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가 조금씩 풀리면서, 북한을 거쳐 중국·러시아를 시작으로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신 북방물류’가 세간에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향후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부산·광양을 출발점으로 북한을 거쳐 대륙국가로 육로수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북한과의 단절로 부산에서 러시아 중앙아시아 유럽 등으로 화물을 보내려면 해운에 의존하거나 해운과 철도운송을 복합으로 이용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철도를 활용한 국제화물수송시장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KOTI)에 따르면 철도는 장거리운송에 유리하고, 도로에 비해 비자 통관 등 제도적 장벽이 낮아 운송경쟁력이 높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선정한 주요 9대 유럽-아시아 운송회랑을 놓고 보면 해운과 비교할 때 철도는 시간경쟁력 외에도 5개 노선에서 해운보다 운임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 오랜 기간 단절된 남북이 ‘한반도종단철도(TKR)’라는 하나의 철도노선을 확보하게 돼, 정치적 상징성과 한반도-아시아-유럽을 하나의 지역공동체로 묶을 수도 있다. 특히 지난 2016년에 있었던 한진해운 사태나 언제 찾아올 지 모를 선복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북한과 물류망을 연계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北 낙후된 물류인프라에 육운·해운 경쟁력 낮아
남북교통망이 확충됐을 때의 기대효과가 상당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다. 북한의 열악한 물류인프라와 지형, 폐쇄된 사회구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북한은 산악지대인데다 계곡이 많다. 도로포장은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로 돼 있어 화물차 운송이 적합하지 않다.
KMI는 북한의 화물차운송이 어려운 이유로 ▲석유보급난 ▲주민의 자유이동 금지 ▲험준한 지형여건 ▲자동차산업 낙후 등을 꼽았다. 또 남북 간 단절된 도로망을 이으려면 신규노선 공급보다 기존 단절도로의 교통수요를 파악해 복원하는 게 낫다는 시각이다. 서해안(경의선)은 안주-신의주(149km) 구간, 동해안은 원산-함흥-청진-나진-선봉-러시아 구간이다.
해운·항만은 주요 교역국인 중국 러시아와 육로운송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북한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해운이 북한 수송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1980년대 이후 주요 무역항을 확장 공사했지만 하역설비와 적하장 등 배후시설은 낙후돼 있다. 컨테이너화물을 취급할 수 있는 다목적부두가 없고, 항만시설 관리와 통제기능도 미비해 남포항 등 일부 항만에서는 석탄 광석 등의 야적화물이 심각한 적체현상을 빚고 있다. 또 수심이 낮아 선박 접안도 쉽지 않은 편이다.
남북항로는 부산과 인천을 거점으로 나진·남포를 잇는 노선이 천안함 사태 전까지 운항했다. 동룡해운과 북한 강성총회사가 부산-나진 항로, 국양해운이 인천-남포 구간을 운항했다. 2007년 기준 남북을 오간 컨테이너는 1만7000TEU를 조금 못 미쳤다.
KMI는 해상물동량 부족에 대해 ▲운송수요의 절대적 부족 ▲단거리에 따른 성장잠재력 저하 ▲기타 북한 내부요인 등이 원인이라고 꼽았다. 특히 남북 연안운송은 운송거리가 짧은 데다 화물차운송보다 물류과정이 복잡한 게 문제로 지적됐다. 화물차로 운송하면 차량적하-도로운송-양하만 거치면 되지만, 해운은 차량적하-도로운송-양하-선적-해상운송-하역-차량적하-도로운송-양하 등이 필요하다.
남북항로 활성화 방안으로는 북한 해주산 모래를 인천항으로 운송하거나, 중국 동북3성을 타깃으로 하는 부산-나진 컨테이너항로 개설, 북한 지하자원 운송 등이 꼽혔다. 해운조합의 남북해상수송지원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 선원 수급도 관심을 받고 있다.
