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실화주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영업을 나가보면 회사 문 앞에 ‘잡상인 출입금지’ ‘포워더 영업사원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국제물류주선업(포워딩)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바닥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포워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국제물류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의 말은 가시로 가득했다. (주)네오트랜스해운항공(네오트랜스) 김경열 대표이사는 회사 창립 20주년 인터뷰에서 국제물류주선업이 후퇴하고 영세해진 점, 대중의 인식이 악화된 점 등을 지적하며 업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1991년부터 포워딩업계에 몸을 담은 김 대표는 국내 포워딩시장에서 ‘호황’과 ‘불황’을 두루 겪은 물류전문가다.
김 대표는 “관세청이 집계한 우리나라의 포워더 등록업체 수는 3150개에 달한다. 비공식업체까지 포함하면 7000여곳이 넘을 거란 의견도 많다”며 “정부가 포워딩시장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설립기준을 강화하고, 물류 유관기관은 심층적인 분석으로 업계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물류업계를 향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그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Q. 네오트랜스에 대해 소개바란다.
네오트랜스는 1998년 9월에 설립된 20년 전통의 국제물류기업이다. IMF 외환위기 시절이라 원달러 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았고, 한국발 수출화물은 증가했다. 함께 일했던 전 직장 동료 4명과 공동창업을 하게 된 배경이다. 2001년에 주요 선사 창고 관세사 포장업체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문전연결(도어투도어) 서비스를 확립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이었지.
하지만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공격적인 확장이 어려워지면서 한동안 여느 포워더처럼 핵심화주를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최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지사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에 천안지사와 물류센터를 세웠고, 지난해에는 홍콩 베트남 파트너들과 합작투자로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했다.
주요 서비스로는 해상수출입 항공수출입 프로젝트화물 운송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화주들을 위해 국제무역·국제물류와 관련된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
Q.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소회 한 말씀.
회사 공동창립멤버였던 한상동 전 대표이사가 2016년에 물러난 이후, 제가 그해 5월부터 지금까지 대표직을 이어오고 있다. 사실 포워딩업계에서 동업으로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과거보다 네오트랜스의 사세가 줄었지만 20년의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우리 회사만의 생존법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분담을 잘 한 게 지금까지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본다. 지난 20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새로운 미래를 항해할 것이다.
Q. 20년 사업의 비결이 있다면?
직원들이 맡은 일을 우직하게 처리한 덕분이다. 보통 영업인력이 화물을 유치하는 점에서 기여도를 높게 보기도 하는데, 저는 영업직 50 업무직 50이라 본다. 화물을 유치하면 그 다음부터는 모두 업무인력들의 몫이다. 화주들의 전화응대부터 명확하고 빠른 일처리가 포워더의 생명이다. 그 점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직원들이 만족할만한 복리후생도 제공해야 한다. ‘고객만족의 출발은 직원만족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Q. 이른 시기에 해외진출을 시도했다고 들었다.
신규 화물을 유치하기 위해 오지나 미개발국 진출을 계획했다. 그 중 CIS(독립국가연합)지역이 눈에 들어왔고, 카자흐스탄으로 2003년에 진출했다. 우리로선 첫 해외진출이었지. 북방물류의 최대 역점사업인 대륙횡단철도 서비스 외에도 에어카자흐스탄의 항공화물대리점을 맡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다. 회사의 주요 사업이 해상운송이다 보니 항공시장으로 발을 넓히는 게 쉽지 않았다. 현지 세관당국의 관료주의와 행정규제를 타파하는 것도 어려웠고…. 시장을 오판한 탓에 카자흐스탄 사업은 3년 만에 접어야만 했다. 혼자 리스크를 짊어지면서 깨달은 건 ‘해외진출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였다.
한 번 실패해 본 경험을 밑천 삼아 지난해 홍콩 베트남지역 파트너들과 합작으로 투자해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에 각각 지사를 설립했다. 중국에 있던 우리나라 주요 공장들이 베트남 이전을 꽤 한 점을 주목했다. 동남아 거래를 주력으로 하는 화주들에게 최상의 물류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Q. 베트남 물류시장의 특징이 있다면?
오늘날 베트남의 물류시장은 마치 1990년대 우리나라의 해운물류시장을 보는 기분이다. 전자화가 뒤처져 가시성 있는 물류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고, 수출입화물을 한 건 취급하는 데 여러 가지 종류의 종이 서류들이 필요하다. 세관의 통관작업은 과거보다 꽤 개선됐지만 느리거나 불투명한 건 여전하다. 특히 베트남 현지인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따로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신뢰가 부족한 파트너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베트남에도 포워더가 있지만 운송업자와 화주 사이를 ‘주선’한다는 개념이 아직 부족하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계 포워더만 5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현지인들의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 네오트랜스가 파트너들과 합작투자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각사(파트너)가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을 집중하면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Q. 국내 물류업계가 개선해야 할 게 있다면?
우리나라 물류시장의 병폐는 ‘포워더의 생존율’이라 생각한다. 업계에 따르면 신생 포워더의 5년 생존율이 20%도 채 안 된다더라. 10곳이 생기면 5년도 안 돼 2곳 미만으로 남는 셈이다. 10년 생존율은 더욱 낮을 거다. 국제물류주선업이 1988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긴 탓이다. 집에서 포워딩을 하는 업자도 많을 거다.
포워딩시장이 성장하려면 ‘프로적인 마인드’를 무장한 포워더가 많아져야 한다. 왜 포워더가 ‘잡상인’ 취급을 받거나 주요 화주들로부터 ‘포워딩 영업사절’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무역국가다. 무역의 핵심은 물건을 국가 대 국가로 이동하게 해주는 것, 즉 물류다. 포워더를 전문직종으로 우대하는 해외처럼 우리나라에도 포워더를 인식하는 문화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
그 점에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나 국제물류협회가 국내 포워딩시장 현황과 해외사례 등을 비교연구해, 정규적인 자료집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류인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 본다.
Q. 네오트랜스의 향후 계획은?
우리가 20년 동안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적자경영을 한 적은 없었다. 적자가 나지 않았다는 의미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애환이 담겨있다. 원래 평범함을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 점에서 제게 최대 자산은 20년을 버텨왔다는 점이다. 항상 각자의 위치에서 기본에 충실해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베트남시장은 아직 진출을 본격화할 단계가 아니라 본다. 누구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지만, 물류라는 것은 지구가 종말 할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제대로 시장을 접근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게 문제다. 우리가 추진한 방향대로 사업이 잘 진행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Q. 업계에 한마디.
앞서 말씀드렸지만 우리 국제물류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프로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과당경쟁이 심하다보니 각종 병폐가 도사린다. 제일 대표적인 예가 ‘마이너스 운임’이다. 기회만 되면 화물을 선적하는 화주에게 마이너스 운임을 제시한다. 이런 건 ‘누워서 침 뱉기’하는 꼴이다. 마이너스 운임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거쳐 이제는 베트남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 됐다. 물류업계가 서로 ‘윈윈’하려면 화주에게 돈을 주고 화물을 유치하는 현재의 상황을 자성해야 한다.
국제물류주선과 컨설팅 서비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포워딩사업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업계를 지탱하는 물류인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으면 좋겠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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