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이행으로 이란에 투자했던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파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12일까지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제재를 가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2월 이란이 핵협상을 수정하는 재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재 유예를 또다시 연장하지 않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어느 정도까지 압박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이란인과 거래하는 기업까지 제재하는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가 재부과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최근 ‘이란핵합의 재협상 전망과 우리기업 진출전략 세미나’를 열고 향후 시장변화와 유의사항을 설명했다. 연사로 나선 전문가들은 최근 중동정세 및 미국에서 이란에 강경한 인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란핵합의 수정안에 미국이 부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막판타결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은 과거 이란제재 하에서도 대이란 수출 및 진출경험이 풍부하다면서, 차분히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대이란 수출기업 수는 2522개로 집계되며, 원활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업이 대다수다. 이란은 오랜 기간 경제재재로 기회요인이 충분하지만 동시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져 위기요인도 존재한다.
이란, 인프라 투자 확대…물류허브 꿈꿔
지난해 8월 5일 집권 2기를 맞은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저항경제 기조를 유지하면서 경제안정화와 물가상승 억제 및 국내 생산, 고용 증대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자국에서 생산 가능한 품목의 수입에 대해서는 고관세 정책을 유지하면서 단순 소비재 수출에 대한 관세·비관세 장벽은 심화될 전망이다.
다만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어, 이란 정부의 재정부도 현상도 지속되는 상태다. 원유 수익은 이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정부수입에서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이란 정부의 수익 가운데 40% 이상이 석유 판매로 인한 것이며, 석유 관련 제품까지 포함할 경우 약 7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란핵합의 재협상’ 결과에 따라 이란의 원유수출이 감소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코트라 박재영 테헤란무역관에 따르면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13.4%, 2017년 5.5% 성장한데 이어, 올해 5.7%의 성장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주요산업인 석유생산 및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며, 동시에 투자비용이 낮은 노후화된 시설의 개선 작업도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할 예정이다.
석유화학산업은 이란 정부가 힘을 쏟는 산업 중 하나다. 이란은 2024년까지 생산량을 현재의 3배 이상 끌어올려 세계시장에서 6%, 중동에서 32%를 점유하겠다는 전략이다.
자동차산업은 1959년 본격적으로 육성을 시작해 연 16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2대 자동차 메이커인 IKCO(Iran Khordro Co), SAIPA를 비롯해 28개 기업이 있다. 이란은 자동차산업의 생산능력 확충 및 해외기술 도입을 적극 장려하는 상황이다.
철강산업은 세계 12위의 철광석 매장량(추정 매장량 약 28억톤)을 보유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산업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이란은 석탄매장량이 풍부해 중동지역에서 철강생산 자원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한편 이란은 국가개발계획 20년 계획(2005~2025)의 일환으로 제6차 5개년 국가개발계획(2016~2021)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에는 ▲무역 투자 정상화를 위한 인프라 개발 및 투자유치, ▲다자간 통화협정이 체결된 서남아 국가와 경제 및 무역관계 확장, ▲차바하(인도 접경지역)-코람샤르(이집트 접경지역)간 연안 등 해상무역 전략지역에 경제특구(SEZ)설립 프로젝트, ▲국가철도연결망 및 터미널 시설 개보수, 지역 및 국제 운송 통로와 국가 철도 연결을 통한 철도 화물수송 개발 등이 담겨있다.
박재영 무역관은 “이란은 아시아 지역과의 경제·무역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물류산업 또한 아시아 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며 “이란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대이므로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활용해 육해공을 망라한 물류허브로서 역할을 하고자 철도·터미널·공항 등 개발 산업을 진흥시키고자 노력 중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란은 오랜 제재를 겪으면서 물류산업의 통계가 부실하고, 정확한 통계가 축적돼 있지 않아 정보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경제제재 해제 이후 대이란 외국투자가 저조하고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물류산업 진흥에 애로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란은 지리적인 강점이 있어 향후 금융부문이 정상화될 경우 물류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다.
이란, 중동 물류시장 진출 발판 삼아야
주이란 한국대사관이 발표한 ‘이란의 해상물류산업 현황’을 보면, 이란의 물류항로는 아시아와 동유럽 및 CIS 국가를 연결하는 기존 항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운송 접근성이 우수하다.
이란의 주요 항구 11개 중 8개는 남쪽인 페르시아만에 위치해 있으면 3개는 북쪽인 카스피해에 자리잡고 있다. 국제 운송업계는 이란의 경제제재가 전면 완화될 경우 물류산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풍부한 천연자원과 중산층 확대, 우수한 노동력 및 제조업 기반시설이 위치해 있어 앞으로 물류거점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란 정부도 국제 물류·유통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을 보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물류산업의 성장성은 높다.
실제로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단거리 해운과 이란 내륙 철도운송을 결합한 방식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방법보다 40%의 시간과 30%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게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주장이다.
중장기적으로 이란이 국제 물류허브로 도약하려는 전략을 강화하면 우리나라 물류기업들의 진출분야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란이 외국인 투자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물류기업들은 그간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진화된 물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나아가 이란을 거점으로 중동지역 진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 이권형 팀장은 “이란은 우리나라에 비해 전자상거래나 택배시장이 이제 막 성장하는 초기단계로 앞으로 성장잠재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에서 쌓은 물류서비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을 중심으로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란의 물류시장에 진입한다면 괜찮은 성과를 얻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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