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항만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선석생산성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부산항은 세계 672개 항만 중 10위권에 머물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우리나라의 하역생산성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항만별로 보면 부산항은 시간당 85.9회·14위에 그쳐 경쟁항만 대비 하역생산성이 뒤처지고 있다고 밝혔다.
선석생산성은 선박의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평가하는 지표로, 선사들이 기항지를 선택할 때 주요 고려사항으로 활용한다. 선석생산성이 높을수록 선박의 재항시간 단축효과가 있어 선사로선 선박운영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컨테이너터미널의 선석생산성은 핵심 하역장비인 STS안벽크레인에 화물을 실어나르는 야드트랙터(YT), 야적장에서 YT에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트랜스퍼크레인(TC)의 연계작업 등 장비투입대수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안벽크레인 부족이 생산성 저하불렀다”
항만별 하역생산성을 보면 세계 상위 10개 항만 중 9개가 중동과 중국항만들로 대규모 자본과 집중투자가 이뤄지면서 선석생산성에서 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제벨알리항과 코르파칸항은 각각 시간당 118.7회와 100.2회로 1위와 4위를 차지해 국가 및 항만단위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어 중국의 옌텐항이 시간당 99.5회로 4위, 칭다오항이 93.0회로 7위, 광저우항이 91.9회를 처리하며 8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중국 주요 6대 항만이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항은 지난해 시간당 85.9회로 세계 14위권에 머물렀지만 올해 2분기엔 시간당 92.7회를 거두며 다시 10위 자리를 탈환했다.
KMI는 부산항이 경쟁항만 대비 선석생산성이 낮은 건 선박 하역작업에 투입되는 STS크레인 대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주요 항만의 선석당 STS크레인 대수는 평균 4.0대 가량이지만 부산항은 3.3대에 불과해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다. KMI는 실제 부산신항이 개장한 2006년 이후 안벽크레인에 대한 추가 투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심항만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초대형선박(8000TEU 이상) 부문은 제벨알리항이 시간당 150.7회를 처리해 1위에 올랐다. 뒤이어 코르파칸항이 시간당 144.5회를 처리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다롄항으로 시간당 123.4회를 처리했다. 중국 주요 6개 항만은 초대형 선박에 대한 하역생산성에서도 상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항은 시간당 99.2회를 기록해 전체 비교항만 중 16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전 선형 대상 개별 터미널별 선석생산성에서도 중국 주요 터미널의 상위권 독식은 계속됐다. 총 672개 터미널 중 상위 20권 내에 중국 터미널이 9개나 포함됐다. 부산항은 신항 1부두 부산신항국제터미널(PNIT)만이 세계 20위권을 거두는데 그쳤다. 8000TEU급 이상 초대형선에 대한 터미널 선석생산성에서는 국내 터미널 중 20위권 이내에 단 1개의 터미널도 포함되지 못했다.
“선석생산성, 항만별 특성 고려해야”
터미널업계 관계자들은 크레인과 같은 하역장비 투자가 생산성을 좌우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KMI 분석에 대체로 반대의견을 내비쳤다. 통계자료 인용 시 세계 평균을 산정해 선박 규모별로 나눈 점에서 객관적일 수 있지만 터미널 장치율이 수십 %씩 차이나는 타 국가 항만과 생산성을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항만별 컨테이너야적장(CY)의 면적, 화물(수출입·환적·공컨)의 종류, 하역장비 및 보조하역장비 대수 등이 배제된 분석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업계가 공통적으로 꼽는 맹점은 화물의 종류와 항만의 역할이다.
중국 주요 항만들은 대체로 환적화물보다 수출입화물을 주력으로 처리하는 수출입항만이다. 특히 수출화물이 많아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공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물량이 많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환적항만인 부산항은 배 한 척이 입항해서 화물을 내리면 그 다음 배를 기다렸다가 재선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에 생산성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또 공컨테이너보다 만재 컨테이너(FCL)가 대부분이다 보니 작업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야적장에 컨테이너를 쌓아두기도 애매하다.
하역생산성은 선박에 선적된 공컨테이너를 야적장에 하역하는 게 가장 높다. 업계는 공컨테이너를 야적장에 내릴 때가 선적할 때보다 두 배 이상 생산성이 높으며, 뒤이어 만재화물을 CY에 하역하는 게 생산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대로 배에 선적하는 건 정시성 등 출항시간의 문제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생산성에 따라 소요시간 차이도 클 수밖에 없다.
