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항공운송시장이 내수 중심의 시장구조에 의존하면서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상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사업구조를 띠면서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항공사들의 수익 개선과 기재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항공대학교 윤문길 교수는 25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제9회 항공산업전망세미나에서 “우리나라 항공사업자들이 내국인 출국자 중심의 편향된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며 “공급(좌석)은 늘어나는데 내국인 출국자(증가세)가 정체돼 내년에는 영업이익을 실현할 항공사가 거의 없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항공여객시장이 2030년까지 성장세를 거둘 것으로 보임에 따라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경쟁적으로 신규 항공기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돌발변수에 따라 출국자 수 증가세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항공업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반대로 국내 주요 공항들은 외국인 입국자 수 증가에 힘입어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는 등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KOTI)에 따르면 국내 주요 공항에서 국제선을 이용한 항공여객 수는 지난해 8593만5000명으로 전년 7695만6000명 대비 11.7% 성장했다. 그동안의 항공여객실적을 살펴보면 지난 2016년엔 전년 대비 18.8% 성장한 7300만명, 2017년엔 5.4% 증가한 7695만6000명을 각각 기록했다. 올해는 전년보다 5.8% 증가한 9087만8000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윤 교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2017년 중국발 사드보복 등 과거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국내 항공사들이 ‘한국인 출국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비판했다.
우선 2008년엔 한국인 출국자 수가 2007년 대비 30% 급감한 950만명을 기록했다. 이듬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입국자 수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항공사들은 최악의 영업성적표를 받았다. 2015년엔 외국인 입국자 수가 크게 줄었지만, 한국인 출국자가 20% 급증하면서 항공업계가 고공성장을 이뤘다. 2017년에는 중국 방한객이 급감했지만,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해외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항공사들이 상당한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 항공사들이 내수시장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방책으로 ‘해외시장’을 제시했다. 우선 국내 항공사들이 해외직접투자를 강화하고 우리나라도 역으로 외국인 투자를 적극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선형구조를 띠는 현재의 항공노선을 그물형네트워크로 확대해 기재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해외에 합작투자사를 설립하고 해외마케팅을 강화해 국내 여객수요 부진을 해외에서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항공업계와 정부가 관행에 따른 사업모델과 정책에서 벗어나 세계 항공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아시아 합작투자항공사 설립요건 완화시급
이날 초청연사로 자리한 홍콩중문대학교 이재운 교수도 항공산업의 외국인 투자제한 규제를 완화해 ‘아시아 합작투자 항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며 윤문길 교수의 의견과 궤를 같이 했다. 합작투자 항공사는 법적으로 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자체 임직원, 자산, 시설 등을 갖추는 사업모델이다. ‘대한항공-델타항공’의 환태평양노선 합작투자처럼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협력관계에 따라 특정 노선을 함께 운영하는 모델과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에어아시아타이 제트스타아시아 라이언에어 싱가포르항공 스프링항공 비엣젯 등이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투자지분을 51%까지 허용하는 국가는 81곳에 이른다. 개중엔 최대 80%까지 허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시장의 흐름과 달리 한국시장에선 규제로 인해 외국인투자가 가로막혀 있다. 항공안전법은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이나 단체 정부기관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항공기를 국내에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항공사업법은 외국기업에 원천적으로 국내항공운송사업 또는 국제항공운송사업의 면허를 차단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 15년간 합작투자항공사가 아시아 전역에 설립되면서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루고 있다”며 “외국항공사그룹이 소수지분을, 국내투자자가 과반지분을 갖는 형태의 합작투자항공사 설립을 허용해야 할 때다”고 주장했다.
적정수준 부채, 자기자본 조달 균형 필요
이날 세미나에서는 항공업계가 적정수준의 부채와 자기자본을 균형적으로 조달해 건강한 재무구조로 투자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상당한 외화부채로 인해 영업이익을 실현해도 환율영향과 부채조달에 따른 이자비용으로 당기순이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주주들로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다.
유진투자증권 방민진 연구위원은 미국 델타항공의 사례를 들어 국내 항공업계가 재무구조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 연구위원은 공급조절과 비용감축이 델타항공의 실적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과점체제를 띠는 미국 항공업계에서 델타항공은 적기에 공급(좌석수)을 감축해 탑승률과 운임을 한껏 끌어올리는 등 실적향상을 꾀했다. 운영비 절감도 우수하다. 이 항공사는 올해 2분기 2.5% 외형성장을 했지만, 비유류비용(운영비)은 지난해 동기와 비슷해 시장에서 큰 신뢰를 얻었다.
또 글로벌 프랜차이즈 전략을 통해 허브공항은 직접 운항하고, 나머지 노선은 파트너사를 활용해 기재 효율성을 높였다.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프리미엄좌석을 확대하기 위해 기재투자를 꾸준히 한 점도 성공요인으로 꼽혔다. 실적 호조로 재무구조가 튼튼해지면서 신규 항공기 도입도 가장 빠르게 늘리고 있다. 현재 미국 항공시장에서 가장 많은 항공기를 보유한 곳은 아메리칸항공이지만 재무구조가 부실해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 있다.
