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선고’를 받은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포털에 올라오는 한진해운 연관 기사가 수두룩하다. ‘제2의 한진해운 사태 방지’와 ‘국적선대 100만TEU 확보’ 등 한진해운 침몰 이후 한국해운 재건을 외치는 해운물류업계의 목소리가 여러 매체에 반영되고 있다.
해운사와 포워딩업체를 찾아가도 마찬가지다. 한진해운의 영광을 떠올리는 동시에 한국 1위 해운사의 침몰을 외면한 정부에 깊은 실망을 나타내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40년 역사를 뒤로 하고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한 해운사를 바라본 화주들 역시 한진해운이 아닌 한국해운에 크게 실망했다. 새해가 밝았지만 국내 해운업은 여전히 옛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해운이 또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수년간 출혈 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동남아항로에서 국적선사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 수년 전부터 동남아항로에서는 국적을 가릴 것 없이 수십여개의 해운사들이 뜨거운 화물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포스트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에서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까지 개도국을 중심으로 선사들의 서비스 개설이 2010년대 들어 줄을 이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던 항로개설 소식은 2~3주에 한 번꼴로 들려왔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가 오가는 태국·베트남항로는 무한경쟁의 장으로 변모한지 오래다.
해운사들이 제시하는 낮은 운임은 화주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경쟁상대가 워낙 많다보니 선사들은 운임 후려치기를 자행했다. 기존 시장가보다 운임을 낮게 화주에게 제시한 기업들이 하나둘 나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힐난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한때 20피트 컨테이너(TEU)당 약 400~500달러에 달했던 운임은 두 자릿수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수년간 지속됐다는 점이다. 곪은 상처가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동남아항로가 마침내 변화를 맞는다. 지난해 한국해운연합(KSP) 출범 이후 정부와 수차례 협의를 거친 끝에 국적선사 14곳은 동남아에서 항로 합리화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SM상선이 단독 노선을 철수하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이 운영 중인 ‘KHS2’와 남성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천경해운 팬오션이 운항하는 ‘TVX’가 하나로 통합되는 게 지금까지 확정된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항로 개편에 발맞춰 선사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운임 회복도 1분기에 진행될 예정이다. 선사들은 최소한의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번 운임 인상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자는 수년간 동남아항로를 목도해왔다. 화물을 가득 실어도 운임이 낮은 탓에 선사들의 수익성은 크게 떨어졌다.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항로 합리화가 성공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나만 손해 본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구조조정에 임한다면 향후 불협화음이 나오리란 건 불 보듯 뻔하다. 다함께 노력하지 않는다면 공멸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노력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사들의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채찍질하기보다는 이에 합당한 대우와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국적선사들이 철수한 빈틈을 외국선사들이 잠식하는 문제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해운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선사들이 공들인 동남아항로 네트워크를 망가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한국해운 재건. 이제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출발 선상에 선 KSP호의 성공적인 항해를 기원한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