철도물류, 높은 운임·상이한 궤폭 ‘과제’
북한 화물운송의 약 90%를 차지하는 철도는 중국횡단철도(TCR)·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수송이 가능해 가장 유력한 북방물류 사업모델로 꼽힌다. 부산과 광양에서 출발해 대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유럽향 화물을 운송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물류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북방지역 물류를 주력으로 하는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은 북한과의 평화무드로 북방물류가 재조명을 받는 점에 화색을 보이고 있지만 ▲비용경쟁력 ▲충분한 인프라시설 ▲표준화된 통관체계 ▲정부의 보조금 등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TKR-TCR·TSR’ 수송이 큰 경쟁력을 갖추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는 남북철도 서비스가 운임경쟁력에서 밀리는 점을 1순위로 꼽는다. 선박이 대형화되고 한중·한러항로의 정기선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해상운임이 저렴하게 형성돼 있고, 기간도 한중노선은 하루 내외, 극동러시아까지는 2~3일이면 충분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극동러시아에서 열차로 환적하더라도 3~4일이면 가능하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운송이 가능하다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때 큰 붐을 일으켰지만, 유럽향 전세열차(블록트레인)는 여전히 운임이 높아 서비스 접근이 쉽지 않다. 화물 적재권한도 물량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 자국 화주들에 쏠려있다. 성수기가 되면 화물량이 부족한 국내 물류기업들의 적기수송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이 와중에 국내 화주들은 극동지역 수요부족과 비용절감 차원에서 물류비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이렇다보니 블록트레인을 찾는 화주보다 해운서비스를 찾는 화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한국산 재고가 쌓이다보니 화주들도 자동차부품, 전자제품, 제품수리용 화물 외에는 적기에 수송할 필요가 없어졌다. 특히 모스크바향 화물은 저렴한 해운서비스로 화주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와 물류업계는 철도 인프라 확충이 한국발 북방물류 시장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철도는 전체 노선의 98%가 단선으로 이뤄져 있어, 정차장에서 대기시간이 많은 편이다. 또 운송량을 늘리기 위해 열차의 운행 횟수보다 열차를 늘리는 데 주력하다보니 운행속도가 낮은 편이다. KMI는 TKR-TCR·TSR 수송이 원활해지려면 예측수요에 대비해 경의선은 복선철도, 동해선은 단선철도로 개량하는 인프라 보수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표준궤를 채택하는 우리나라 북한 중국이 러시아 광궤와 빠르게 연계될 수 있도록 충분한 환적인프라도 마련돼야 한다. 환적에서 발생하는 하역비용도 감내해야 한다. 이 외에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이용되는 덮개열차(커버드왜건)를 우리나라가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포괄적인 아이디어보다 구체적인 인프라투자 시기와 비용 등을 제시해야, 업계와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수요확보도 해결과제다. 업계는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전세열차를 꾸리려면 중국과 러시아발 물량에 버금갈 만큼 물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향 수송은 40피트 컨테이너(FEU)로 주당 70박스를 유치해야 한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향후 유럽향 철도수송을 가정한다면 고정물량 확보가 우선이며 화차는 코레일이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일본이나 인근 국가의 환적화물과 부피가 큰 벌크화물 유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유라시아 통관규제, 물류기업 피로도 多
남북 간 통관체제를 하나로 표준화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정치체제가 다른 남북이 통관체제를 하나로 통일하지 않으면 철도수송의 최대 경쟁력인 ‘시간단축’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KMI는 남북 연계운송 시 국가-국가 간 이뤄지는 통관절차를 따르고, 화물 분실 등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무정차 통관이나 최소한의 검수절차만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표준화를 이뤄도 주요 북방물류시장인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지역 등의 각기 다른 통관절차가 남아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의 국경세관이 체계적인 통관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관료주의와 부패문제가 심각한 게 대표적인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TCR는 중앙아시아 국경에서 모든 제품을 검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통관을 제재하기 위해 수출면장을 원본으로 제출해야 하고, 국경세관에서는 HS코드를 문제 삼아 통관일수를 늘리기도 한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는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도 많다.
TSR를 활용하는 러시아는 통관절차 간소화에 나서고 있지만, 최소 3~4개국을 경유하다 보니 3~4번의 통관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TSR로 환적할 때도 평균 10개의 통관서류가 필요하며, 러시아어로 작성해야 한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교통·통관체계도 다른데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도 제각각이다. 사회주의 국가와 협력이 말처럼 쉽지 않다”며 “인천에서 모스크바를 가는 화물도 부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게 오늘날 북방물류의 현실이다”고 말했다.
정부차원의 금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도 운임이 높아도 화주와 포워더가 블록트레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세제혜택과 인센티브가 확보돼야 한다는 것.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대부분의 포워더가 물류비용과 시간만을 고려하다보니 철도가 고비용이면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은 유럽 교역을 늘리기 위해 지방정부가 철도운송에 컨테이너당 수천달러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로운 물류망이 형성되면 기존 서비스와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철도노선이 확충되면 기존 서비스와 경쟁하게 돼 선택권이 넓어지는 장점도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루게 되면 해양국가인 동시에 대륙국가가 되는 만큼, 상징적 의미로 인프라망을 확대하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KOTI 서종원 박사는 “국제물류는 유기체인 만큼 어느 것을 맞다 틀리다고 할 수 없고, 다양한 노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노선이 연결되면 관련 신산업이 창출될 수 있다”고 전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