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를 소유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 ‘카렌 블릭선(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이 돌아온 고국땅 덴마크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했던 20년 전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프리카를 떠나며’ -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에 묻고 온 젊은 날의 꿈과 야망,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과 추억의 편린들을 고스란히 반추하며 빼곡히 원고지에 담는다.
필자는 지금 붓을 들고 그녀가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보낸 세월이 꿈길 속서 오버랩 되어 윤슬처럼 피어 밀려오는 회억의 조각들을 간추려 나비는 모습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선율이 곱게 흐르는 아프리카 대륙 여행에 편승, 무임승차로 함께 떠난다. 한국 개봉 20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숨막히게 아름답고 스펙타클한 풍광과 등장 인물들의 열정과 모험, 끝내 아픔으로 끝났지만 영원히 가슴적시는 사랑과 로망을 공유하며 호흡이 긴 영화로 폐부 깊이 적어두고 싶다.
덴마크 출신으로 본명이 ‘카렌 블릭선(Karen Blixen,1885~1962)’이란 남작의 여류 작가가 ‘이삭 디네센(Isak Dinesen)’이란 필명으로 커피농장 개간을 위한 시련의 아프리카 생활 17년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아프리카 케냐의 드넓고 아름다운 사바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는 비록 새로운 결혼과 커피 농장 경작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름답고도 당찬 카렌이 운명적 역경을 헤쳐 나가는 모습과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과 평생 소중히 간직한 추억이 너무나 서사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이란 평가다.
파혼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덴마크에 사는 귀족, 카렌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독신녀다. 사랑과는 거리가 먼 4촌 ‘블락센(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Klaus Maria Brandauer)’ 남작과 사랑에 빠져 숙고의 겨를도 없이 막연히 아프리카 생활을 동경, 새로운 삶을 꿈꾸며 결혼을 약속한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케냐의 커피농장에 기거하며 신혼을 보낸다. 그러나 남편이 사냥을 나가 며칠씩 돌아오지 않기도 하자 카렌은 기다림에 지친다. 낙농장을 만들어 유제품 사업을 벌이자는 카렌의 야망과는 달리 남편은 아내 돈으로 그저 편히 살 궁리로 일관한다. 부부싸움이 잦던 터에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나자 그는 도피행각으로 홀연히 전장에 나간다.
카렌은 남편에게 전쟁물자를 전하러 갔다가 매독을 옮아 1년간 고국서 치료를 받았으나 불임판정을 받았고 전쟁서 돌아와서도 사업보다 사냥과 여색만 밝히는 남편과 결별을 선언하고 헤어진다. 홀로 된 카렌은 어느날 광활한 초원에 나갔다 뜻밖에 야생 사자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하게 되고 우연히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란 처음 본 남자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미국인 데니스는 남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자유인이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나침반을 보여주며 아무리 길을 잃어도 나침반만 있으면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멋진 말에 그녀는 솔깃한다.
이어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 졌고 영혼의 자유함을 만끽하며 사냥을 즐기며 살고 있는 데니스는 틈만 나면 LP음반을 올려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로 안내하는 정성을 보이는 매력 만점의 사나이로 다가온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것만 같은 데니스가 다가오자 카렌은 위로를 받게 되고 드디어 사랑을 느낀다.
어느 날 훌쩍 사라졌던 데니스는 쌍날개가 달린 비행기를 몰고 카렌의 커피 농장 위를 얕게 날며 자신의 귀환을 알린다. 이 영화 백미로 꼽히는 최고 명장면은 두 사람이 쌍엽 비행기를 타고 함께 세상을 내려다 보며 아프리카 야생의 사슴떼가 무리지어 이동하고 플라밍고 조류들이 장엄하게 춤추며 비상하는 모습의 황홀경에 도취, 조종석 앞 뒤에서 서로 손을 내밀어 굳게 잡는 환희로운 광경이다.
또 하나 있다. 여성 팬들의 가슴을 사로잡은 장면으로 데니스와 단 둘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여행을 하다 맞이한 해질 무렵, 데니스가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를 감겨주고 비누칠한 머리칼을 잘 쓰다듬은 후에 맑은 물로 헹궈주는 모습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 영화 장면처럼 연인에게 머리를 감겨달란 요구가 쇄도 했단 에피소드 회자가 그것이다.
카렌은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소유욕에 집착한다. 데니스는 그런 카렌에게 소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반문한다. 데니스는 자신의 살림 일부를 카렌의 집에 맡길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급진전 됐지만 믿을만한 동반자를 원하는 카렌은 데니스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갈등한다. 데니스는 서구적인 사치, 소유,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마사이족들과 어울려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고 목가적인 삶이면 족하다며 결혼 감정의 유입을 거부한다.
대자연과 아프리카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연인, 데니스와 카렌. 이들의 아프리카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확인하고 싶은 여자의 사랑,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남자의 사랑. 둘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했지만 똑 같이 아플 수 밖에 없었기에 독백한다. “사랑의 방식으로 인해 다투는 두 사람, 왜 늘 지나고 난 뒤에야 부질없음을 알게 될까?”
그런 가운데 뜻밖에 카렌의 커피농장이 수확기를 맞아 불에 타버리는 화재가 발생한다. 그녀가 물려받은 모든 것을 투자해서 일궈 놓은 커피농장이 삽시간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재기의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실의에 차 아프리카를 떠나려고 서두를 때 마침 찾아온 데니스에게 카렌은 울먹인다. “당신이 옳았어요. 제가 진작 배웠어야 하는 건데 너무 늦었군요.” 그러면서도 둘은 결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와서 카렌을 비행기로 몸바사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 데니스가 오는 길에 사고로 죽게된다. 무의미한 결혼생활과 고독, 우연히 만난 모험가 데니스와의 사랑과 설렘, 아프리카 원주민들과의 우정과 인생의 깨달음 등이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카렌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아 펼쳐진다. 카렌은 1937년 아이작 디네센이란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했고 1985년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미국 유니버살이 1985년에 제작했으며 국내는 1986년에 개봉됐다.
카렌은 자유롭고 싶어하는 데니스와 어렵사리 결혼을 약속했지만 비행기 사고로 수포로 돌아갔다. 데니스 장례식에서 눈물어린 독백으로 “그 남자는 나의 것이 아닌 이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울먹이던 장면과 원숭이들에게 모차르트 20번 교향악을 들려 주며 멀리서 지켜보는 두 사람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또 어느날 밤, 데니스가 조심스럽게 텐트를 찾아가 “벗기고 싶다”는 선정적 프로포즈를 하자 역시 기다렸단 듯 “따르고 싶소이다”로 응수하던 카렌의 에로틱 화답을 필자는 가장 재미있는 다이어로그로 기억한다.
카렌은 떠나기전에 커피농장에서 함께 일한 원주민, 키쿠유족이 살 땅 마련을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현재 그녀를 기리는 박물관은 케냐의 나이로비와 고향인 덴마크의 룽스테드 등 두 곳에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세계적인 두 탑클래스, 거성 스타의 명성에 걸맞게 멋진 대형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후 카렌이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이 밖에도 ‘풀위의 그림자(Shadow on the Grass)’, ‘아프리카서 온 편지(Letters from Africa)’등이 있으며 1954년과 1957년 등 두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랐고 1986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7개 부문을 휩쓴 사실이 이 영화의 예술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 물류와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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