입 금지 구역인 다리 위 통행을 허용하고, 불가능했던 자동차전용도로 주행도 검토할 예정이다. 초소형 전기차를 이용한 운송이나 카 셰어링 사업이 가능해져 새로운 산업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차도에서만 이용이 가능했던 전기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는 자전거전용 도로에서도 주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넷째, 충청북도는 스마트안전제어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스마트안전제어는 유선으로만 관리해온 가스안전 경보·차단 장치 등을 인공지능과 IoT 기술을 활용해 원격에서 관리하는 무선기반 가스안전제어를 의미한다. 현행법상에는 가스안전제어가 직접 또는 ‘유선’ 제어만 허용해 왔기 때문에, 스마트안전제어 산업의 성장에 제약이 많았다. 세계 최초로 가스기기 분야에서 무선제어와 차단 기준을 마련해 기술표준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다섯째, 경상북도는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이란 전기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터리를 재가공해 다른 산업에서 재사용하거나, 배터리 재활용으로 핵심 소재를 얻을 수 있는 산업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전기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배터리 처리 문제가 크게 제기되고 있다. 폐배터리 성능 및 안전성 검증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배터리의 수집·보관·해체·재활용에 관한 제약을 완화하고, 다양한 응용제품을 개발하는 산업이 열릴 전망이다. 특히, 현재 전량 수입하고 있는 배터리 핵심소재인 리튬과 코발트를 추출해 소재 국산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여섯째, 부산광역시는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먼저, 금융 분야에서는 부산은행이 주관이 돼 지역화폐(디지털 바우처)를 발행할 예정이다. 관광 분야에서는 현대페이, 한국투어패스가 블록체인 기반 관광 플랫폼 실증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마트투어서비스를 개발해 숙박, 렌트카 이용, 상품 구매 등 결제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소비자와 판매자가 공유한다. 공공안전 분야는 코인플러그가 블록체인의 최대 장점인 ‘익명성’을 이용해, 개인정보 유출 없이 안심하고 제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경찰서나 소방서는 제보시민의 실시간 위치 정보를 파악하고, 신속하게 재난 및 사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일곱째, 세종시는 자율주행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됐다. 세종시에 구축된 인프라(BRT 전용도로, 지능형 교통체계(C-ITS) 시범지구, 자율주행 정밀지도 등)를 기반으로 자율주행을 규제 없이 실증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운행 중 기기조작 금지, 도시 공원 내 운행금지 및 운수업을 위한 ‘한정면허’ 발급 등 규제 제약에 따른 어려움이 존재한다. 즉 도로교통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 8건이 자율주행 산업을 가로막는 규제가 돼왔던 것이다. 이제 도심 자율주행 실증과 빅데이터 허브 구축 등이 가능해 질 것이다. 나아가 국내외 자율주행 관련 기업들이 세종시의 첨단시설들을 활용하고, 관련 벤처기업들이 육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공적인 ‘혁신의 실험장’이 되기 위한 제언
첫째, ‘기존 산업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2018~2019년 동안에도 ‘규제와의 전쟁’이 진전되자 ‘기존 산업과의 전쟁’이 발발했다. 카풀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카카오는 승차공유(카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카풀 스타트업인 ‘럭시’를 인수하고, 모빌리티 혁신을 추진해 왔으나, 택시업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규제자유특구 지정도 예외가 아니다. 강원도 규제자유특구에서 원격의료 실증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료기관이 1곳에 불과하다. 1차 의료기관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의료 추진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기존 산업들에게 신산업 확대를 통한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둘째, ‘지역과의 전쟁’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특정 지역 내 특정 산업에게만 특혜가 돌아가도록 구성돼 있는 구조는 다른 지역에서 해당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수많은 금융기업들 중 부산은행이 블록체인 사업의 수혜를 독차지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강원도 횡성군은 e-모빌리티 사업에 상당한 관심이 있지만, 전라남도와 같은 규제완화의 효과가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자유특구 정책이 지역적 구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받아 기술개발을 시도한 기업들이 특정 기간과 장소를 벗어나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개발에 멈춰 제품개발로 연결될 수 없을 것이다. 기업들이 가능성을 보고 수년간 투자를 진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업화를 진행할 수 없는 여건으로 바뀌고 나면, 상당한 손실을 떠안게 될 것이다. ‘먹튀’ 정책이 아닌, 영구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고심이 필요하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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