방 연구위원은 “델타항공과 아메리칸항공의 차이를 보듯 재무구조의 건전성이 기재 확대와 수익성 개선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며 “적극적인 기재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위해선 자기자본과 부채조달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항공업계의 숨통을 쥐고 있는 항공기 임대(리스)사업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한국교통대학교 이근영 교수는 “국적항공사들이 대부분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항공기를 소유하지 못하고 리스로 대체하고 있다”며 “최근 (새로운) IFRS 도입에 따라 항공기리스가 모두 부채로 잡히면서 항공사들의 부채비율이 급격히 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운송용 항공기는 402대로 향후 164대의 항공기가 추가 주문돼 도입될 예정이다. 특히 국적항공사(FSC)보다 재무여력이 떨어지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이 대부분 운용리스에 의존해 항공기를 도입하고 있다. 운용리스 조건은 항공사의 신용도와 리스계약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국내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리스업체들이 대부분 유대인자본인 데다, 소재지가 대부분 세금을 적게 지불하는 아일랜드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항공사들이 지불하는 리스료는 연간 1조5655억원으로 분기당 약 3982억원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이 교수는 국부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리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토종리스사 설립을 제안했다. 리스료가 대부분 달러로 지급되다보니 항공사들로선 환율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대체자산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항공기금융을 운용하고 있으며 홍콩도 항공기리스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항공화물시장, 한일관계 악화에 ‘직격탄’
올해 우리나라 항공화물 처리실적은 최근의 한일관계 악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여파 등으로 지난해보다 크게 부진할 전망이다. 특히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는 한일관계로 인해 지난해 하반기에 예상한 실적 전망치보다 크게 악화됐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KOTI 항공교통연구본부 한재현 센터장은 “국제화물 수요둔화와 최근의 한일관계 악화로 올해 우리나라 항공화물 성장률을 하향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 센터장은 올해 우리나라의 항공화물 실적(6월 기준)이 지난해 대비 2.7% 감소한 405만4916t을 기록할 것으로 하향 전망했다. KOTI는 지난해 하반기(2018년 10월까지 자료 취합) 기준 올해 실적 전망치를 5.5% 성장한 439만9727t으로 내다봤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한일관계 악화 등의 변수가 반영되면서 6월 기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국제선 화물성장률은 지난 2016년 7.5%를 기록한 후, 2017년 6.6% 2018년 3.4%로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렸다.
내년도 상반기 국제선 화물처리실적은 올해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인 196만5622t을 취급할 것으로 보인다. KOTI는 예측치보다 많은 화물이 취급되면 최대 214만7427t, 적은 화물이 취급되면 최저 178만3817t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KOTI의 우울한 전망은 국내 최대 허브공항인 인천공항의 상반기 실적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인천공항공사 공항산업기술연구원 강용규 원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인천공항의 항공물동량은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한 133만t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 중인 인천공항은 올해 성장률이 201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원장은 무선통신기기 반도체 등 IT관련 제품이 감소하면서 실적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선통신기기는 해외생산, 스마트폰 교체주기 확대, 중국과의 경쟁 등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으며, 반도체와 컴퓨터는 IT 재고조정과 투자 연기 등으로 수출이 부진한 상황이다.
지역별 실적을 보면 세계적인 교역 둔화로 모든 지역의 물동량이 감소한 가운데, 일본과 중국이 두 자릿수 이상 큰 폭으로 감소했다. 1위 미주지역(점유율 21.6%)은 6.2% 역신장한 28만7871t, 2위 유럽(18.4%)은 6.5% 감소한 24만5861t, 3위 동남아(18.3%)는 소폭 줄어든 24만3780t을 기록했다.
4위를 기록한 중국(17.2%)은 경제성장률 둔화 여파로 11.4% 뒷걸음질 친 22만9502t으로 집계됐다. 강 원장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p)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은 1.6%p 감소한다고 밝혔다.
6위를 기록한 일본(9.4%)은 주요 8개 지역 중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인천-일본 노선의 상반기 항공운송 물동량은 17.5% 급감한 12만5375t에 머물렀다. 강 원장은 “인건비·원자재 상승 등으로 인한 일본산업경기 둔화가 반영된 결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반기에도 미국의 통상압박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불안요인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강 원장은 “일본의 규제가 반도체 장비로 확대되면 생산차질은 물론 큰 폭의 수출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며 “(일본 정부가)3개월 후 수출을 승인해주면 큰 타격이 없겠지만 수출을 허가하지 않거나 무역제재품목을 확대하면 생산차질이 불가피하고 다른 산업으로도 충격이 확산될 것이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선 화물은 지난해 27만3192t보다 2.8% 감소한 26만5441t을 거둘 전망이다. 당초 예상치 25만5204t보다 4.0% 성장한 수치로, KOTI는 국내선 순화물과 수하물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실적 부진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내년 상반기 실적의 경우 올해 12만7162t보다 6.2% 증가한 13만5064t을 취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측 상한선과 하한선은 각각 15만2161t 11만7968t이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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