선석생산성은 일본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입항하는 선박 척수가 부산항보다 턱없이 부족하고, 물량이 많지 않다. 생산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요코하마항은 물량이 많지 않아 야적장이 여유롭다. 엄격한 규칙에 따라 터미널작업을 철저히 하는 문화적 차이도 한 몫 한다.
일본은 선박 입항 하루 전날까지 화물이 반입되지 않으면 선적이 불가능하고, 화물 중량정보도 한치의 오차가 없어 재작업을 거칠 필요가 없다.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하역작업이 진행되는 셈이다.
반대로 부산은 선박이 입항해도 미도착한 화물이 상당하다. 터미널 자체적으로 선박 입항 12~24시간 전 화물반입을 요구하는 ‘화물반입마감시한’(카고클로징타임)을 정해놨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또 컨테이너 반입 이후 정보변경이나 화물 재작업 등의 악습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 부산을 중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관점으로 비교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 터미널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칭다오항의 화물조합처럼 공컨테이너 위주로 처리하면 생산성에서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며 “항만당국은 선석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크레인 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 실상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맹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 좋지만, 현실적 문제도 고려해야
그런가하면 STS크레인을 많이 설치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크레인이 많을수록 하역생산성이 오르는 건 맞지만 가령 10기의 크레인을 소유한 터미널이 STS 1기를 추가 투자하더라도 선석생산성이 10%씩 늘어나진 않는다는 지적이다.
소형선박을 작업할 수 있는 크레인은 최대 2기다. 초대형 선박도 크레인이 6기 이상이면 작업 도중 ‘간섭’이 발생할 수 있다. 간섭은 크레인이 촘촘히 붙어있으면 하역작업 시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한 터미널업체 관계자는 “하역작업 시 선사와 터미널간 크레인을 몇 기 붙일지 협의한다. 선사가 더 붙여달라는 경우도 있으며, 선박 크기·부산에서 처리할 물동량·출항시간 등을 고려해 선사와 협의한다”고 말했다.
크레인 추가 투자에 따른 비용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크레인 추가 설치로 서비스품질과 생산성은 향상될 수 있지만, 처리할 물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터미널로선 투자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STS 한 기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약 100억원에 달한다.
기기도입에 따른 인건비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크레인과 더불어 YT를 운행할 인력도 상응하게 투입해야 한다. YT의 경우 한 대를 추가 투입하면 3조2교대로 움직이는 항운노조 소속 근로자 최소 2명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 대부분 선사가 추가 크레인을 붙이면 빠른 작업이 가능해 선호하는 편이지만 결국 크레인 추가설치 비용이 선사에게 요율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일부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선사로선 값비싼 하역료를 지불할 수 없어 역으로 선사가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업계가 꼽는 최대 고민은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이 따라주지 않는 점이다. 선사들이 대형선박 대신 초대형선박을 투입하면 터미널로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크레인을 4기에서 2기를 더 투입하고 개조하는 게 낫다. 하지만 한 모선이 부산항에서 처리하는 물동량이 과거와 비슷하다면 터미널로선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을 얻을 수 없다.
또 초대형선박이 부두 안벽을 모두 잡아먹다 보니 6000~8000TEU급 선박 3~4척 대비 거둘 수 있는 매출액도 기대 이하다. 2부두(2km)를 제외한 신항 대부분의 부두 안벽길이가 1.1~1.4km에 불과해 2만TEU급 선박(전장길이·LOA 약 400m) 2척을 붙이고 나면 나머지 공간은 거의 쓸 수 없게 된다. 8000TEU급의 대형선박은 전장길이가 약 300m로 기본 3~4척씩은 작업할 수 있다.
한 터미널업체 관계자는 “크레인 한 기를 도입하는 데 약 100억원이 필요한데 선사들이 초대형선박을 접안하면 기본 4기의 크레인을 최대 6기까지 늘려야 생산성이 오른다. 하지만 2만TEU급 선박과 6000~8000TEU급 선박이 부산항에서 처리하는 물량에 큰 차이가 없어 운영사로선 초대형선박을 위한 크레인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터미널에선 초대형선박의 길이할증료(LOA 서차지)까지 고려하고 있다. 초대형선박에 한해 할당된 물량을 처리하지 못하면 부가비용을 청구하는 식이다.
한편 KMI는 컨테이너 선박의 초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선석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 선박의 대기·체선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항만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선사의 부산항 기항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선석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등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허브항만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8000TEU급 이상 선박에 대한 선석생산성을 향상시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선석통합 등을 통한 항만운영능력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하역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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